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익 위해 법 도구 삼아 권력 행사
법치주의·민주주의 본질을 파괴하는 적

중국 현대 소설 대표 작가인 위화는 1993년 발표한 <인생>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작품은 장이머우 감독이 영화화해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으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위화의 최근작 <원청>(2021)은 청나라 말 중화민국 초 격동기를 배경으로 '토비(土匪)'라는 도적 집단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법비(法匪)'라는 말은, 법률을 의미하는 '법(法)'과 '토비'와 같은 도적 무리를 뜻하는 '비(匪)'가 결합한 말로, 얼핏 보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합성된 것이다. 직역하면 '법 도적 떼'이며, 이 용어는 1930년 일제가 만주를 침략한 후 '법'을 앞세워 약탈과 탄압을 일삼자, 만주의 민중들이 침략자들과 그 부역자들을 이렇게 부른 데에서 유래했다.

'토비'의 약탈과 살인, 잔혹한 행위는 개인과 지역사회에 깊은 상처와 공포를 남겼다. 그러나 '토비'들은 역사적, 사회적으로 '비주류'인 범죄 집단이며, 이들의 해악은 본질이 명백한 폭력으로, 그들의 세력이 미치는 지역과 시기에 한정돼 나타났다. 반면 '법비'는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법을 도구 삼아 권력을 행사하는 사회적 '주류'에 속한다. 이들에게 법은 오직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수단이자 도구일 뿐이다. 그들에게 '법'은 정적을 제거하는 칼이며, 반대자들의 입을 막는 재갈이다. 그러나 자신과 이해관계인들의 부조리와 거짓에는 한없이 관대하다.

법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의도적으로 법을 농락하는 이러한 행태는 공동체의 근간인 법질서와 체제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며, 결국 공동체 전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킨다. 이들의 패악은 사회 전반에 걸쳐 장기적이고 구조적으로 이루어지므로, 그 피해는 개별 사건의 차원을 넘어 국가와 사회의 근간을 흔드는 근본적인 문제로 확대된다.

'법비'의 가장 큰 위험성은 '토비'와는 달리 이들의 해악이 법과 제도라는 합법성의 '법치'라는 거짓 탈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적법 절차'나 '법 집행'이라 포장하며,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에 대해서는 도리어 '법질서 훼손'이라 역공한다. '법치주의'는 실제 권력에 대한 법의 지배를 의미하나 '법비'는 이를 왜곡한다. 더욱이 '법비'들은 자신들의 불법과 전횡을 정당화하고자 여론을 호도하고 사회 분열을 조장한다. 이처럼 '법비'는 법치주의라는 민주사회의 근간을 파괴하면서도, 그 책임을 법치주의의 수호자들에게 전가하는 교묘한 술수를 부린다. 이와 같은 '법비'의 해악은 단순한 개별적 범죄나 일시적 혼란의 차원을 넘어서서 법치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 자체를 위협한다.

현재 우리는 이러한 '법비'의 극단적인 형태를 현실로 목도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버릇처럼 읊조리면서 헌법의 근본을 부정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위헌, 위법의 계엄 선포에서부터 적법한 영장의 집행에 저항하고, 궤변을 일삼는 변론도 모자라, 여론을 호도하고 분열을 조장했다. 결국 윤 대통령 구속영장이 발부된 법원 청사에 대한 소요라는 전례 없는 사태까지 일어난 것이다.

이처럼 '법비'들은 스스로 강조해 마지않았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본질을 정면으로 왜곡하고 파괴하면서 극단적인 분열을 조장해 민주주의의 적임을 자인하고 있다. 시민들의 단호한 각성과 연대만이 '법비'의 현존하는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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