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배우는 도시재생] 시민 의견 최대한 존중직장·주거분리 약화시키고 공공시설 빈 도심에 확보
도시는 태어나고 성장하고 쇠퇴한다. 우리나라 도시는 양적 팽창에서 질적 성장으로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이 같은 고민과 새로운 실험들이 '도시재생'으로 진행되고 있다. 도시재생은 도시를 물리적으로 재건축하는 틀을 벗어나 도시를 특화, 재활용해서 새로운 기능으로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도시경관도 더욱 중요하게 떠오르고 있다. 특히 통합 창원시는 '마산 르네상스'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쇠락한 창동·오동동·어시장 마산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는 재생사업은 마산을 새롭게 탈바꿈하는 역점사업이다. 그러나 세계 여러 도시의 도시재생 사례를 보면 성공한 것보다 실패한 것이 더 많다. 그만큼 생물과 같은 도시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다행히 창원시, 주민, 전문가들의 의지가 강하다. 최근 마산 원도심이 정부의 도시재생 R&D 시범도시로 선정된 것은 고무적이다. 창원시는 올해 마산 원도심 재생사업 아이디어 공모전을 거쳐 연말까지 마스터플랜을 마련할 계획이다. 이 같은 중요한 시점에 다시금 도시재생의 기본 철학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파리 벨빌국립건축대학 도시건축연구소 방문교수로 가 있는 창원대(건축학부) 유진상 교수가 도시재생 전문가인 피에르 미켈로니 교수와 좌담한 내용을 보내왔다. 파리 도시정비 프로젝트 책임 건축가로 활동한 미켈로니 교수를 통해 창조적 도시재생을 위한 파리시 노하우를 들어본다.
△유진상 교수(이하 유) : 한국은 도시재생과 재개발 개념, 관련부서도 비교적 확실하게 구분돼 있지만 각각의 역할은 모호하다. 프랑스에서는 도시 재생과 재개발 개념 자체를 구분하지 않는 것 같다. 프랑스에서 재생과 재개발의 관계는 어떤 것인가?
△미켈로니 교수(이하 미) : 프랑스에서는 재생, 재건, 재개발의 개념이 따로 분리돼 있지 않고 재정비라는 용어를 쓴다. 왜냐하면, 어떠한 재개발도 기존 도시의 장소적 가치를 최대한 존중하며 진행되므로 완전히 새로 창조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최근 파리의 창조도시 개념을 벤치마킹하는 도시가 많다. 하지만, 상주 관광객은 많은 반면 적은 시민, 작은 도시(서울의 5분의 1)로 구성되는 파리의 특수성을 고려해 일방적 도시재생 벤치마킹은 주의해야 한다. 특히 파리시는 어떠한 형태로 재개발되더라도 개발 수요가 상존하고 그 장소의 이용률이 매우 높다. 이 같은 자신감은 타 도시보다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방식의 공공, 문화공간 창출로 이어진다. 반면 역사성, 장소적 가치의 보존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보수적, 원칙적이다.
△유 : 파리시도 처음부터 도시관리에 성공했던 것 같지는 않다. 파리의 도시재생 방식, 성과와 개선점을 간단하게 소개 바란다.
△미 : 파리 도시 재생은 이전 적지(도심 속 공장, 저장고, 폐선 부지 등을 이전해 비워지는 장소)를 중심으로 진행됐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장소의 역사성과 공공성을 중심으로 재생, 재개발을 한다는 점이다. 이것이 출발점이다. 다음 과제는 자동차를 줄이는 방법, 도시기반시설 정비의 순이다. 이러한 원칙과 계획 순서는 '누구를 위한 도시재생'인가 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물론 파리 도시관리도 처음부터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1950~1960년대에는 기존 도시를 뒤집는 미숙한 형태의 전면 철거식 재개발(재개발지구를 지정, 전면 철거 후 재개발을 가능하게 한 법 제도)이 성행했다.
1970년대 중반 시민의 비판이 도시관리에 개입됐고, 도시 공공 공간, 외부공간의 질적 문제를 고민한다. 또한 토지이용계획(Plan d' Occupation des sols)을 법 제도에 도입한다. POS는 지구별 건축물의 높이 제한, 용적률 차별 적용, 건축선 지정을 통해 파리의 도시경관을 회복, 보존하는 데 일조했다. 일례로 상업지역에 주거가 섞이도록 장려해 야간에 도시가 공동화되는 것을 방지했고 또한 가로, 블록, 필지, 연속적 도시경관 계획으로 기존 도시구조를 보존 개선했다.
△유 : 시민의 영향력, 파리 시민이 자긍심을 갖는 공공, 문화공간의 생성 요인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기 바란다.
△미 : 시민의 입김이 매우 세다. 특히 '도시재생 협의체'가 있어 관·시민·전문가·건설주체가 모여서 수십 번 토의를 한다. 의견 취합을 반복하면, 시민에게 '당신의 프로젝트'였던 것은 바로 '나의 프로젝트'가 되고 공동의 책임의식이 생긴다. 과거 자동차로 외곽 문화시설을 즐겼던 파리 시민은 시내에서 시간을 보내기를 원하고 이는 바로 시 정책에 반영됐다. 파리시는 지하철역, 버스정류장을 더욱 가깝고 촘촘하게 재편했고 용도별 조닝개념(직장과 주거 분리) 등을 약화시켰다. 도심 빈 공간에는 무엇보다도 우선으로 공공, 문화, 공원시설을 공급했다.
△유 : 때로는 전통과 역사성을 가지는 장소가 시민의 자율권보다 우선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해된다. 도시의 장소성, 역사성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파리 베르시 재정비 지구는 '포도주 저장고'라는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며 도시를 재생했다. 하지만, 역사적 의미가 약한 파리 리브고슈(기존 철도역사 재개발)에서도 역사성을 찾을 수 있는가? 그리고 공공 공간의 중요성과 투자 가치 회수에 대한 딜레마는 어떻게 해결하는가?
△미 : 그렇다. 장소적 가치는 시민의 자율권보다 우선할 수도 있다. 베르시 지구는 공원, 와인 저장고의 역사가 존재했고 현재는, 정원, 시네마, 호텔, 주거, 스포츠센터 기능으로 대체됐다. 역사의 흔적들을 리모델링해 보존했는데 특히 와인 저장고는 파리시가 소유권자였기 때문에 보존할 수 있었다. 옛것이 전혀 없어 보이는 리브고슈 지구에도 3개의 산업 건물(공장, 대형 제분소, 아틀리에)이 있어 이를 보존했고, 기차역에서는 역사성보다 장소성을 존중했다. 우리는 예전 기찻길 위에 새로운 도로를 만들고 구 파리와 새로운 파리를 연결하는 기능들을 부여했다. 그리고 파리 내부에는 개발 수요에 비해 가용지가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개발할 때 위험성이 적다. 그래서 오히려 공공 공간에 대해 과감한 투자를 한다. 공공이 원하면 그것이 투자가치의 회수 아닌가?
△유 : 파리시는 도시 재개발에 따른 갈등과 후유증은 없는가?
△미 : 파리 인구는 230만 명이다. 하지만, 대규모 주거단지를 재건축해도 인구의 이동이 없고 새 거주지에는 원주민이 거의 정착하기 때문에 갈등의 소지가 별로 없다. 파리에도 낙후지가 많았지만 2차대전 전후 복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재개발됐다. 또한, 우리는 규모 있는 재개발은 거의 항상 비어 있던 곳, 즉 이전 적지를 이용했다.
△유 : 파리는 일반적으로 APUR(파리 도시재생 총괄)에서 재개발 기본계획을 짜고, 약 50% 지분을 가진 개발회사(societe d'economie mixte : 민간협동개발공사)가 사업을 추진하는데, 문제는 없는가?
△미 : 아무 문제가 없다. 개발회사가 땅을 매입한 후 인프라를 먼저 구축한 후에 재판매에서 분양까지 책임진다. 한국은 사업자가 공동주택단지를 먼저 지어 입주 후 공공, 문화시설, 공원 등이 들어서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에겐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공동의 공간, 공공 공간의 구축이 우선이다.
정리/유진상 교수
-건축가, 도시계획가 -파리시 도시설계원(Atelier Parisien d'Urbanisme) 근무 -전 파리 벨빌국립건축대학 교수 (파리시 도시설계원에서 파리 도시정비 프로젝트 책임 건축가로 활동-국립대 교수와 겸직) -파리 리브고슈 협의정비지구(ZAC Paris Rive Gauche), 뢰이 협의정비지구(ZAC Reuilly), 베르시 협의정비지구(ZAC Bercy) -포르트 들라 샤펠(Porte de la Chapelle) 지역 재정비 계획, 베르시 샤랑통(Bercy-Charenton) 지역 재정비 계획
◇유진상 -현 파리 벨빌국립건축대학 도시건축연구소(IPRAUS) 방문교수 -현 국립창원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건축학 박사 -서울광장설계 : 국제건축가연맹(UIA) 한국대표건축가 선정 -창원시·통영시 도시경관 기본계획 -창원시 공원녹지 기본계획 -고양시 화정명품거리 경관설계 -그린건축포럼 회장 -주택 '자하루(自下樓)' 설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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