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놀아본 동네 형들’이 벌인 ‘얼토당토’ 않는 일

진주에는 ‘얼토당토’라는 팀이 있다. 멤버는 단둘. 밴드도 동호회도 아니라고 했다. 5월 14일 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서 ‘꽃거지’ 한영준 씨의 강연이 열렸다. 한영준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100원만요! 학교 짓게요> 프로젝트를 진행해 가난한 나라에 학교를 짓고 있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이 강연을 진주로 끌어온 이들이 ‘얼토당토’라고 했다.

‘꽃거지’ 한영준 진주 초청강연

5월 14일 경남과학기술대학교 100주년 기념관 로비.

‘얼토당토’가 진주에 초대한 한영준 씨의 <100원만요! 학교 짓게요~ 국제 꽃거지 한영준의 공정여행, 남미 그리고 학교> 강연에 앞서 얼토당토의 자원봉사자들은 목소리를 높여 ‘100원샵’을 홍보했다.

기부 받은 물품을 파는 ‘100원샵’을 통해 얻은 수입은 남미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짓는 데에 보태진다.

강연 시작 시간인 오후 8시가 되기 전 홀은 이미 빈 자리가 없었다.

   

‘얼토당토’ 김준성 씨와 추연철 씨로 이루어진 어쿠스틱 밴드 <sunday night blue>의 공연으로 분위기는 부드럽게 풀렸고 이어 ‘국제 꽃거지’라고 불리는 한영준 씨가 맨발로 강연을 시작했다. 한영준 씨는 워킹홀리데이 경험담, 공정여행을 시작한 이유. 그가 사람들에게 100원을 받아 하려는 것은 무엇인지. 특유의 재치로 재미있게 풀어내는 강연에 홀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웃고 안타까워하며 한영준 씨의 공정여행에 깊게 공감했다.

강연을 무사히 치른 ‘얼토당토’의 표정이 아주 밝았다.

“두 달 전에 한영준 씨에게 연락해서 진주 와달라고 하고 자원봉사자들 모집하고 그 뒤로 시간이 정신없이 지나갔어요. 당일인 오늘 아기자기한 기적이 많았어요. 행정기관에서 연락 와서 좋은 말해주시고 경남과학기술대학교에서 강연장도 무료로 빌려주시고 모르는 분들이 연락와서 학교 짓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고 계좌번호도 알려달라고 하고요. 즐거웠어요.”(김준성)

“얼토당토가 지금까지 온라인으로만 실체가 있었고 일을 벌인 건 처음인데 생각보다 판이 커졌어요.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들이 너무 소소해 보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는데 이것도 기쁜 마음이죠. 이번 못지않게 멋질 다음 강연도 준비할 겁니다(웃음).” (안우영)

김준성 안우영의 ‘얼토당토’이야기

이번 강연을 벌인 이들은 김준성 씨와 안우영 씨로 이뤄진 ‘얼토당토’다. 무슨 얼토당토 않는 이름인지 싶다. 하지만 두 사람은 ‘얼토당토’의 이름으로 사비를 털어 강연을 열고 건강한 공정여행을 기획하고 있다. 작은 도시에서 꿍짝꿍짝, 재미있는 일을 만들어가는 이들의 생각이 궁금하다.

/사진 제공 김준성, 안우영

김준성, 안우영 씨는 31세 동갑내기 친구다. 취향도 비슷하고 많지 않은 나이에 결혼했다는 공통점도 있는 두 사람이 친해진 지는 1년 남짓. 둘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서로 끌렸었다고 했다.

“저는 진주에서 직장에 다니고 준성이는 진주에서 활동을 많이 하니까 그런 곳을 오며 가며 많이 봤었어요. 길거리에서 준성이가 노래를 하고 있고 어디 공연을 보러 갔는데 준성이가 공연을 하고 있고요. 멋있어 보였어요.” (안우영)

“공연하면서 앞에 앉아있는 우영이를 보는데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또 이 친구가 ‘엔틱’한 카메라를 들고 있었는데 제가 사진을 좋아해서 노래하는 내내 그 카메라가 보였어요. 공연이 끝나고 우영이가 공연 잘 봤다고 악수를 청하는 거예요. 그래서 카메라 한번 만져 봐도 되느냐고 했어요(웃음). 서로 기분 좋게 만났죠. SNS로 서로 뒷조사를 해보니까 동갑인 거예요. 채팅으로 얘기 나누고 하다가 만나서 친구 하기로 했죠.” (김준성)

김준성 이야기
힘들었지만 하고픈 일을 놓지는 않아


김준성 씨는 현재 산청 간디중학교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이전까지의 시간에 대해 물어봤더니 밴드, 사료공장 등 지금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들이 술술 나왔다. 대학도 돈 때문에 중도에 포기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없이 살아서 힘들게 지냈어요. 고향인 남해부터 삼천포, 진주를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진주에 살고 있죠. 원래 꿈은 뮤지컬배우였는데 집에 돈도 없고 하니까 그쪽 학교에 못 갔었어요. 집에도 잘 안 들어가고 1년을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누나가 대학가는 거 보고 싶다고 해서 다른 과로 해서 대학에 들어갔어요. 당시 학비가 정확히 기억나는데 307만 원이었어요.”

/사진 제공 김준성, 안우영

학교를 그만둔 건 오직 돈 때문이었다고 했다. 방학 동안 307만 원의 학비를 버는 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제대 후 학비 때문에 사료공장에서 고된 노동일을 시작했고 한 달에 120만 원을 받았다. 열심히 하는 모습을 지켜본 사장이 정직원을 먼저 제안했다. 24살 적 판단으로는 당장에 들어오는 돈만 보였고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김준성 씨는 그렇게 학교를 그만뒀다.

“일이 엄청 힘들었어요. 결국에는 몸이 좀 안 좋아졌는데 사장님께서 관리직으로 옮겨주겠다고 하셨어요. 월급도 올려주셔서 180만 원을 받았는데 25살 당시에 180만 원을 받으니까 좋았어요. 부자가 될 것 같았어요. 학교고 뭐고 필요 없고 이 길로 간다고 생각했어요.”

김준성 씨는 비교적 덜 힘든 관리직으로 업무가 바뀌고 연봉도 올랐지만 어느 순간 삶이 무척 고단했다.

“잘하고 싶은 부담감에 하루 10시간 넘게 일만 했어요. 거문도라고 여기서 차 타고 배타고 6시간 걸리는 곳이 있어요. 아침 배를 타려면 새벽에 출발해야 해요. 배달하고 오후 1시 배를 타고 나와서 잠 한숨 못 자고 다시 일하는 거예요. 그런 일정도 일주일에 한번 소화하며 살다 보니까 사람이 말라가는 거예요. 잠도 못 자고 취미는 심야영화 혼자 보는 게 전부고 술도 담배도 안 하고요. 그렇게 1년 반 살았어요. 공허했어요. 돈 쓸 시간도 없으니까 통장에 돈을 쌓이는데 왜 이렇게 사는가 싶고 근데 친구가 자기는 공허함을 채우지 못할 때 후원을 했다고 하는 거예요. 그때부터 적은 금액이지만 아프리카 아이에게 후원을 했어요. 어느 크리스마스에 편지가 왔어요. 제가 후원하는 아이가 편지지 하얀 바탕에 주황색 펜으로 지렁이 같은 걸 그렸고 그 위에는 단체에서 보낸 멘트가 적혀있었어요. 식상한 멘트인데 그걸 보고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여서 엄청 많이 울었어요. 울고 나니 속이 좀 시원해졌고 이 생활을 끝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내가 보람을 느끼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그 길로 사장님에게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얘기했죠.”

/서정인 기자

다른 일자리를 구하던 중 당시 예비사회적기업 단계였던 진주시민미디어센터가 눈에 들어왔다. 월급이 80만 원이라고 했지만 좋아하던 사진, 영화, 노래 등을 하며 보람도 느낄 수 있는 일 같았다. 일이라고 모두 하기 싫은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하루에 12시간씩 센터에 있었는데도 하나도 힘들지 않고 좋았어요. 개인적인 고민과 상처도 있었는데 그게 나아진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시골 가서 노인 분들 영화 보여드리고 트로트 불러드리고 사람들한테 사진 강의도 하고 그런 게 정말 재밌었어요. 그러다 산청 간디중학교에서 활동적으로 움직여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같이 일을 하게 되었어요.”

안우영 이야기
즐기고 좋아하니 저절로 익혀지더라

안우영 씨는 지금 유학원 일을 하고 있다. 경력도 꽤 쌓여 ‘월급사장’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원래의 관심사는 뜻밖에 컴퓨터였다고 했다.

“고등학교까지 사천에서 다니고 남해에서 대학을 다녔었어요. 제가 컴퓨터 게임을 하는 걸 좋아했는데 컴퓨터 고장 날 때마다 제가 고치고 친구들 컴퓨터도 고쳐주면서 컴퓨터 자격증만 고등학교 때 8개 정도를 땄어요. 대학에 갈 생각도 없었어요. 수능 날에도 놀다가 오후에 수능 치러 들어갔어요. 그러다 나중에 남들이 대학 입학했을 때 아차 싶었죠. 찾아보니까 컴퓨터 자격증으로 받아주는 특별전형이 있더라고요. 그렇게 학교 입학해서 다니게 되었어요.”

   

“1년 동안은 학교를 재밌게 다녔어요. 그러다 군대에 갔는데 거기서 제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걸 느꼈어요.”

자격증 덕분에 행정병으로 입대한 안우영 씨는 또래 병사들이 자신은 생각도 엄두도 내지 못했던 걸 당연하고 계획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넓은 범위로 미래 계획을 세우더라고요. 예를 들면 저는 외국은 집에 돈이 많은 사람들만 가는 줄 알았어요. 근데 이 친구들은 집이 부유하지 않더라도 경험을 위해서 자기가 돈을 벌어서 외국을 다녀오고 가서 무얼 경험하고 다녀와서 어떤 걸 할지 자연스럽게 고민하더라고요.”

그전까지는 학교만 잘 다녔지 마냥 꿈도 생각도 없이 그냥 놀았다고 했다.

“군대 갈 때는 죽으러 가는 것 같았는데(웃음) 가서 좋은 사람들을 만난 덕분에 제 미래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죠. 그리고 워킹홀리데이를 가기로 했어요. 제대하고 몇 달간 준비를 해서 호주 가는 비행기를 탔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혼자 고민하고 준비하고 했던 것들이 떠올라서 울컥하더라고요. 도착해서 정신없이 숙소 잡고 2~3일이 흐르고 그제야 오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어를 배우는 것보다 일단 넓은 시야를 가지고 여행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스스로 룰을 만들어 제대로 여행을 하니 1년이라는 길지 않은 시간에도 영어는 그냥 따라왔다.

/사진 제공 김준성, 안우영

“혼자 룰을 정했어요. 한곳에 두 달 이상 머물지 말기, 최대한 많은 외국인 사귀기, 항상 혼자 떠나기, 한국인 이성친구 사귀지 않기 등 4가지 규칙을 철저히 지키면서 돌아다녔죠. 어디를 가든 혼자니까 사람들과 사귀기도 쉽고 하고 싶은 말은 내가 해야 하니까 영어가 많이 늘더라고요.”

호주에서 돌아온 안우영 씨는 편입을 마음먹었지만 대학에 다녀야 할 이유를 졸업장 말고는 찾지 못했고 결국 학교를 그만둔다. 토익도 대학 졸업장도 없었지만 운 좋게 남들이 보기 좋은 곳에 입사해 계약직으로 사회생활을 잠시 했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 진주로 눈을 돌리자 마침 유학원에서 올라온 채용공고가 보였다. 길지 않은 시간 동안 누구보다 제대로 영어를 익혀왔다는 자신감을 살려 면접을 봤고 일을 시작하게 된다.

“1년 동안 최대한 많은 경험을 한 제 노하우를 알려주는 일이 잘 맞을 것 같았어요. 좁은 세상에서 살았던 저처럼 다른 길은 생각 못 하는 학생들에게 넓은 시야를 가지고 해주고 싶었고요.”

왜 ‘얼토당토’ 않은 일을 벌일까

그렇게 전혀 닿을 것 같지 않는 두 사람이 정말 우연히 만났다. 그리고는 비슷한 생각과 취향을 가진 것을 알고 각자의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내다 무언가 같이 해보자는 결론에 다다랐을 것이다. 시작은 소박한 강연이었다.

“저희가 대단하거나 유명한 사람이 아니잖아요. 그냥 소소하게 우리 이야기부터 시작했어요. 준성이랑 제가 여행을 하면서 아쉬웠던 점, 유학원을 하면서 알게 된 좋은 정보들을 학생들에게 알려주는 강연을 몇 번 했어요. 무겁지 않고 재미있게요. 그걸 하고 우리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고 결심해서 팀을 만들었어요. ‘얼토당토’ 말도 안 되는 동네 형들이 모여서 이것저것 하고 싶은 거 기획해서 열고 싶은 강연, 공연, 여행을 해보자는 거죠. 또 가까이에서 열리는 행사 중에 우리만 알기에 아까운 것들이 있어요. 그런 걸 알리는 채널 같은 역할도 겸한다고 하면 될까요.” (안우영)

“어쨌든 졸업 안 했으니 고졸, 여행 좋아하니까 여행 다녀온 얘기. 이런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눴어요. 3번 정도 강연을 하니까 우리 얘기만 하는 게 아쉬운 거예요. 좀 키워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명감으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얼토당토는 그 무엇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은 우리가 좋아하는 주제 위주로 시작한 거고요.” (김준성)

일단은 공정여행

‘여행지의 자연환경을 훼손하지 않는다.’ ‘여행경비가 온전하게 그 지역에 쓰일 수 있도록 현지인이 운영하는 숙소나 식당을 이용한다.’ 이런 나름의 규칙을 지키며 하는 공정여행은 현재 ‘얼토당토’의 최대 관심사다.

“최근에는 네팔에 갔는데 현지인의 집, 운송수단, 식당을 이용하고 그 동네에서 일정기간 그냥 사는 거예요. 사탕수수 같이 베고 커피농장도 같이 가고요. 인원도 많이 가면 안 돼요. 그것도 그 지역에 피해를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그 동네에 좀 스며들면 내가 눈에 들어와요. 저는 동네 한 바퀴 구경하며 도는 데 40분이 걸렸는데 다른 나라 사람들은 3시간이 걸리는 거예요. 내 삶의 속도가 너무 빠른 걸 느꼈어요. 솔직히 이런 여행을 하기는 어렵죠. 돈도 많이 들고요. 대신 쉽게 할 수 있는 공정여행도 있어요. 그냥 그 지역을 배려하며 여행하고 성매매는 생각도 하지 않고 스타벅스 커피 말고 현지인이 파는 커피를 마시는 것. 이런 것도 공정여행이죠.” (김준성)

   

‘얼토당토’는 소박한 첫 공정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여행가면 보통 가서 둘러보고 맛있는 거 먹고 사진 찍고 오잖아요. 갔다 오면 사진이 남고 스트레스는 풀리지만 다른 의미가 있는 걸 하지는 않죠. 이번에 ‘얼토당토’에서 지리산 둘레길을 1박으로 걷는 여행을 할 거예요. 참여한 사람들과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할 게 없으면 쓰레기라도 줍는 그런 여행이요. 5월 31일이에요. 동네든 다른 지역이든 우리가 생각한 이상적인 형태의 여행을 같이하는 거죠.” (안우영)

“이번 ‘얼토당토’의 ‘착한 둘레길 걷기’는 걸으면서 발견하는 나와 내 공동체에 대해 생각하는 여행이 되도록 할 거예요. 묵을 숙소가 전국환경운동연합 전 대표님 댁인데 묵으면서 함께 자연을 어떻게 대할까 고민해보고 주민들에게 피해가지 않는 선에서 동네를 돌아다니고 새벽 공기를 마시고 각자 사색에 잠기고 시도 써보고 하는 프로그램을 짜고 있어요. 외국은 아니지만 제가 네팔이나 필리핀에서 느꼈던 그런 것들을 함께 느껴보려는 여행이죠.” (김준성)

안우영 씨는 6월 말까지만 일을 하고 여행을 떠난다. 여름쯤부터 아내와 다양한 나라를 돌아다닐 계획이라고 했다. 기간은 정확히 정하지 않았지만 일단은 5개월 이상 걸릴 거라고 했다.

/사진 제공 김준성, 안우영

“여행가는 거지만 현지에서 고민도 해보려고 해요. 아주 어렴풋이 꿈꾸는 얼토당토만의 외국 공정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아주 나중에 그걸 이룰 수도 있는 거니까요. 많이 느끼고 겪고 올 거예요.” (안우영)

안우영 씨가 여행을 하는 동안 진주에 남아있는 김준성 씨는 분명 열심히 ‘얼토당토’를 꾸려나갈 듯하다. 준성 씨는 스스로 ‘좀 놀아본 동네 형답게’ 같이 즐겨야 할 일과 해야 할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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