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방회사 꾸린 여성 이야기
만남의 의미와 성장 다뤄

진해 출신 김탁환(53) 소설가가 서른 번째 장편소설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사진)를 들고 지난 7일 진주문고를 찾았다. 신간은 그간 김 작가가 써온 역사 소설, 사회파 소설과 달리 가죽가방회사 '그레이스' 대표 유다정의 일과 사랑, 성장을 다룬다. 이날 본점 2층에서 열린 북토크는 신청자들의 사전 질문을 중심으로 펼쳐졌다. 김 작가는 신작 구상과 취재 과정을 비롯해 전남 곡성 작업실, 고향에서 가장 사랑한 공간 등을 이야기했다.

김 작가는 1996년 <열두마리 고래의 사랑이야기>로 소설가로 데뷔했다. <불멸의 이순신> 등 25년간 장편소설을 꾸준히 썼다. 그는 방대한 자료 수집과 치밀한 고증을 거쳐 글쓰는 작가로 유명한데 이번 작품도 그랬다.

"1년 정도 매주 목요일 가방 회사에 출근했다. 회사 대표가 직원들에게 '이 사람은 가방 소설을 쓰려는 소설가니 무슨 짓을 하든지 내버려둬라, 물어보면 다 가르쳐줘라'고 말했다.(웃음) 실제로 회의에 참석하고 소속 장인들과 만났다. 1000페이지 가까이 되는 <핸드백 사전>을 보고 가방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쓰는 속어를 공부했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제는 '만남'이다.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사람을 만난다. 만남은 기회이자 때론 위기, 고통이자 희망이 된다. 김 작가는 이 책에서 세 번 정도의 만남을 설정했다. 그 만남이 의미하는 것은 독자가 풀어야 할 숙제다.

"오래전부터 만남에 대해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이 서로 만나는 것뿐만 아니라 독자는 장편소설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를 생각했다. 일반적인 장편소설은 시간 순서대로 편안하게 흘러가지만 이 소설은 작가가 의도적으로 시간과 공간 등을 편집하고 재배치해서 보여준다. 독자에게 만남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세 가지 다른 체험을 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궁금했다."

김 작가는 '만남'이란 큰 주제와 의식주 중 무엇을 입을 것인가 하는 '의(衣)'를 합쳐 이 책을 집필했다.

▲ 김탁환 소설가가 지난 7일 진주문고에서 북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김민지 기자
▲ 김탁환 소설가가 지난 7일 진주문고에서 북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김민지 기자

주인공은 30대 여성, 제조업 CEO다. 연인 독고찬의 청혼을 거절한 후, 유다정은 더 이상 사랑이라는 핑계로 남자에게 끌려가지 않고 자신만의 일을 시작한다. 유리천장이 여전한 대한민국 현실에서 여성 CEO가 걷는 길은 쉽지 않을 터. 김 작가는 "키다리아저씨의 환상을 깨는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취재과정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면)자본주의 사회에서 제조업을 하는 여자 대표가 무엇인가 하려고 하면 남자들이 와서 '내가 잘 해줄게' 이렇게 한다는 거다. 상처를 받지만 키다리아저씨 신화 속에 들어있지 않고 뚫고 나가려는 여자가 유다정이고 현실적인 사랑을 그려보고 싶었다."

유다정은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고 난 뒤 사람을 만나고 풍경을 보고 다음 일을 해나갈 힘을 얻는다. 사람과 풍경이 곧 치유인 셈이다.

"저도 살면서 그랬지만 상처를 받고 헤어지고 나면 그때 떠오르는 사람과 떠오르는 풍경이 있다. 소설 속 백수해안, 옥정호 운해, 천지암 노을 등은 실제 제가 삶의 큰 위기나 고민을 해야 할 순간에 그 풍경을 보고 뭔가 큰 위로를 받았다."

독자는 <당신이 어떻게 내게로 왔을까>를 읽고 유다정을, 백수해안을 만나고 또 다른 책의 저자 김탁환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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