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는 죄가 없어요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제께고요/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곱고 고운 댕기도 내가 들이고/새로 사온 신발도 내가 신어요/우리 언니 저고리 노란 저고리/우리 동생 저고리 색동 저고리.'

윤극영 선생이 작사 작곡한 동요 <설날>이다. 그런데 왜 까마귀도 아니고 참새도 아닌 까치 설날일까? 까치 설날이 된 데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옛날에는 원래 섣달 그믐날 작은 설날을 가리켜 '아치설', '아찬설'이라고 했는데 아치설이 변해서 까치설이 됐다고 한다. '아치'는 '작은(小)'의 뜻을 지니고 있는데 '아치'와 음이 비슷한 '까치'로 바뀌었다는 설이다. 또 삼국유사에 실린 설화에 따르면 신라 소지왕 때 왕후가 한 스님과 내통해 왕을 해치려 했는데 까치, 쥐, 돼지와 용의 인도로 위험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이때부터 쥐, 돼지, 용은 모두 12지신에 해당하는 동물이라 그 날을 기념하지만 까치는 기념할 날이 없어 설 바로 전날을 까치의 날로 정했다는 설이다. 신빙성은 많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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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까치./사진 윤병렬

어린 시절 설 전날로 돌아가 보면 좀 더 쉽게 이해될 수도 있다. 설 전날쯤이면 멀리 도회지로 돈 벌러 나갔던 삼촌·고모·누나가 오시는 날이다. 양손 가득 선물 싸 들고 신작로 길 따라 바쁜 걸음을 재촉하신다. 대개 한 손엔 정종, 한 손엔 선물 꾸러미다. 반가운 마음에 동무들이랑 하던 놀이 다 팽개치고 뛰어가 덥석 안긴다. 이때부터 모든 놀이는 '파방'이다. 까치도 아이들 따라 큰소리로 외친다. 까치 말을 요즘 식으로 해석하면 이렇다. "손님 왔숑! 손님 왔숑!".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속담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설 전날 마을에 찾아오는 낯선 손님들 때문에 까치들은 울음소리로 영역 표시를 한다. 경계하는 까치들 울음 소리가 가득해서 까치 설날이 된 건 아닐까? 물론 필자의 생각이다. 까치는 전형적으로 자기 무리의 영역을 방어하는 텃새다. 둥지 주변에 위험 요소가 발생하면 무리 지어 시끄러운 경계음을 낸다. 낯선 사람이 나타나서 까치가 경계하느라 울어대는 걸 보고 반가운 손님이 온 것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실제로 까치는 사람들 낯을 가릴 줄 아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 사람 얼굴을 기억하는 새 중에는 까치, 까마귀, 앵무새, 비둘기 등이 있다. 까치도 그중 하나다.

까치는 머리가 참 좋은 새다. 거기다 부지런하기까지 하다. 한겨울 눈비가 내리는 중에도 부지런히 집을 짓는다. 보통 새들은 이른 봄부터 둥지를 틀기 시작하는데 까치는 12월부터 집짓기를 시작한다. 둥지로부터 50m내외에 해당하는 영역에 있는 나뭇가지를 주로 이용한다. 떨어진 나뭇가지가 부족하면 부리로 가지를 꺾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마른 나뭇가지. '동다리'를 주로 이용한다. 그래서 까치 집 한 개로 밥을 세 번이나 해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까치 집 살피던 중 만났던 동네 할아버지가 귀띔해 주셨다. 완성된 까치둥지는 나뭇가지로 촘촘하게 잘 엮어져 있어 뱀이나 족제비 같은 적이 침입하기 어렵고, 비가와도 새지 않을 정도로 견고하다. 사용되는 나뭇가지 수는 1,000개에서 2,000개까지 사용된다고 한다. 길이는 대략 20cm에서 50cm 정도 되는 가지를 이용하는데 나뭇가지를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끼워 넣는 방식으로 집을 완성해 나간다. 먼저 큰 나뭇가지로 기초를 쌓고 내부는 진흙과 마른 풀로 굳힌 후에 둥지 옆면에 자기만 드나들 수 있을 정도 되는 출입문을 한 개 또는 두 개쯤 만들어 집을 완성해 나간다. 마지막으로 지붕을 만들어 덮으면 비가 새지 않는 멋진 황토집이 탄생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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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 공사 중인 까치./사진 윤병렬

큰 나뭇가지 사이에 작은 나뭇가지를 쐐기처럼 찔러 넣어 압력이 가해질수록 더 단단해지는 원리를 이용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 새가 바로 까치다. 겉으로 보기엔 까치둥지가 삐죽삐죽 튀어나온 것같이 보여 아무렇게나 지은 것 같은데 알고 보면 과학적 원리까지 엿볼 수 있는 건축 비결이 숨겨져 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새들 중에서 제일 부자 새가 까치다. 까치둥지는 사람 집으로 치면 중대형 아파트 규모 정도 된다고 한다. 까치둥지는 보통 땅에서 13m 정도 높이에 마련하는데 크기가 거의 1m에 달하기도 한다. 둥지의 주된 재료는 소나무다. 그 외에도 개나리, 양버즘나무, 참나무류가 가장 많이 쓰여진 것으로 조사되었다. 둥지를 트는 곳으로는 느티나무가 가장 많고 아까시나무, 미루나무, 은행나무 같은 키가 큰 나무에서 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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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윤병렬

까치는 민화나 소설, 동요에도 자주 등장한다. 민화에 나오는 까치는 힘없는 백성을 억압하는 호랑이 같은 관리들을 혼내주는 존재로 그려진다. 핍박이 극심했던 조선 후기의 사회적 현실을 반영한 그림들이다. 또 소설이나 동요에서는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예지 능력을 지닌 새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집 앞에 까치가 둥지를 틀면 집주인이 과거 시험에 급제한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아주 오래전부터 기쁜 소식을 알려주는 길조로 여겨졌던 것이다.

농촌과 도시 어디에서나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까치. 그런데 언제부턴가 농작물을 해치는 유해 조수로 취급 받고 있다. 시나 군을 상징하는 새로도 많이 지정되었다가 해제되거나 탈락되는 상황에 몰리기도 한다.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나 농작물에 피해를 주거나 정전 사고를 일으키는 주범이 되면서 급기야 유해 조수로 바뀌게 된 것이다.

까치 개체 수가 어느 정도 늘어났는지 알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가 제주도다. 제주도는 원래 까치가 살지 않는 섬이었다. 비행 실력이 형편없는 까치는 제주도까지 날아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1989년에 모 항공사와 모 스포츠 신문이 50여 마리 까치를 제주도에 방사하게 된다. 그 후 25여 년이 지난 현재는 무려 2,600배나 불어난 13만 마리로 추정될 만큼 많아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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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물 속에 들어선 까치집./사진 윤병렬

이렇게 까치가 늘어나면서 피해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가장 큰 피해는 과일이나 농작물을 마구 먹어치워 농사를 망치게 되는 경우다. 개체 수가 적을 때는 먹이 경쟁이 치열하지 않아 농작물에 큰 피해가 없었다. 개체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먹을 것이 부족해지는 현상이 발생하면서 피해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특히 둥지 틀 곳이 부족해지면서부터는 전신주에 둥지를 틀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그에 따른 전력시설 피해가 늘어나게 되었다. 먹이 사슬에서 천적이 없는 최상위층에 자리하면서 그야말로 '생태계의 폭군'이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살펴보면 까치가 주는 농작물 피해는 결국 사람들이 환경을 변화시켜 초래한 결과다. 옛날엔 친근하게 사랑받던 까치가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이 변해 피해를 끼치는 건 아니란 얘기다. 사람도 환경이나 상황이 변하면 마음이 변하는 것처럼 까치들도 환경 변화에 적응해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을 보이는 것이다. 사람과 가장 가까이 살면서 사람들 살아가는 방식을 가장 많이 닮은 새가 바로 까치다. 어찌 보면 반면교사로 삼을 만한 부분이 아주 많은 새이기도 하다. 가장 심각한 '생태계의 폭군'은 까치가 아니라 인간이란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까치를 원망하고 내쫓기 전에 인간이 먼저 반성과 성찰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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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봇대 위에 들어선 까치집./사진 윤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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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만든 까치집./사진 윤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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