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수임, 당사자 인생에 밀착하는 과정
당사자 원색적 비난·원망 자주 접하기도
한발 물러선 공감·위로, 이혼 변호사 역할

긴 시간 아내를 마음에서 놓아주지 못했던 남편이 말합니다. "오래 걸려서 미안해." 그러고는 준비한 서류를 건넵니다. 지금은 다른 사람과 함께 사는 아내 표정에도 울먹임이 스며 있습니다. 아내는 쿨하게 돌아서지 못하고 카페 밖으로 나가면서 남편 얼굴을 쳐다봅니다. 드라마 한 장면입니다. 아름답게 포장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서글픈 이유는 실제 풍경과도 닮았기 때문 아닐까요. 세상에 쉬운 헤어짐은 없다고 합니다. 이혼 역시 힘든 여정입니다. 이 과정에서 당사자 곁에 있는 변호사도 감정을 공유합니다. 이혼 전문 변호사로 일하는 염영선(염영선법률사무소)·김슬기 변호사(법무법인 지혜)를 만나 현실을 들어봤습니다.

◇감정 소모 큰 직업 = 통계청이 지난 16일 발표한 '2022년 혼인·이혼 통계'를 보면 경남은 전체 이혼 건수가 2020년 7368건, 2021년 7034건, 2022년 6530건으로 최근 3년간 감소세를 나타냈다. 다만 지난해 기준 전국 시도별 건수로는 경남이 7%로 경기(26.7%), 서울(14.1%) 다음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혼 전문 변호사는 날 선 감정을 자주 접할 수밖에 없다. 의뢰인이 울음을 터트리는 일은 허다하다. 그래서 '남의 불행으로 돈을 버는 사람'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그러나 공감·위로·다독임, 자기감정마저 소용돌이치지 않도록 애쓰는 것은 이혼 전문 변호사 몫이다. 의뢰인에게도 한발 물러서고 마음을 다스리자고 조언한다.

"의뢰인 고민을 듣고 대신 싸운다고 해서 거칠지만 '용병'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상대방을 향한 안 좋거나 원색적인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소송 승패가 예측될 때도 있는데,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올 때는 원망도 듣는다. 최대한 자제해야 하지만, 당사자가 너무 억울한 상황이어서 감정 이입이 될 때도 있다. 드라마 같지는 않지만, 실제로 판결 하루 전에 잠을 잘 못 자고 걱정하기도 한다." (염 변호사·이하 염)

"당사자가 그동안 결혼생활 중에 겪었던 감정적인 부분이 해소되지 않거나 조금 정돈되지 않은 상황에서 소송을 진행할 수밖에 없어서 이혼 사건은 변호사가 감정적인 호소를 많이 들어야 하는 사건임에는 분명하다. 왜 누구 때문에 이 혼인 관계가 파탄됐느냐를 소송에서 밝히는 구조여서 상대방 잘못을 비난하는 내용을 어쩔 수 없이 얘기해야 하고 공방이 오래가면 감정 소모가 대단히 크다." (김 변호사·이하 김)

김슬기 변호사(왼쪽)와 염영선 변호사. /김구연 기자
김슬기 변호사(왼쪽)와 염영선 변호사. /김구연 기자

◇돈 잘 번다는 오해 = 염 변호사는 2003년, 김 변호사는 2015년부터 경력을 쌓았다. 대한변호사협회는 질 높은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전문 분야 등록제를 두고 있는데, 이혼 전문 변호사도 그중 하나다. 변호사 전문분야 등록에 관한 규정을 보면 변호사는 전문 분야를 2개까지 등록할 수 있다.

이 규정에 첨부된 전문분야 등록신청 분류표를 보면 교통사고·군형법·부동산·소년법·재개발재건축·채권추심·의료·형사법·산재·상속·엔터테인먼트·학교폭력 등으로 전문 분야는 62개다. △변호사 경력 3년 이상 △관련 전문분야 연수 또는 교육 14시간 이상 이수 △최근 3년 내 10~30건 이상(이혼은 30건) 관련 분야 사건 진행 경험 등을 모두 충족하고 심사를 거쳐야 '전문 변호사' 자격이 생긴다.

염 변호사와 김 변호사 모두 직업 특성상 자신을 알리고 사건을 맡아야 하기에 이혼 전문 변호사로 등록했다. 특히 이혼 사건은 개인 사연을 꺼내야 해 지인을 거쳐 맡기는 경우가 드물고, 변호사들도 광고가 필요하다. 이혼은 다른 전문 분야인 형사와 함께 변호사 광고 시장에서 가장 영향력이 있다고 평가받고, 그래서 등록 과정도 치열하다고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전문 변호사' 타이틀도 힘을 잃어가는 모습이다. 대형 로펌에서 포털 사이트 광고를 장악하거나 전국 곳곳에 센터를 두는 식으로 영업하기 때문이다. 시장이 한쪽으로 쏠려 있는 데다 한정된 상태에서 변호사 수도 늘고 있다. 경남만 해도 전체 수임 사건 수에서는 큰 변화 없이 20년 전 100여 명이던 변호사가 현재 400명까지 증가했다.

◇이혼 아닌 '행복' 부추겨야 = 소송에서 이긴다고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다. 소송은 끝났어도 부부 당사자 간 갈등이 종결되지 않을 때도 안타깝다.

"부부 사이 갈등은 대리인끼리 분쟁을 봉합하는 쪽으로 가야 하는데, 부추겨버리면 답이 없다. 서로 진정하면서 문제를 어떻게 원만하게 풀어가느냐가 중요하다. 우리가 피고인 사건이었는데, 별거 중이었음에도 원고 소송이 기각된 적이 있다. 우리 쪽 당사자가 이겼지만, 유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방이 조금 측은하게 보이는 사례도 있었다." (염)

"당사자가 이혼 재판을 원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상대방이 부정행위를 해서 위자료 청구 소송을 먼저 진행했었다. 그런데 협의가 잘 안 됐고, 상대방이 적반하장 태도를 보여 결국 이혼 소송으로 가게 됐다. 서로 관계를 정리하고 자녀 면접 교섭권 등 문제를 하나씩 해결해가면 되는데, 오히려 더 감정을 상하게 하고 상처를 남기는 것이 좀 안타까웠다." (김)

재판상 이혼을 하려면 먼저 가정법원 조정을 거치는데, 대부분 이 단계에서 해결된다고 한다. 재판으로 갔을 때는 길면 1년 이상이 걸린다. 또 이혼 소송은 재산분할, 친생자관계부존재확인 등 다른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염 변호사는 "소송은 1년이지만, 당사자 30~50년 이상 인생, 사고와 가치관을 밀착해 경험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당사자가 행복한 길을 걷도록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이 이혼 전문 변호사 일이다.

"2025년 창원가정법원이 개원할 텐데, 가사재판 처리 시스템이 당사자 분쟁을 조율해주고 해결해준다. 빠른 절차로 당사자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것이다. 앞으로는 법원의 후견적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혼인 파탄 원인이 한쪽에만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래서 양쪽 말을 다 들어봐야 한다. 이혼을 한다면 원수처럼 헤어져서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더 그렇다. 역설적이지만, 결혼이 행복하듯이 이혼도 행복할 수 있다." (염)

"이혼을 고민하는 단계에서 상담도 많이 온다. 얼굴에 상처가 있는 상태로 상담을 온 분이 있는데, 이혼은 하지 않으려 했고 고소만을 여쭤봤다. 변호사로서 답변하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 그분이 혼인을 지속하는 것이 본인과 자녀들에게 나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소송 중에 흔들리는 이들도 있다. 이혼도 결국 경제적인 문제, 자녀 양육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당사자가 자기 행복, 인생의 다른 가치를 가장 먼저 생각했으면 한다." (김)

/이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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