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 들러리 벗어나 삶의 문제 직접 해결
법적 지위·역할·예산 보장 아직도 미흡

거창군 12개 읍면 중 11개 지역에서 예전 주민자치위원회가 주민자치회로 전환됐다. 55개 모든 읍면동을 주민자치회로 전환시킨 창원시와 함께 도내에서 전환비율이 가장 높다. 도내 전체 305개 읍면동 중 주민자치회로 전환된 곳이 88개에 그치는 현실과도 대비된다.

지난 2013년에 거창군에서 주민자치회가 가장 먼저 출범한 북상면에는 '빙기실'이라는 독특한 이름의 마을이 있다. 수년 전 이 마을 어르신이 사망한 지 얼마 뒤에서야 발견됐다. 이 일이 같은 홀몸 처지의 이웃 노인들에게 경종이 됐다. "남 일이 아니다. 마을 차원에서 이런 일에 함께 대비를 하자."

주민들은 뭉쳤고, 지금은 마을 자체 노인요양시설을 세우기 위해 마을자치기구에서 요양시설 터까지 매입했다. '나도 저렇게 죽을 수 있겠구나' 하는 절박한 경험이 마을 주민들 스스로의 '돌봄' 필요성 절감과 실천으로 연결됐다.

'지방자치'는 그 자체가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마당이다. 직접민주주의를 실험하고 확대하는 '주민자치'와 이미 보편화된 대의민주주의를 지역으로 확대하는 '단체자치'가 두 축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런데 빙기실 주민들은 그런 정치적인 명분을 떠나 주민자치가 실제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요구되는 재난·위기 대응 차원에서도 절실하고 시급한 과제라는 점을 체득한 것이다.

이런 사례는 우리 일상에서 숱하다. 지금은 재난·위기 대응뿐만 아니라 의료·교통·복지·환경 등 지역 주민들이 직접 문제점을 밝히고 해결해야 할 세상이다.

예전의 주민자치위원회는 이런 상황에 대처할 법적 기구도 아니고, 주민자치·대표 기구로서 지위도 역할도 없다. 그냥 읍면동 행정을 보좌하는 들러리에 그친다.

그런데 이를 법적으로 지위와 역할·예산을 보장받는 주민자치회로 전환시키는 데 주저하는 시군이 아직도 많다. 김해·양산·사천·남해·산청·함양·합천 등은 주민자치회가 단 한 곳도 없다. 통영·의령·함안·하동 등은 아직도 한 곳에 불과하다.

주민자치회 전환 비율에서 단연 앞서는 창원시와 거창군도 기본적인 지원은 부족하다. 주민자치회가 일상적인 활동을 하려면 사무실을 확보하고, 상근 활동가의 인건비를 보장해야 하는데 두 시군은 이런 지원을 하는 데 여전히 미흡하다.

"법적 근거가 없어서 보조금 외 예산 지원을 하지 못한다"는 이야기도 그만해야 한다. 지방재정법, 지방분권법 등 주민자치회 예산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엄연히 있다.

또, 서울·경기·충남·세종시 등 주민세 개인균등분을 주민자치회에 환원하고, 상근활동가 인건비를 지원하는 곳이 전국에 차고 넘친다. "우리는 주민자치회를 하고 있다"고 자족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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