일상 작은 틈에서 맞는 설레는 봄
궁금한 것 늘수록 낯설고 새로워

어느덧 집 마당에 봄이 쌓여간다. 모종 하우스에는 상추, 토마토, 고추, 가지를 심은 포트와 화분이 늘어섰다. 겨울을 견딘 새들도 마을 뒷산으로 돌아와서 울음소리를 낸다. 농부도 들에 나와 괭이질 소리, 삽질 소리, 경운기 지나는 소리, 봄이 오는 소리를 낸다.

어제는 양파밭에 풀을 매다가, 더위가 차서 겉옷을 벗었다. 밭 귀퉁이에 박아놓은 고춧대에 겉옷을 걸면서 '이제 정말 봄이 오고 있구나' 생각했다.

연애를 시작하면 '봄이 왔다'라고 표현하고는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골목길을 거니는 것만큼 봄이 설레는 철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그 설렘을 느끼는 것은 자기 몫이다.

해마다 봄이 되면 밭에 거름을 넣고, 모종판에 씨앗을 넣는다. 봄이면 늘 하던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이 때로는 설레게, 때로는 지루하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그 봄은 무엇이 달랐던 것일까?

돌이켜보면 변하는 것은 봄이 아니다. 봄은 늘 한결같이 돌아온다. 올해 심은 상추 씨앗도, 지난해에 심은 상추가 다시 씨앗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나는 자꾸만 변한다.

조그만 씨앗을 심어 상추 싹이 올라오는 것을 보면 놀랍고, 밭을 일구는 일이 즐겁다. 하지만 때론 그 모든 일이 당연하게 느껴지고, 몸과 마음이 지치기도 한다. 놀라움을 놓쳐 버리는 것이다. 보통 내가 너무 바쁠 때 그렇게 된다.

어떻게 하면 '새봄'을 잘 맞이할 수 있을까? 올해를 시작하면서 고민이 생겼다.

어쩌면 봄은 모두에게 오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봄은 맞이할 준비가 된 사람에게 온다. 집을 나설 때는 안 보였던 들꽃이 돌아오는 길에 보이는 것. 어제는 들리지 않던 산새 소리가 감미롭게 들리는 것. 해 질 무렵 풀냄새 맡으며 천천히 걷고 싶어지는 것은 내가 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뜻이다.

봄을 오롯이 맞이하려면 일상에 작은 틈이 필요하다. 우리 집 개 느루를 데리고 아랫마을로 산책 다녀올 수 있는 틈, 마을 길을 걸으면서 길가에 핀 들꽃을 사진기에 담아볼 수 있는 틈, 가만히 멈추어 서서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틈. 이 작은 틈을 통해서 봄이 들어온다.

올해 나에게도 그런 틈이 있으면 좋겠다. 내 삶에 놀라운 일들을 놓치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

씨앗을 넣고 날마다 물을 주면, 검은 흙을 뚫고 초록빛 새싹이 올라온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다.

또 나에게 어떤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오늘도 세끼 밥을 먹고, 괭이와 삽을 들고 밭일을 한다. 때때로 부는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지 않게 잡고 있기도 하고, 집 앞까지 따라온 도깨비바늘을 현관 앞에 걸터앉아 떼기도 한다. 밤에는 기타를 안고 노래를 부르거나 이렇게 글을 쓰기도 한다. 이 모든 일은 놀라운 일이다. 이 일에 얽힌 많은 생명과, 그 생명이 하는 일을 이야기하자면 밤을 새워도 끝이 없다. 때때로 나는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는 한다.

올봄에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올해는 궁금한 것이 늘어나면 좋겠다. 토마토 씨앗에는 왜 솜털이 있는지, 나무들은 왜 저쪽으로 가지를 뻗는지, 빈 밭에서 까치들은 무엇을 주워 먹고 다니는지, 그것에 관심을 가져보고 싶다. 그것이 내가 찾은 새봄을 맞이하는 방법이다.

늘 내 곁에 있는 것들이 낯설어지는 순간,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이미 와 있는 봄이 새봄이 되는 그 순간에.

/김수연 청년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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