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걷어내고 체화한 언어 사용
평론 대신 직접 자기 작품 설명

고영조(75) 시인이 10년 만에 여덟 번째 시집 <길모퉁이카페>를 출간했다.

경남 예술단체, 문화재단 수장에서 물러난 뒤 김해 장유에서 지난 삶을 되돌아보며 총 96편의 시를 썼다. 그는 그동안 켜켜이 쌓인 일상과 시간을 담담하게 시로 풀었다.

고 시인은 "과거에 썼던 문학적, 시적인 테크닉을 없애고 오랫동안 체화한 언어로 썼다"며 "내 삶을 반추하는 다소 사색적인 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많이 깎아 써서 길이가 짧아진 '몽당연필'에 비유했다. 몽당연필은 인생의 말년을 뜻하는 단어였다.

하지만 시를 읽으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젊은 시절 고집이 세고 강직한 그의 성격이 뾰족한 연필이었다면 지금은 끝이 뭉툭하고 무뎌진 연필 같다고.

"낙법 심사하는 날 '힘 빼' 사범이 고함쳤다 오늘 표지 사진 찍을 때 카메라맨이 그랬다(중략) 48년이 지나서 그 말 또 여기서 듣는다 뻣뻣하다니? 아직까지 힘 빼고 아무 데나 털썩 주저앉지도 못하다니 맘놓고 제 몸을 놓지도 못하다니 내가 나를 믿지 못했던거지(중략) 이젠 솔직하게 맘 놓고 떨어져야 해 그게 낙법이야"('낙법' 중)

▲ 〈 길모퉁이카페 〉 고영조 지음

시집 제목으로 쓰인 '길모통이카페'는 실제 김해 장유에 위치한 카페다. 고 시인은 길모퉁이카페에 앉아서 본 풍경이 우리네 삶의 모습과 같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인생을 탄탄대로로 걸을 수 없다"며 "다리가 부러진 간이의자에 기우뚱 앉아서 또는 길모퉁이 작은 공간에서 생애를 산다"고 말했다.

"지나가는 사람들/ 앞이 보이지 않은 듯/ 왼쪽? 오른쪽?/ 어느 쪽으로 가려는지/ 기웃거린다/(중략) 벚나무가지가/ 시냇물 쪽으로 휘어져 있다/ 사람도 나무도 구부정하게/ 시냇물 함께 보고 있다"('길모퉁이카페' 중)

고 시인은 이번 시집에 문학평론가 글 대신 자신이 직접 시 세계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는 "단순해지기로 했다. 짧게 최소한의 이미지만 쓰자", "나는 '예술과 시는 항상 새로워야 한다'는 말을 가슴에 담고 있다"고 이 마음가짐을 작품으로 보여주겠다고 밝혔다.

'카톡', '스켓', '클릭'이라는 시는 새롭고 즐겁다.

샤갈 그림에서 영감을 받은 '창(窓) 1~9', 누드로 연주하는 첼리스트 나탈리 망세에서 영감을 받은 '첼로' 등은 고 시인이 "언어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그림이라는 시각, 음악이라는 청각, 그리고 시라는 에스프리를 묶어서 이야기하겠다"는 그의 의지가 느껴진다.

불휘미디어, 184쪽, 1만 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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