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없이 잘 지내기를, 모두가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경남 함안군 산인면 입곡마을 숲안마을에 사는 ‘귀농전도사’ 이병철 씨. 1949년 경남 고성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물빛 푸른 통영에서 지냈다. 부산대학교에 다니던 중 1974년 민청학련 사건으로 구속되었고 감옥에서 나온 뒤부터 농민운동을 시작했다. 가톨릭농민회 사무국장과 87년 민주쟁취국민운동 조직국장 등을 역임했으며 경남가톨릭농민회를 만들어 초대회장을 맡았다. 우리밀살리기운동을 처음 시작했고,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생협 운동 등에 힘써오면서 녹색연합 공동대표, 녹색대학 상임이사로 일했다. 환경운동연합, 한살림, 생태산촌만들기, 생명의 숲 국민운동 등 생태와 환경을 위해 노력하는 모든 단체에 두루 도움을 주고 있다. 전국귀농운동본부 상임대표를 역임하고 생명평화결사운동을 이끌고 있다. 요산 김정한 선생과 무위당 장일순 선생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지금은 함안군 산인면 입곡리 숲안마을에서 텃밭을 가꾸며 생명평화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지난 1월 중순 ‘숲마루재’라는 당호를 가진 이병철 씨의 집으로 찾아갔다. 그의 서재에서 따뜻한 차를 앞에 두고 얘기를 시작했다.

/정성인 기자

- 민주화운동에서 농민운동으로, 이제는 생명평화운동으로 끊임없이 사회에 발언하고 행동해왔는데, 요즘은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이런저런 작은 관심은 있는데, 생명평화결사도 기본이 그렇지만 저는 개인의 깨어남과 사회의 변화가 다를 수 없다는 기본 관점을 갖고 있어요. 우리는 세상을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잖아요. 좋은 세상이 되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 하고 있고요. 하지만 그게 엄청난 착각이에요. 그 미망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한 발짝도 나갈 수 없어요. 세상은 나와 분리돼있지 않아요. 내가 경험하는 세계라는 것은 나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고 내가 세상을 경험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 선생이 경험하는 세상과 내가 경험하는 세상이 다를 거예요. 세계는 같지 않아요. 그런데도 같다고 착각하고 살죠.”

-세상과 내가 둘이 아니다는 그런 말씀인 것 같네요.

“첫 번째 명제는 세상은 나와 분리돼 있지 않다, 대상이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투영된 모습이야. 그런데도 우리는 대상을 바라보는 거야. 그러니까 세상이 바뀌어야 내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바뀌지 않아요. 아주 단순히 얘기한다면 세상에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평화로워지지 않고서는 내가 경험하는 세상 어디에서도 평화는 존재하지 않는 거죠. 그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어요. 생각해봐요. 내 안에 분노가 가득 차 있는데 어떻게 평화로운 세상을 경험할 수 있겠어요.”

- 사람들이 자각하지 않고는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는 말씀인데, 근래 관심 두고 활동하시는 ‘생명평화결사’도 그런 취지에서 진행하는 것입니까

/정성인 기자

“생명평화결사는 세상의 평화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평화가 돼야 한다는 슬로건을 갖고 자기의 깨달음을 바탕으로 내 안에 평화를 이끌어 내는 것과 평화로운 세상 만드는 두 가지를 함께 가져가자는 겁니다. 생명평화결사 참여자를 등불이라고 부르는데 등불은 내걸어서 비추는 거잖아. 숨기거나 하는 게 아니잖아. 밤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편하게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게 우리가 모두 평화의 등불이 되겠다는 서약을 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등불로 깨어나 있지 못하단 말이야. 그러면 어떻게 내가 내 안에 있는 등불을 켜도록 할 것인가, 이 과정이 수행이에요. 수행. 내가 먼저 평화가 되겠다는 서약과 내가 평화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 평화의 불꽃과 씨앗을 꽃 피우는 수행, 그런 수행을 통해서 자기의 삶터와 이웃을 평화의 마을로 만들어 가는 것, 이것이 생명평화운동의 내용입니다.”

-‘등불’이라는 얘기가 이채롭습니다?

“우리는 어둠을 몰아내야 할 것으로 생각해요. 하지만 어둠은 실체가 없어요. 어둠 속에 등불 하나만 켜면 스스로 사라집니다. 자꾸만 어둠을 없애야 할 것, 몰아내야 할 것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어둠의 기운이죠. 어둠은 본래 실체가 없는 겁니다. 어둠의 기운으로 어둠을 몰아내겠다고 하니 없어지질 않는 거죠. 생각을 바꿔 등불을 켜자는 겁니다. ‘어둠이란 원래 없다. 단지 밝음이 비치지 않아 어두운 것이다’는 겁니다.”

-화제를 바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생태농업은 어떤 것일까요?

“이 시대 중요한 문제는 지금 현재의 문명을 공업 중심 문명 반자연적 문명이라 한다면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결국 자연과 함께하는, 자연이 내 생명의 근원이라는 자각 속에 자연과 함께하는 문명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는 유기농이란 말 쓰지 않고 오래전부터 생태농업 자연농업 생명농업이라 얘기했어요. 생태주의로 가지 않으면 인류는 절멸에서 벗어날 수 없는데, 생태주의 생태문명으로 전환하는데 핵심은 생태영성입니다. 이를테면 지금도 텃밭에 남아있는데, 배추 모종을 하고 나면 삼배를 하고 기도합니다. 벌레님들 배추를 드시되 배추가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은 남겨두고 드세요. 그래야 두고두고 벌레님도 생명을 유지할 수 있을 테니까요. 배추님, 벌레가 침탈해 오더라도 내어줄 것은 내어주되 그보다 더 빨리 성장하고 영그세요. 이렇게 기도한단 말에요. 그리고 남은 배추의 생명을 내가 취하는 거죠. 그때는 또 기도합니다. ‘하늘이여, 스승이여. 천지 부모의 은혜로운 젖줄을 받습니다. 

/정성인 기자

이 젖에 함께한 숨결이여, 손길이여 고맙습니다. 정성으로 모시어 하늘사람으로 밝게 살겠습니다. 하늘이여, 스승이여, 감응하소서.’ 내가, 사람이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은 다른 생명을 취해서 내 생명으로 육화되는 거란 말에요. 그렇다면 내게 육화된 그 모든 생명의 존재가치를 더 잘 드러내고 더 보람 있게 내 생명을 유지해야 한다는 거죠. 배를 채우기 위해 세 끼 밥을 먹어야 한다지만 정말 밥에 감사하고 밥을 온전히 모신다 하면 한 끼만으로도 충분히 에너지를 갖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것이 단순 소박한 삶이 되는 것이고 그런 세상이 풍요로운 세상이 될 수 있다는 거야. 나누기 때문에 풍요로운 세상. 가지려니까 모자라는 거지. 내가 가져야 한다고 대립적으로 생각한다면 실제로 필요한 것은 다섯 개밖에 없는데 나는 열 개 스무 개를 가져도 불안한 거예요. 어떤 놈이 뺏어갈지 모른다고 생각하잖아. 그런데 서로가 나눈다 생각하면 어떻게 돼요. 우리는 다섯 개만으로도 풍요로울 수 있다는 거죠. 내가 꼬불쳐둘 필요가 없는데 왜 기를 쓰고 가지려고 해?”

-선생님 말씀을 듣고 있자니 옛날 유물론과 유심론 논쟁을 보는 듯합니다. 현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각종 부조리·불합리나 불평등, 억압과 차별 같은 것들을 해결하는데 선생님의 방법으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까요?

“아시는 것처럼 우리 사회가 진영 논리에 사로잡혀서, 진영의 덫이라 할까. 좌·우든 진보·보수든 어떻든 간에 그렇습니다. 진영논리는 이미 낡은 것이에요. 그러니까 한정된 재화를 어떻게 생산하고 분배하느냐를 두고 파생된 이론이고 체곈데, 지금은 물질적 조건 자체가 한계에 이르러 이런 방식으로는 인류가 살아남을 수 없는 거죠. 위기 앞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를 연구하고 실천해야 하는데, 진영논리에 빠져 다투는 것은 난파선에서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다투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구명정을 확보해서 내가 아니더라도 살아남아서, 다음 세대가 살아서 새롭게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지금은 구명정을 준비해야 할 땝니다.”

-문명의 위기라는 말을 흔히 들을 수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보시는 문명의 위기는 어떠한 것입니까?

“현상적으로 쉽게 얘기하면 기후붕괴에 대해 인류가 대처할 방법이 없어요. 인류의 손에서 벗어났어요. 기후 붕괴라는 게 온난화 이런 게 아니고, 가장 위태로운 게 식량위기와 직결된다는 겁니다. 세계 곡창지대에 이런 재앙들이 한두 차례만 강타하면 지구촌 전체가 기아상태에 빠져버립니다. 다음으로는 대 병급입니다. 신종플루만 하더라도 사라진 게 아니죠. 어떤 환경조건이 달라지니 잠복했는데 바이러스라는 게 엄청나게 세대 번식을 합니다. 이게 어떤 독성을 강화시키면 인류는 그것만 하더라도 제대로 대처할 방법이 없어요. 신종플루는 감염속도는 빠르지만, 독성은 강하지 않았어요. 그럼에도 여행이나 교류가 거의 차단됐어요. 이게 독성이 강화된다면 중세 페스트보다도 더 심각한 상황이 올 수 있어요. 

/정성인 기자

1차적으로 사람들이 감염된다든지 피해가 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세계 경제 체제 자체가 올스톱된다는 거에요. 신자본주의는 국경이라는 장벽을 없애면서 무한 교역이란 것을 핵심으로 성립한 체계인데, 만약에 병급이라든지 신종 어떤 것이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정상적인 물류는 불가능한 거에요. 그러면 이 경제체제는 바로 스톱이 되고 말아요. 그러니까 유럽발 경제위기라든지 미국발 금융위기라는 게 해결되지 않고 미봉합 상탠데 예를 들어서 식량 파동이나 새로운 질병이라거나 몇 가지 변수만 일어나더라도 이거는 붕괴 돼. 식량을 비롯한 에너지를 확보하기 위한 쟁탈전이 이제는 국지적 차원 또는 국가적 차원의 전세계적 분쟁들이 일어나게 되겠죠. 전쟁이 일상화되는 것이죠.”

-기후붕괴나 병급 같은 것을 유발하게 된 것도 결국은 인간이 저지른 큰 실수라고 볼 수 있겠는데요, 그 실수의 근원으로 들어가면 무엇이 있을까요?

“현대문명은 석유에너지에 바탕을 둔 문명인데 석유에너지 자체가 고갈되고 있죠. 대체 에너지라는 것은 지금 가정용 전기 쓰는 것은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현대 산업에 필요한 현재의 생산량을 지속할 수 있을 정도의 동력을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집에 전등 켜고 물 데우고 밥하는 건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생산해내고 있는 생산시스템을 뒷받침해 줄 에너지원으로서는 불가능해요. 그러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죠. 그런 것을 개발하기 위해 드는 것 역시 석유에너지죠. 그러니까 지금은 인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완전히 덫에 갇혀있어요.”

/정성인 기자

-석유문명이 위기의 근원이라는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문제는 생산과 소비, 먹는 것과 싸는 것, 그 밖에도 많은 것들이 분리되면서 일어나는 현상이 있다는 거죠. 이를테면 한쪽에서는 넘쳐나는 식량이 처치곤란인데 다른 쪽에서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기도 하지 않습니까.

“우리는 어떻든 누구를 돕는다, 나와 내가 불쌍한 사람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하죠. 나쁜 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자선이나 원조 이런 형태로는 한계가 분명해요. 전제가 내 것을 챙기고 남는 걸 도와주는 시혜의 차원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내가 한 물건이라도 덜 쓴다고 한다면 그건 이미 누군가를 돕는 거야. 내가 덜 소비하는 것이 제삼 세계 굶어 죽는 애들을 돕는 거죠. 보세요. 그 사람들이 못 사는 게 예컨대 원래는 자급자족하던 농업체계를 단작 중심으로 돈이 되는 환금작물 중심으로 커피나 사탕수수 이렇게 집단적으로 재배하면서 자급체계가 무너져버렸어요. 1세계 같은 데서 갖고 가버린 거죠. 갖고 가는 걸 줄이고 없애야 저들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들이 일어나겠죠. 갖고 오면서 좀 보태주는 게 대안인가 아니면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할 수 있게 할 것인가. 한 사람이 덜 소비하거나 아끼는 마음 자체가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 생명을 살아내게 하는 길과 분리돼 있지 않단 말이죠. 이게 중요해요. 그런 관점에서 우리가 손을 내민다든지 구호활동을 한다든지 할 수 있겠죠. 바탕이 뭔가가 문제야.”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인구가 지나치게 많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인구 많다는 정도가 아니고, 70억 인구 중 60억은 과잉이거든요. 정상적으로 지구가 먹여 살릴 수 있는 인구의 여섯 배를 초과했어요. 역사상 인류는 꾸준히 10억을 넘지 않았어요. 하지만 불과 100~200년 사이에 그렇게 급격히 늘었단 말예요. 석유에너지 때문에 가능했는데, 과잉인구는 석유문명의 부작용이라고 얘기해요. 석유문명 약효가 끝나간다는 거죠. 다시 돌아가야 해요. 당연히 돌아가야 하는데, 말이 돌아가야 한다지, 그게 내 문제가 됐을 때는 아비규환이라고 하겠죠. 서로 살아남겠다고 그럴 거 아녜요.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봐야 하죠. 석유문명이 종말을 고한다면 이런 상황이 올 것입니다. 그 상황을 준비해야 합니다.”

-어쨌거나 인류는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물질 중심주의라는 망령에서 벗어나야 해요. 물질적 존재로서 필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본질 아냐. 물질 드러나게 하는 것, 몸을 드러나게 하는 것을 마음이라고 했을 때, 달리 표현하면 의식이라 할 수 있어요. 마음 또는 의식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어떻게 할 것인가가 핵심이죠. 더 쉽게 예기하면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이 모두가 나와 세상, 이 우주에 구체적으로 작용하는 거죠. 파동은 고유한 주파수가 있어요. 같은 주파수면 공명을 하죠. 주파수가 다르면 서로 밀쳐 내거나 간섭을 하죠. 그러니까 생각한다, 의식한다는 것도 파동이죠. 생각보다 훨씬 더 강력한 자기장이랄 까 파동을 내는 게 심장이란 밀이에요. 가슴이라는 것, 어떻게 보면 핵심은 가슴에 있어요. 

/정성인 기자

제가 요즘 중심적으로 하는 일은 기도하는 것, 올해 사람들에게 내가 나눠준 화두는 ‘내가 먼저 가슴을 열어 당신을 안습니다’예요. 지금껏 우리는 어떻게 해요. 우리가 시비나 다툼이나 관계에서 네가 잘못했으니 네가 나한테 잘못했다고 하면 내가 받아주겠다는 거지. 근데 그게 아니고 당신이 어떻게 했든 간에 당신이 나를 어떻게 괴롭혔든, 내게 어떤 피해를 줬든 간에 내가 먼저 당신을 안겠다는 거지. 네가 나를 안기를 기대하는 게 아니라, 누가 내게 잘해주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내가 먼저 다가가서 안겠다는 거지. 이게 가슴이에요. 이게 새로운 세상을 일구는 가장 좋은 길이에요.”

-그래도 미심쩍은 게 ‘기도’만으로 세상이 바뀔 수 있을까요?

/정성인 기자

“요즘 주변 사람들에게 기도문을 주고 있는데요, 단순히 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슴을 열고 다른 사람을 안는 그 순간에 이미 세계를 변화시키는 거예요. 무슨 피켓 들고 촛불 들고 나와 그게 운동이 아니고, 세상은 그렇게 바뀌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미소를 띠고 먼저 다가가고 먼저 손을 내미는 게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불어 살 수 있는 마을로 바꾸는 거죠. 골방에 앉아 ‘하느님 뭘 잘해주십시오. 자식…’ 뭐 그게 기도가 아니라. 사람들은 하나님께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했는데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하죠. 하지만 내가 볼 때는 기도가 이뤄진 거예요. 남편 승진되게, 아들 대학 합격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죠. 그건 뭐예요. 다른 사람과 경쟁해서 이기게 해달라는 거고, 내 아는 사람은 경쟁에서 이기더라도 누군가는 경쟁에서 탈락하게 되잖아요. 결국 대립하고 대결하고 경쟁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죠. 기도 영험이 이렇게 나타난 겁니다. 그렇다면 기도 방식을 바꿔야죠. 내가 도반들에게 나누는 두 가지 기도문 중 하나가 ‘모두가 탈 없이 잘 지내기를. 모두가 진정으로 행복하기를. 생명을 가진 것이면 어느 것이든 하나도 예외 없이 약한 것이거나 강한 것이거나 길거나 크거나 아니면 중간치이거나 또는 짧거나 미세하거나 또는 거대하거나 눈에 보이거나 안보이거나 멀리 살거나 가까이 살거나 태어났거나 태어나려 하거나 모든 이들이 탈 없이 잘 지내기를. 진정으로 행복하기를’입니다. 아무튼, 이런 기도를 통해서 나 스스로 먼저 나와 세상을 안을 수 있는 파동을 보내는 거예요. 사랑의 파동, 자비의 파동이고. 그 파동에 의해 이 세상이 바뀌는 거예요.”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