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 균형 탓 외면 당한 CNN의 교훈
명확한 가치 기초한 '공적 논의 장'돼야
최근 CNN의 시청률이 급격히 하락했다. 몇 년 전만 해도 미국 내 뉴스 채널 가운데 압도적인 영향력을 자랑했는데, 지금은 절반 가까이 시청률이 떨어졌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CNN은 트럼프 대통령의 첫 임기 당시 그의 정책과 행동에 정면으로 충돌하며 강력히 비판했다. 트럼프의 주류 언론에 대한 힐난과 이에 대한 CNN의 강공은 이후 미국 언론 환경의 극명한 분화를 촉진했다. 보수진영은 폭스뉴스를, 진보 진영은 MSNBC를 각자 자신들의 견해를 대변하는 창구로 삼게 되었다. 반면 CNN은 이후 명확한 정체성을 잃었고, 모호한 입장과 보도를 유지하다 기존의 주요 시청자층마저 잃게 되었다.
여기서 '언론의 역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제기된다. 흔히 언론은 '중립적'이어야 하며, '균형'을 지켜야 한다고들 한다. 그러나 이 언론의 '균형'이라는 것은 사실 허상에 가깝다. 사진 한 장에도 촬영자의 '선택'과 보는 이의 '해석'이 필연적으로 개입되기 때문이다.
'균형'은 허상이나, '공공선'은 결코 허상이 아니다. 우리가 민주주의에 동의한다면, 민주주의가 표방하는 가치는 곧 공공선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개인의 자유, 정치적·사회적 권리의 평등한 보장, 시민들의 정책 참여 권리, 책임성과 투명성 추구, 다원성 존중과 관용 등은 민주주의를 이루는 근간이자 합의된 가치이며, 따라서 최소한의 절대적인 '선'으로 인정할 수 있는 가치들이다.
언론에서 흔히 말하는 '균형'이란 양 진영의 주장을 같은 분량과 중요도로 나열하는 식으로 이해되지만, 만약 한 진영의 주장이 허위와 불의를 담고 있다면, 이러한 '균형'은 정의와 불의, 진실과 허위를 동등하게 취급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CNN의 몰락은, 언론의 진정한 역할이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기계적이고 중립적인 '균형'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가치와 원칙에 기초한 공적 논의의 장을 만들어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저명한 법철학자 로널드 드워킨은 언론의 존재 이유를 "공적 담론을 촉진하고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는 언론이 단순한 정보 전달자가 아니라 공정성과 진실을 추구하며 권력을 감시하는 기관임을 의미한다. 언론의 이러한 역할과 책임은, 시민들이 민주주의적 과정에 책임 있게 참여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날 우리 언론 역할과 현상은 어떠한지, 최근 우리 사회가 겪은 '내란 사태'를 되짚어 보지 않을 수 없다. 특정 세력의 주장이 진실을 왜곡하고 민주적 가치를 위협할 때, 우리 언론은 기계적 균형을 넘어 진실을 밝히고 공공선을 수호하는데 얼마나 충실했는가.
윤석열 취임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건 속에서, 언론은 시민 개개인의 자율적 판단을 돕고자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며 '공정성과 진실'을 추구하며 권력을 감시하는 민주주의 사회의 필수 기관으로서 제 기능을 수행했는지 다시금 성찰해야 한다.
언론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주체는 바로 시민이다. 언론을 망가뜨리고자 어떤 시도와 노력이 있었는지, 결국 언론이 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때 민주주의가 어떻게 훼손되었는지 잊지 말아야 한다. 내란은 끝이 났으나, 끝나지 않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언론과 시민 모두에게 내란의 재발을 막기 위한 냉정한 성찰과 책임감을 요구하고 있다.
/김태형 경남도민일보 고충처리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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