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서 나고 자란 한재호 배우
고2 때부터 극단 예도서 활동

영화광이었던 아버지 영향
함께 작품보다 연기자 길로

경남도립극단 '토지Ⅰ' 출연
주인공 길상 역 맡아 무대 올라

내년 서울서 새 연기 인생 계획
"다양성 있는 배우 되고 싶다"

지난 14일 오후 거제 옥포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난 거제 극단 예도 한재호 배우. 고2 때부터 줄곧 예도 소속으로 활동 중이다. /최석환 기자

모든 건 영화광이었던 아버지로부터 시작됐는지 모른다. 거제 극단 예도에서 활동 중인 한재호(28) 배우는 학창 시절 거의 매일 같이 영화를 봤다. 영화를 좋아하던 아버지와 함께 스릴러, 액션, 로맨스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시청했다. 많이 볼 때는 하루 3편씩 볼 때도 있었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영상물이 그의 눈에 담겼다. 부친 덕에 영화와 가까운 환경에서 자란 그는 중3 겨울방학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했다. ‘나중에 배우를 해야겠다!’

평소 동물을 좋아해 사육사를 꿈꾸기도 했던 한 배우는 불현듯 떠올린 새 꿈을 부모에게 들려줬다. 그러고는 연기학원 등록을 요청했다. 진지한 태도로 인프라가 부족한 거제 대신 방학마다 수도권에 있는 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에 부모는 “학교 다닐 때 여러 가지 해보면 좋지”라는 말을 꺼내며 그의 제안을 흔쾌히 들어줬다.

한 배우의 학원 생활은 그해 겨울방학부터 곧장 시작됐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방학만 되면 여름과 겨울 각 한 차례씩 할머니가 살던 인천으로 올라갔다. 본래 거주지인 거제와 400km 넘게 떨어진 곳에 있는 인천지역 학원을 드나들며 한 발자국씩 꿈을 향해 나아갔다.

“초중고교 시절에는 아버지랑 매일 한 편씩 영화를 봤던 것 같아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봤어요. 드라마를 보던 날도 많았죠. 어머니께서는 영화와 드라마 속 배우들을 보고서 ‘배우들은 참 좋겠다, 다양한 인생을 살아볼 수 있어서’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곤 했는데요. 여러 상황이 쌓인 끝에 중3 학생 시절 배우라는 꿈이 피어난 것 같아요. 그러다 수도권 쪽에는 연기학원이 많겠다는 생각에 ‘겨울방학 때 할머니 집에 가서 살 테니까 연기학원을 보내달라’고 아버지께 얘기한 적이 있었어요. 부모님께서 흔쾌히 수락해주셔서 고등학교에 간 뒤로도 방학마다 인천을 오가며 혼자 학원에 다녔어요.”

한재호 배우. /극단 예도
한재호 배우. /극단 예도

그렇게 꿈을 키워가던 그는 2011년 11월 고등학교 2학년 때 극단 예도 단원이 됐다. 한 배우가 다니던 학교에서 연극강사로 활동하던 통영 극단 벅수골 이규성 배우 추천으로 예도와 연결됐다. 그 당시 이 배우는 “극단에서 공연 하나 해볼래?”라며 넌지시 제안을 던졌다고 한다. 이를 긍정적으로 여긴 한 배우는 제안을 받아들여 예도 문을 두드렸다.

엉겁결에 찾아온 기회로 극단에 발을 들이게 된 그는 입단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무대에 오를 기회를 얻었다. 첫 출연작은 예도 대표작 중 하나인 <거제도>였다. 이 연극은 1951년 한국전쟁 여파로 거제에 포로수용소가 생긴 이후 그 주변에 살던 지역민이 겪은 고초와 상동리에 살고 있던 옥치조 가족 등 원주민의 삶을 다룬 작품이다. 여기서 한 배우는 1인 8역을 도맡았다. 마을 사람1, 포로1, 군인2, 미군3 등과 같은 단역으로 출연했다.

“첫 공연 때는 떨리지 않더라고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하잖아요. (웃음) ‘아, 프로 무대는 이런 거구나’라는 생각에 정말 재밌게 했던 것 같아요. 운이 좋았죠. 그때 그 작품 이후로도 저는 극단에서 쭉 활동했고, 지금까지도 예도 무대에 서 왔어요. 경기도 고양에서 군 생활을 하던 때는 휴가 나와서 극단 공연을 뛴 적도 있었죠. 이 일에 그만큼 애정이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었지 아니면 못 했을 거에요. 다른 극단 공연도 많이 했어요. 지역에 있으면서 그동안 좋은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한재호(맨 오른쪽) 배우. /극단 예도
한재호(맨 오른쪽) 배우. /극단 예도

어느덧 10년 넘게 배우의 길을 걷는 중인 한 배우는 지금까지 작품 20여 편에 출연하며 관객과 함께했다. 많은 작품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그가 손꼽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2020년 경남도립극단 창단작인 <토지Ⅰ>이다. 이 작품에서 한 배우는 주인공 길상 역을 맡아 무대에 섰다. 지역에서 제작된 대작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어려운 일이건만, 그는 오디션을 거쳐 주연 배우로 발탁됐다. 감회가 남다른 일이었다. 그가 토지 공연을 두고 “정말 신나고 재밌게 참여했던 작품”이라고 추억하는 이유다.

한 배우는 꾸준히 무대에 오르면서 수상 실적도 쌓았다. 2018년 극단 장자번덕 이훈호 대표가 연출한 <적산가옥>으로 경남연극제에 나서 생애 첫 신인연기상을 거머쥐는 영예를 안았다. 연극 <적산가옥>은 일제강점기 말 지방의 한 소도시에 있는 친일파 집안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작품으로, 부패한 인물들을 장면 곳곳에서 드러내며 시대적 아픔과 당대 인간 군상을 일러주는 내용이다. 여기서 한 배우는 최경진 역을 연기했다. 생애 첫 연기상을 준 작품이라 한 배우에게는 이 연극 또한 토지만큼 애착이 큰 작품으로 남아있다.

한재호 배우. /극단 예도

지역에서 줄곧 연극배우의 길을 걸어온 그는 요새 새로운 계획을 짜고 있다. 이르면 내년 2월 서울 대학로로 자리를 옮겨 배우 경력을 이어나가는 걸 계획 중이다. 새 터전에서 새 사람들과 경쟁하며 발전하고 싶다는 취지다. 기회가 닿는다면 스크린에 들어가 작품활동을 해보는 것도 꿈꾸고 있는 그다.

“연극도 좋지만, 꼭 연극만 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고 있어요. 다양한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현재로서는 어떻게 해야 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이 나와 있는 건 아니지만, 우선 더 늦기 전에 서울에 올라가서 도전해볼 생각이에요. 관객뿐 아니라 동료 배우들에게도 인정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 배우는 다 잘 어울린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떤 역할이든 다양하게 잘 소화하는 그런 배우들 있잖아요. 다양성을 가진 배우가 되는 게 목표예요. 가능한 한 오래 이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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