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사람] 통영 유영초교 박성진 교사

창원 극동방송 앞 88야구장. 0-11 콜드패. 그러나 통영 유영초등학교 야구부 아이들 표정이 밝다. 큰 점수 차로 패해 감독 표정이 어두울 법도 한데 싱글벙글하긴 마찬가지다. 이들을 지도하는 감독은 선수 출신이 아닌 순수하게 야구를 좋아하는 교사 박성진(29) 씨다.

"어려서부터 야구를 좋아했어요. 경남에 몇 안 되는 야구를 교기로 하는 마산 양덕초등학교를 나올 수 있었다는 게 행운이죠." 박 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야구부 훈련을 봐왔다. 다른 아이들이 하교하고 없을 때 혼자 남아 야구부 훈련모습을 지켜봤다. 당시 롯데자이언츠 선수로 활약하던 박정태 코치가 양덕초등학교에 방문해 사인을 해줬다. 이때부터 소년의 야구에 대한 꿈이 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좋아하는 야구를 마냥 할 수는 없었다. 야구부에 가입하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운동보다 공부를 하길 바랐다. 사실 돈이 많이 든다고 생각해 엄두도 못 냈다. 그러나 그 무엇도 박 교사의 야구에 대한 열정을 꺾지 못했다. 중학생 때 롯데자이언츠 팬클럽 채터스야구단에 가입했다. 그러나 어른이 중심인 야구단이었기에 어울리기 쉽지 않았다. 물을 떠다 나르는 일을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중학생 박 씨가 야구를 할만한 환경도 공간도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통영 유영초 야구부 학생들.

이를 안타까워했던 박 교사는 이제 학생들과 함께 못다 한 꿈을 이루고 있다. 2009년 통영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한 박 교사는 야구 불모지 통영에서 초등학생들이 마음껏 야구를 하는 학교를 만드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엘리트 육성 스포츠로서의 야구가 아니라 학생 누구나 즐기는 야구를 하고 싶었다. 결심이 서고 난 작년 7월부터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사비로 야구장비를 하나 둘 구입했다. 학생들은 텔레비전을 통해서만 보던 야구장비를 직접 만져보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야구부가 없었던 것이 놀라울 정도로 야구를 해보겠다는 아이들의 지원이 넘쳐났다.

"추운 겨울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 캐치볼 연습을 했어요. 그리고 내가 쳐주는 펑고를 받으며 아이들 수비실력도 키워나갔습니다. 학원 가야 하는 애들은 학원가고 남은 애들은 야구를 하며 강압적이 아닌 즐기는 야구를 한 거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점점 팀으로서 모습이 갖춰지기 시작했다.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자고 싶은 법. 이윽고 목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2012년 경남초·중학생종합체육대회 출전이었다.

하지만, 맞붙어야 할 마산 양덕초교, 창원 사파초교, 김해 삼성초교는 대한야구협회에 선수 등록된 엘리트 육성 팀이었다. 프로출신 전문감독과 학부모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학교와의 대결은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같았다. "저런 오합지졸을 데리고 무슨 야구를 한다고,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하는 야구협회 관계자의 괄시와 눈총도 들려오는 듯했다.

실제로 박 교사는 대회 참여 여부를 대회 당일까지 고민했다. 학생들의 부상을 박 교사도 걱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대로 멈출 수가 없었다. 학교장, 교감의 적극적인 격려와 학생들의 의지로 이윽고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첫 상대로 맞붙은 김해 삼성초. "아이들이 상대팀 몸 푸는 모습을 보고 그대로 쫄아버리더라고요. 그래서 기를 살려주려고 고함도 크게 질러주고 했습니다." 고함의 힘이었는지 효과가 금방 나타났다. 1회초 선제공격에서 주전투수로부터 한주형 학생이 2루타를 쳐 상대팀을 놀라게 한 것이다. 아이들에게 정말 값진 경험이 되었을 경기가 끝나고 박 교사는 아이들에게 탕수육과 짜장면을 사줬다. 0-11이라는 점수는 중요치 않았다. 출전했다는 것 자체가 큰 경험이 됐다.

"처음으로 정규 타석에 들어서 보고 시합이라는 것을 해보며 아이들 스스로 많은 성장을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박 교사의 이런 노력 덕분에 야구교실이 통영교육지원청으로부터 주5일제 토요프로그램으로 지정받았다. 이제는 통영 지역 전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야구교실이 확대되고 있다. 박 교사의 작은 시작이 야구 불모지 통영에 새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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