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늘 달래고(토닥) 면박(투닥)주는 8살 딸 이야기입니다.
육아 공헌도가 엄마와 견줄 바가 못 되는 아빠로서
그저 딸이 바라보는 사람과 세상 이야기를 짐작하며 옮겨볼까 합니다.

1. 조기교육

아이가 한반도 평화나 남북문제를 묻던가
한국사회의 진보·보수 갈등
아니면 지구 평화와 환경문제
한일 문제와 역사관 그리고 동북아 정세
심지어 진화 생물학의 사회적 의미 등에 대해서 물어봐도
아빠로서 할 말은 있어.
그냥 영어는, 영어 만은 좀 알아서 했으면 좋겠다는 거지.

8살 이예지 양이 아는 것을 물어볼 때와 모르는 것을 물어볼 때가 완전 표 나는 게…
알면 반말이고 모르면 높임말이거든.

"아빠 영어로 우유가 뭐야?"
(우유 정도야…) "밀크!"
"아니, 우유가 뭐냐고~"
"밀.크."
"아니, 우유! 우유 말이야~."

우유가 밀크지 뭐 다른 거 있어?
'카우즈 오일'이 될 수는 없는 거잖아.
생각 같아서는 "밀크라고 이 자식아!"라고 버럭하고 싶지만
자애로운 아빠가 된다는 거…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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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일~ 크"
"아니, 우유! 우유 몰라?"

이제는 그냥 울어버릴 분위기네. 사실 미치고 폴짝 뛸 일이지.
꾹 참았어. 좋은 아빠고 나발이고 했다가도 그렁그렁 눈가가 젖은 딸을 보니…
뭐 어쩔 수 있나. 목소리를 가다듬고 물었지.

"예지야, 그러면 우유가 영어로 뭐야?"
"며~옥 ㅋ"

멱? 묙? 그리고 'ㅋ' 발음 살짝?
그러니까 '밀크' 발음이 문제라는 거냐?
그래, 아가. 영어 만은 네 힘으로 가자.
응원하마.

2. 모전여전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여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늘 버거운 과제야.

아내와 연애할 때 궁금했던 것 같운데 하나가
도대체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는 거지.
뭐 먹고 싶냐고 물어도 그저 돌아오는 답은 '아무 거나'.
그래서 어느 날 작심하고 물었어.

"먹고 싶은 거 없어?"
"없어."
"그러지 말고 먹고 싶은 거 얘기 해 봐. 좋아하는 거 있잖아."
"그런 거 없어. 아무 거나 괜찮아."
"아니, 오늘은 자기 먹고 싶은 거 먹자니까."
"없어."

한숨을 쉬며 돌아섰지. 오늘은 뭐 먹으러 가나 고민하면서….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소매를 잡아끄는 거야.
눈길을 땅에 맞춘 아내는 수줍게…
"딸기만 먹고 살라면 살 수 있을 것 같어"라고 말하더군.

그나저나 얼마 전에 딸이 밝은 표정으로 그러더라.

"아빠 나 오늘도 쉬고 내일도 쉬고, 내일 다음날… 그러니까 모레도 쉬어."
"좋겠네~ 아빠는 내일 일하는데."
"우리 어디 놀러 가면 안 될까?"
"가고 싶은 데 있어?"
"아니."
"놀러 가고 싶은 데 없어?"
"없어."
"평소 가고 싶은 데가 없었어?"
"없어."
"진짜 없어?"
"없다구."

한숨을 쉬며 돌아섰지. 주말에 어디 데려가야 하나 해서…
그런데 갑자기 뒤에서 바지춤을 잡더라고.
눈길을 땅에 맞춘 아이는 수줍게…
"아이스링크…"라고 말하더군.

예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렇겠지만
여성을 이해한다는 것은 늘 버거운 과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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