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저도 다 알거든요"

<외식>

가족과 외식을 했어.
스테이크와 파스타가 세트로 나오는 메뉴를 주문했지.
파스타는 크림소스가 들어간 것으로.
예지가 가끔 김치 한 조각 먹고 잘난 척하기는 하지만
매운 것을 잘 먹지는 못하거든.
주문한 파스타가 나오니 갑자기 묻더군.

“엄마, 이거 파스타야 스파게티야?”
“어, 파스타이기도 하고 스파게티이기도 해. 스파게티가 파스타의 한 종류거든.”
“아니~ 파스타야 스파게티야?”
“파스타도 맞고 스파게티도 맞아.”
“그러니까~ 스파게티가 맞아, 파스타가 맞아?”

딸 표정을 보니 뭔가 상당히 답답해 보여.
아내 표정도 못지않았지.
어쩌겠어. 이럴 때 나서라고 아빠가 있는 거잖아.

“예지야, 그러니까 그 질문은 예지를 보고 누가
‘사람이야, 이예지야’라고 묻는 것과 같아.
예지 보고 ‘사람이야, 여자야’라고 묻는 것과 같지.
예지는 사람이기도 하고 여자이기도 하고 이예지이기도 하잖아.”

갑자기 딸 얼굴이 빛났어. (그렇게 보였다고)
다부진 표정으로 당연하다는 듯 말하더군.

“아빠, 쉽게 말해서 스파게티가 파스타의 한 종류라는 얘기지?”

그러니까 아가, 아까 엄마가 한 말이 바로 그…
어라? 혹시 아빠가 설명을 정말 잘한 거니?
그런 거니? 후훗.

9월-토닥토닥.jpg

<일기>

그래도 초등학생이라고 일기라는 것을 쓰나 봐.
당연히 ‘비밀’ 그런 개념은 없고
쓰고 나서 태연하게 보여주거나 자기가 읽기도 하고 그래.
그냥 말을 듣는 것과 확실히 느낌이 달라서 또 재밌어.

하루는 수영장에 다녀온 이야기를 쓰고 있더라고.
지나가면서 어깨너머로 보는데
틀린 글자가 바로 눈에 들어오는 거야.
‘처음애는’이라고 썼더라고.
그런데 뒤에 쓴 ‘다음에는’은 또 제대로 적었네.
이제 자존심 다치지 않게 얘기하는 것은 또 아빠 몫이지.

“예지야, 저기 ‘처음애는’과 여기 ‘다음에는’은 같은 ‘에는’인데 다르게 적었네. 생각해보고 고쳐봐.”

몇 분 뒤에 일기장을 들고 와서 보여주더군.
그런데 ‘처음애는’, ‘다음애는’으로 고쳐져 있는 거야.
부드러운 목소리, 밝은 표정으로 말했어.

“어… 예지야, 원래 ‘다음에는’이 맞았는데 좀 헷갈리지?”

자존심 강한 딸이 살짝 움찔했어.
하지만, 전혀 당황하지 않은 듯한 표정으로…

“아빠, 선생님도 다 이해해 줄 거야. 어떻게 하나도 안 틀릴 수 있겠어? 선생님이 고쳐 줄 거야.”
“그래, 그래. 선생님도 이해할 거야. 내용은 잘 썼어.”

딸은 TV도 보고 인형놀이도 하고
책도 보고 뒹굴고 그러더니
한참 뒤에 잠자리에 들었어.

거실 바닥에 널브러진 일기장이 보이더군.
지난 며칠 동안 기록을 흐뭇하게 읽었지.
그런데 어라?
‘처음에는’, ‘다음에는’…
이거 언제 고친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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