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토종 미디어기업 간 경쟁 가열
국내시장, 제작·납품업체 중심이 될 듯
2016년 넷플릭스가 한국 드라마 시장에 진출한 이후 한국 드라마산업은 국제화와 함께 완전히 새로운 산업으로 탈바꿈을 하고 있습니다. 2000년 이후 국내 드라마 시장은 KBS·MBC·SBS 같은 지상파 방송이 최대 공급처인 독점적 시장이었습니다. 제작사가 공급하는 드라마는 1년에 90편 내외가 편성되었고 주로 지상파 방송에서만 방영되었습니다. 이런 산업 규모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내수 중심 시장에서 소수 구매자가 드라마 가격을 결정하는, 다시 말해서 제작사보다 지상파 방송사가 갑의 위치에서 가격을 후려치는 시장구조였습니다. 이게 가능하려면 제작 여건이 열악할 수밖에 없는데 살인적인 밤샘 촬영을 감수해야 했고 스태프와 저임금으로 제대로 된 계약도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영혼을 갈아 넣는 방식으로 가성비 높은 드라마가 제작되었던 것입니다.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진출 이후 시장의 규모가 급격하게 커지고 있습니다. 해마다 제작되는 드라마 편수가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글로벌 OTT들이 우리 드라마를 구매하면서 판매시장이 국외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또한, 선진국과 비교해서 값싸고 품질 좋은 한국 드라마는 흥행을 보장하면서 드라마의 편당 제작비가 급격하게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넷플릭스 등은 국내 방송사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제작비에 10~15%의 마진을 붙여 구매했습니다. 10년 전인 2013년 한국 드라마의 평균 편당 제작비는 3억~4억 원 수준이었습니다. 그런데 2023년 한국 드라마의 평균 제작비는 3~10배로 치솟았습니다. 편당 제작비만 비교해보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편당 12억 원, 디즈니플러스에서 방영된 <무빙>의 제작비는 편당 32억 원,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재벌집 막내아들>은 편당 21억 원, <수리남>은 편당 58억 원이라고 알려졌습니다.
한마디로 국내 드라마 시장을 두고 자금력이 막강한 글로벌 미디어기업과 국내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토종 미디어기업 간 물러설 수 없는 경쟁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국내 지상파 방송사는 2018년 대규모 적자 이후 요일제 드라마를 폐지하는 추세입니다. 2022년 이후 웨이브와 티빙 등 국내 OTT도 국내 시장에 의존하면서 드라마 제작비는 치솟는데 구독료 수익은 한계가 있어서 막대한 적자를 감수하거나 드라마 제작편수를 줄이는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 글로벌 영상플랫폼의 성장과 함께 디지털 광고가 편중되면서 국내 시장에만 의존하는 지상파와 케이블, IPTV 등 유료방송은 가입자 감소와 광고 위축과 같은 '코드커팅' 현상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한국 드라마 제작단가의 상승 현상은 드라마 제작 인력에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능력 있는 제작사가 성장할 기회를 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경쟁전략의 일환이자 국내 방송시장의 시장교란, 즉 드라마 제작이 감소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드라마 제작비 단가 상승은 구독료 상승이라는 소비자 부담으로 되돌아올 것입니다. 앞으로 한국의 드라마 시장은 유통을 책임지는 OTT보다는 드라마를 제작하고 납품하는 제작사 중심 시장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OTT의 통합전략, 즉 티빙과 웨이브의 인수합병을 통해 가격 경쟁력과 글로벌 유통 노하우를 확보하면 독자 생존 가능성도 커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건혁 국립창원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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