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시계 검사'로 유명…1996년 정치권 입문 4선 경력

'마지막 인생 고향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으로 도지사 보궐선거에 출마했다는 새누리당 홍준표(58) 당선인은 창녕군 남지에서 태어났다.

그는 혹독했던 가난 탓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야만 했다. 남지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잦은 이사 탓에 대구, 창녕 등으로 학교를 옮겨다니다 합천 학남초등학교를 나왔다. 중·고등학교는 대구 영남중·고교를 졸업했다.

한학을 공부했던 한량 기질의 아버지는 평생 가족을 고생시킨 무능한 가장이었지만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곧은 성격이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서 자라면서 어린 홍준표는 보릿고개를 넘기고자 친구 집에서 일을 해야 했고, 영남중·고고를 다녔던 6년 동안도 도시락을 제대로 싸가지 못해 수돗가에서 물배를 채워야만 했다. 그가 방위병으로 복무했던 것도 영양상태가 나빴던 데서 말미암은 체중 미달과 낮은 시력 탓이었다.

홍준표 당선인의 청소년 때 모습.

1977년 그는 고려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검사로 임관돼 청주, 부산, 서울 남부, 광주, 서울지검 등에서 일하게 된다. 서울지검 강력부에 근무하던 1993년에는 이른바 '슬롯머신 사건'을 강단 있게 수사해 제6공화국 황태자로 불렸던 박철언 씨 등 권력 실세를 구속기소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모래시계 검사', '스타 검사'로 도약한 홍 당선인은 지난 1996년 15대 총선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정계에 입문했다. 하지만, 15년간 4선을 하면서도 항상 변방에 머물러야만 했다.

이명박 정부 탄생 후 집권여당 원내대표로 선출된 그는 인사 파동, 쇠고기 파동, 친이-친박 갈등 등 난제를 풀어내면서 급부상했다. 당시 원내대표를 지내면서 돌파 능력과 순발력, 정치감각 덕에 '홍반장'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급기야 2011년 7월에는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에 당선된다. 하지만, 불과 5개월 만에 대표자리에서 물러나야만 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디도스 사건 파문에 따른 압력을 버티지 못한 것이다.

검사 시절 모습.

정계 안팎에서는 그의 돌파 능력과 친서민 마인드 등을 높게 평가하고 있지만, 호불호가 확실한 성격 탓에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이미지'와 함께 잇따른 '막말' 파문에 부정적인 평가도 겹치고 있다. 이번 선거과정에서도 방송사 경비원에 대한 '막말 파문'이 일었고 또 거만하다는 지적도 많았지만 그는 '당당한 것'이라고 맞받기도 했다.

그의 살아온 궤적을 보면 어려운 환경을 극복, 돌파하면서 변방에서 중심으로 들어가고자 노력해왔다. 또 추락해도 포기하지 않고 더 높이 오르려는 의지로 견뎌왔다.

그는 경남도지사 당선으로 다시 한번 도전에 성공했다. 이번 선거과정에서 그의 도전에 '정치적 부활을 위한 욕심'이라는 의문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하지만, 경남도민들은 '마지막 인생을 고향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그의 의지를 진심으로 받아들였다. 이제부터 홍준표 당선인이 그 믿음에 답해야 할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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