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 앞세운 수도권 중심주의
미술관까지 빼앗아가는 이기주의

'이건희 미술관'이 서울로 유치됐다. 그 흔한 공청회나 토론회 한번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됐다. 너도나도 미술관 유치를 외치던 지자체들로서는 맥이 빠지는 결정이었다.

서울로 유치하는 이유로 소장품 연구·보존·관리의 효율성을 들었다. 서울에는 기존에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이 있으므로, 숙련된 인력 수급이 쉬우리라 판단했단다.

숙련된 인력은 서울에만 있어야 한다는 지긋지긋한 이 논리.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건희 미술관이 지역에 유치된다면 고급 인력도 지역에 뿌리내릴 수 있는 기회였는데…. 너무나도 서울 중심적인 사고라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 논리라면 영원히 지역에는 '숙련된' 그 무언가가 정착할 수 없게 된다.

수도권 중심주의는 효율성 타령에서 비롯된다. 수도권에 모든 자원이 집중돼 있으니, 앞으로도 계속 수도권 중심으로 모든 물자가 통용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너무나도 편리하고 간단한 논리라 '납작한 논리'라 부르고 싶다).

납작한 논리는 꽤 잘 먹혀들어 가서 순항 중이다. 얼마 전 연고지인 부산을 버리고 떠난 프로농구단인 KT농구단도 수도권으로 갔다. 지역의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목이 말라오는데, 그나마 숨통을 틔워 주던 제조업 기반의 지역 알짜 기업들도 산업 구조 변화에 따라 순리대로 사장되어 가고 있다. 지역의 국립대는 시한부 선고를 받았고, 교육부는 학령인구의 감소로 직격탄을 맞은 지역 대학들에 '먹이(재원)'를 주지 않음으로써 자연도태를 강 건너 불구경 중이다. 정녕 '서울민국'을 막을 해법은 없는 것일까.

해법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시피, 수도권의 자원을 지역에 배분하는 것이다. 지역에서 못 사는 줄 아는 서울 사람들이 지역에도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고 느끼게끔 하려면 서울 못지않은 문화와 교육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한다.

나는 이른바 혁신도시라 불리는 진주시 충무공동에 살고 있다. 수도권에 있던 11개 공공기관이 한꺼번에 이전하여, 그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주거 공간, 상업시설 등이 조성돼 작은 신도시가 된 곳이다. 혁신도시는 취업할 곳이 없던 경남의 취업 준비생들에게 경남도 살 만한 공간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공기업이라는 매력적인 일자리는 서울에 살 뻔한 '숙련된' 지역의 인재들을 많이 붙잡았다.

하지만 서울에 살던 기존 직원들이 회사를 따라 옮겨오긴 했지만 진짜로 이 도시에 정착했을까. 아직 정착 효과가 선명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실제로 기러기 직원(서울에 가족을 두고 혼자 지역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매우 많이 보인다. 그러나 그들이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려온 '시골' 도시에 이건희 미술관도 있고, KT 농구단도 있으며, 서울대학교 보내는 여건 좋은 학교도 있다면 어떨까. 신도시에다가 정주 여건도 좋고 사교육비도 적게 들고, 아파트 대출금도 훨씬 저렴한데 무엇보다 차가 덜 막힌다. 이 정도면 지역에 살아볼 만도 하지 않을까.

혁신도시와 같은 매력적인 촉매제가 있어도 지역에 정착을 할까 말까 한데, 이건희 미술관까지 빼앗아 가는 서울이 밉다. 정확히는 서울 사람들의 이기심이 많이 밉다.

코로나19가 수도권에서 기승을 부려, 부산, 강릉, 제주로 휴가를 떠나는 서울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지역에도 사람이 살고, 아이를 낳고, 일할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서울 사람들의 관광지가 아니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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