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사회학자 비건 논쟁 비판적 고찰
학계 이론과 정치, 사회운동 변화 담아

고작 식습관이 아니다. 비거니즘은 그 이상이다. 고작과 그 이상 사이에서 벌어지는 투쟁, 그 사이의 긴장감을 다루는 사회과학 책 <비거니즘>.

지은이 ‘에바 하이파 지로’는 영국 셰필드 대학 사회학과 부교수다. 노팅엄대학 비판이론센터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킬 대학 미디어학과 부교수를 지낸 바 있다.

그는 비거니즘이 식문화의 한 형태로서 지니는 고유함을 파악하려면 역설적으로 비거니즘을 식습관 그 이상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거니즘,  에바 하이파 지로 지음, 장한라 옮김, 호밀밭.
<비거니즘>, 에바 하이파 지로 지음, 장한라 옮김, 호밀밭.

2010년대 이후 ‘식물 기반 음식 대중화’가 급부상했다. 글로벌 패스트푸드점에서 비건 버거를 팔고, 비건 스테이크·만두까지 식품 공장에서 생산한다. 이런 상업화 과정은 인간-동물 관계에 관한 폭넓은 질문을 단절시킬 뿐만 아니라 비거니즘과 다른 사회정의 사안들 사이의 연결점을 잘라버린다.

저자는 비거니즘을 고작 식습관으로 축소하려는 시장, 그리고 사회적 형성과 제도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그와 동시에 인간이 동물을 지배하는 방식, 특정한 인간이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는 방식에 관해 더욱 근원적인 일련의 질문을 제기한다.

“비건 캠페인에서는 단순하고도 관심을 끄는 메시지와 단일 쟁점 정치로 빠지기가 너무나 쉽다. 이런 단일 쟁점 정치는 비건이 되는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인종·계급·젠더·장애 또 그 밖의 다른 요인들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비건이 되는 것’만을 강조한다. 비거니즘에 관한 대중적인 묘사와 스테레오타입은 비건 실천을 개인주의적인 순수성 장치로 그려냄으로써 이와 같은 문제를 악화시킨다.”(257쪽)

책에서는 우선 기존 비건 학계가 발전시킨 비거니즘에 관한 복합적인 그림을 그려본다. 이를 통해 비건 실천은 개인주의적인 순수성 정치라는 인식을 다시 따져본다. 역사적으로 비거니즘은 순수한 것으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전제에서 시작해 순수성을 고착화하는 대중적인 담론이 어떻게 의도치 않게 기존 사회적 규범에 의문을 제기하려는 모든 윤리적 입장을 비판하는 반동적인 서사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이어서 ‘비건 활동주의에서 배우다’(4장)에서는 1980년대에 처음 생겨나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맥도날드 반대 국제 시위를 비롯해 도살장 밖에서 농성을 벌이는 사회운동, 기후위기 운동에서 파생된 활동주의적 실천에서 윤리적 복잡성이 드러난 몇몇 기존 방식을 살펴보고 그것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동물의 주체성과 의인화’(5장)에서는 동물의 사회적 지위와 위치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하는 문제를 다룬다. 구체적으로 가축의 특성을 인체에 그대로 옮겨 그리면서 동물 소비 문제를 제기하는 동물권리옹호 국제단체 ‘PETA(페타·People for the Ethical Treatment of Animals)’와 이러한 전략을 뒤집어 인간의 감정과 경험을 도살장에 있는 동물에게 그대로 옮겨 표현한 동물보호단체 ‘애니멀 이퀄리티(Animal Equality)’의 시도 등을 살펴본다.

이론서이지만 때로는 실천서처럼 다가온다. 그 이유는 비거니즘의 급진적인 기반을 다시금 확인시켜 주면서 정치적 실천으로서 비거니즘을 탐구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자본주의적인 소비 논리로만 비거니즘을 가두어 놓는 현실에서 ‘식습관 그 이상’을 유지하고 ‘식물 기반 자본주의’에 저항하도록 하는 사회운동 도구로 활용하기에 충분하다.

446쪽. 2만 2000원. 호밀밭.

/박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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