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서 삼 남매 키우는 작가
글쓰기 남과 비교하며 좌절
'100일 쓰기'계기 생각 전환
"평가 연연 않고 과정 즐겨"

어릴 때 장래희망은 거창했다. 평범한 직업을 적으면 어른들은 "꿈은 크게 가져야지"라며 되레 나무랐다.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많은 사람의 주목을 꿈꿨던 아이는 커서 깨닫는다. '난 애매한 재능을 가진 평범한 사람이구나.'

수미(35) 작가도 재능이라는 산을 만났다. 그는 만화가를 꿈꿨지만 그림을 못 그렸다. 만화 스토리 작가가 되고 싶었지만 주변에 배울 곳이 없었다. 소설이나 시를 쓰기에는 문장력이 부족한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서울예대 극작과에 입학했다. 진로를 찾는 여정은 또 시작됐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현재 수미 씨는 창원에 살며 삼 남매를 키운다.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10년은 써 보고 결정하라"는 교수님의 말에 부지런히 글을 썼고 지금은 "재능 검증은 그만 됐고 '마감 엄수'를 위해 성실하게 쓰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하는 작가가 됐다.

첫 책 <애매한 재능>에는 수미 작가의 진로와 재능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다. 책이 나오게 된 데는 김달님(33) 작가 역할이 컸다. "인생의 중요한 것을 놓쳐 가면서 미련하게 글쓰기를 붙들고 있는 게 아닐까 불안함이 늘 있었다. 세 아이를 육아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희곡공모전, 신춘문예에 떨어지다 보니 글을 그만 쓰고 돈 되는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달님 작가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그때 '매일 세 줄 이상 써서 서로에게 보내 보자'고 달님 작가가 제안을 했다."

그렇게 김달님 작가와의 '100일 쓰기 프로젝트'가 출판으로 이어졌다. 수미 작가는 아이가 등원한 뒤나 밤에 틈틈이 글을 썼다. 글을 쓰면 무기력증, 육아 우울증이 해소되는 느낌이 들었다.

수미 작가는 그간 돈을 벌기 위해 대형마트 판촉행사원, 신용카드 영업사원, 영어학원 보조강사 등을 했다. 이 같은 일이 수미 작가에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글쓰기는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물론 재능에 대한 고민도 많았다. "'글은 저런 사람들이 쓰는구나.' 속으로 좌절했다. 내가 쓴 글은 뛰어난 작품들로 공연을 올리는 기말작품전, 졸업작품전의 기회는 당연히 얻지 못했거니와, 시나리오 수업 때 영상으로 제작되는 작품으로도 뽑히지 못했다."(68~69쪽)

수미 작가는 책을 낸 후 자신의 재능을 찾았다. 성실한 재능이다. "대부분 사람들이 재능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않고 살아간다. 근데 자기만 흔들리는 게 아니다. 평범하고 무명이기 때문에 글을 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그게 쓸 이유라고 생각한다. '계속해도 될까'라고 판단하는 일보다 그냥 가는 일이 가치롭다고 생각한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더하고 살고 자기가 생각하는 행복을 위해 조금만 움직여보고 그 방향을 향해 서있는 거다."

▲ 에세이 <애매한 재능>을 쓴 수미 작가. /김은주 인턴기자 kej@idomin.com
▲ 에세이 <애매한 재능>을 쓴 수미 작가. /김은주 인턴기자 kej@idomin.com

수미 작가는 첫 책을 낸 직후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잘될까', '반응이 없으면 어떨까' 하는 복잡한 마음이 앞섰다. 달님 작가는 이 같은 증세에 대해 "기쁨을 앓고 있는 중"이라고 표현했다.

가족과 지인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부모님은 "나는 네가 글을 써서 좋다"고 말했고 '삼류작가'로 자신의 이름을 저장해두었던 동생은 '예술인'으로 바꿔 주었다. 남편은 <애매한 재능> 영업사원을 자처했고 아이들은 "엄마가 책을 내니까 좋아, 자랑하고 싶다"고 말했다.

수미 작가는 자신의 재능이 애매하다고 느끼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남들이 보기에는 내가 가진 그릇이 작고 겸손해 보일지 모른다. 더 큰 그릇으로 바꾸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더 좋은 것을 담아야 한다고 성화를 부릴 수도 있다. 지금 나는 세상의 말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가진 그릇을 소중하게 바라보는 연습 중이다. 비로소 '무언가 되지 못한 사람'이라는 시선을 스스로에게서 거둘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205쪽)

그는 자신이 미화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극기 훈련처럼 글을 썼고 글 쓰는 게 재밌지만은 않았다. 글의 80% 정도는 꾸역꾸역 썼다. 난 주어진 조건 안에서 조금만 더 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수미 작가는 할 수 있는 일을 부지런히 찾아서 하는 사람이고 작가인 사람의 삶을 살고 있다.

어떤책. 296쪽.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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