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실적 2005년 이후 최저…LNG선·해양설비 등 특수선으로 돌파구
세계를 호령하던 국내 조선업계가 전례 없는 수주 가뭄에 허덕이고 있다. 올해 상반기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데 더해 몇 년 치 먹을거리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이를 증명하듯 지난달 글로벌 수주실적은 2005년 이후 최악을 기록했다.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계는 지난 8월 2억 200만 달러 규모의 선박 6척(14만 8574CGT(표준화물선 환산 톤수))을 수주하며 중국(35척, 70만 4974CGT)과 일본(13척, 20만 646CGT)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이는 클락슨 통계가 누락됐던 2009년 9월을 제외하면 2009년 4월 이후 최악의 실적이다.
그나마 올해 누적 수주량에서는 우리 조선업계가 164억 1630만 달러(154척, 479만 714CGT)를 기록해 중국(260척, 426만 4602CGT)과 일본(77척, 149만 2832CGT)을 누르고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글로벌 '조선 빅3'를 보유한 한국이 수주 가뭄에 시달리는 이유는 2008년부터 연달아 터진 미국발 금융위기와 유로존 재정위기 여파로 신규 수주가 급감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박업계의 큰손인 그리스 등 유럽 선주가 유로존 사태의 직격탄을 맞아 선박 발주를 꺼리고 있다.
이 때문에 중소 조선소는 물론 대형 조선소까지 전례 없는 수주 가뭄에 허덕이는 것이다. 이는 실제 수치로도 드러나는데, 국내 9곳의 조선소가 올해 상반기에 수주한 물량이 318만CGT에 그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무려 61.4%나 감소한 것이다.
한 대형 조선사 관계자는 "경제위기 이후 수주량이 줄더니 올해 초부터는 수주가 거의 안 되고 있다"며 "통상 주요 선주가 있는 유럽과 미국은 연말연시 분위기에 휴가까지 겹치기 때문에 하반기 수주도 기대하기 어렵다. 이대로라면 내년까지 수주 가뭄이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그나마 대형 조선소는 특수선 등의 발주가 간간이 이어지며 견뎌내고 있지만 문제는 소형 조선소이다. 일반 상선을 주로 생산하는 이들 조선소는 그나마 있는 물량도 중국 등이 저가로 수주해 가면서 사실상 손을 놓은 곳이 태반이다. 지난 2월 통영의 삼호조선이 수주 가뭄을 견디다 못해 파산했고, 21세기조선도 정리 절차에 들어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인근의 신아SB(구 SLS조선) 역시 재기를 노리고 있지만 회생 노력이 지지부진해 애를 태우고 있다.
문을 닫는 조선소까지 등장하는 등 불안한 상황이 계속되면서 대형 조선사는 특수선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컨테이너선이나 벌크선 등 중국 업체가 저가 수주로 시장을 잠식해오는 선박 대신 LNG선 등으로 숨통을 틔우는 것이다.
한 조선소 관계자는 "컨테이너나 벌크 등에 비해 LNG선은 가격 하락폭이 적어 돈 되는 장사다"며 "선주 역시 가격이 제일 많이 내려갔을 때를 기다려 일제히 투매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대형 조선사 관계자는 "상선이 환금성이 없다보니 LNG선이나 드릴십 같은 특수선 위주로 수주 노력을 하고 있다. 고유가 탓에 오일 메이저가 심해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발주하고 있다"며 "(특수선 건조 기술이 없는) 중국과 일본은 조선업계가 정말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에서 특수선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자 행운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투매로 선단을 꾸릴 정도로 발주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아직 수요처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이런 특수선은 일단 발주해 놓고 수요처를 찾는 식이다. 이렇게 해도 LNG선은 남는 장사다. 40~50%가량 더 얹어서 팔 수 있고 운임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 조선업계는 이들 특수선으로 불황기를 근근이 견디고 있다. 발주 자체가 죽은 상황에서 쉽사리 회생 기미가 안 보이자 일반 상선 대신 LNG와 해양설비 등 특수선에서 활로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올해 목표를 채우고자 노력 중이지만 내년 경제 전망이 중요하다. 선박 발주가 되살아나는 시점은 대략 유럽 경제위기 해소 시점과 비슷할 것으로 본다"며 "지금으로서는 유럽 쪽에서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방법밖에 없다. 당장 내년에 해소된다고 전망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고 말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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