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외침, 메이데이 (8) 판결문 다시보기

사측 산업안전보건법 위반혐의
1·2심 재판부, 책임 인정 안 해
대법원 '원심 법리 오해' 판단
"다양한 산재 발생 전력 있어
사업주에 예방 의무 요구돼"
23일 파기환송심 선고 주목

2019년 5월 7일 창원지방법원 통영지원 유아람 판사는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 크레인 사고 형사 책임을 따지는 재판에서 삼성중공업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판결이 뒤집힌 것은 2021년 9월 30일. 대법원은 원심 무죄 판결을 파기, 다시 심리·판단하라며 창원지방법원에 사건을 돌려보냈다. 사건은 하나인데 각기 다른 판결. 파기환송심 선고를 앞두고 지난 1∼3심 판결문을 되짚었다. 법관들은 각자 무엇을 달리 봤을까. 판결문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삼성중공업 임직원과 협력업체 임직원, 그리고 삼성중공업이다. 삼성중공업 임직원과 협력업체 임직원은 업무상 과실 치사상 혐의를,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장과 협력업체 대표이사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까지 받는다. 삼성중공업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를 받는다.

 

◇2017고단940, 2018고단368(사건번호) =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형사재판에서 깊이 다뤄진 공소 사실은 업무상 과실 치사상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었다. 주체마다 어떤 의무가 있는지, 의무를 저버린 사실이 있는지를 따졌다.

1심에서 골리앗 크레인 주 신호수, 보조 신호수, 현장반장, 운전수 등 삼성중공업 현장 노동자는 공소 사실을 인정했다. 삼성중공업 관리감독자는 안전대책과 규정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사고가 났고, 현장 노동자를 지휘하고 감독할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지브 크레인 주 신호수, 현장반장, 운전수 등 협력업체 현장 노동자는 골리앗 크레인이 움직여 난 사고라며 공소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협력업체 대표도 현장 노동자를 살필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주의 의무가 없다며 공소 사실을 부인했다.

유 판사는 작업을 벌이는 지브 크레인 가까이 골리앗 크레인이 접근했고, 충돌하고 나서 부서진 구조물이 떨어진 데 하필 간이화장실과 흡연장소가 있어 여러 노동자가 있었다는 점을 사고 원인으로 봤다.

유 판사는 의료행위 판례를 들어 "통상 업무 수행자가 사전에 예상하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정도로 과도한 주의의무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법리는 산업재해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나아가 노동자 3만 5000명가량이 일하는, 총넓이 330만㎡ 이상인 사업장에서 "관리 감독자가 모든 노동자를 직접 지시하고 감독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시했다.

유 판사는 서로 상대방 움직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크레인 간 사고이기에 각 크레인 현장반장과 관계자 업무상 과실 치사상 혐의를 인정했다. 다만, 삼성중공업과 협력업체 상급 관리 감독자에게 구체적, 직접적 주의 의무가 없다며 업무상 과실 치사상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마찬가지 삼성중공업도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2019노941 = 반면, 창원지방법원 제3형사부는 항소심에서 삼성중공업 상급 관리 감독자 3명, 협력업체 상급 관리 감독자 1명 업무상 과실 치사상 혐의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업무상 과실'이 인정되려면 피고인들이 결과를 예견할 수 있는데도 회피하지 못했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봤다. 1심과 다르게 "과실 유무 판단에는 같은 업무와 직무에 종사하는 일반적 보통인의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주의 정도를 표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봤다.

재판부는 2017년 3월 21일 거제조선소 8안벽에서 난 크레인 사고에 주목했다. 골리앗 크레인이 크롤러 크레인 보조붐과 충돌한 사고였는데, 비슷한 사고가 다시 날 가능성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고 봤다. 그런데도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사고 발생 위험을 높였다는 것.

재판부는 "그렇지 않다면 동종업계 종사자 모두가 위험을 예상할 수 있고, 그 위험을 방지하거나 회피할 수 있었음에도 규정이나 지침을 마련하지 않았을 때 어느 누구에게도 업무상 과실이 인정될 수 없는 결과가 되어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특히 "안전대책이 충분하더라도 현장 노동자 과실로 사고가 날 수 있지만, 위험이 예견되는 상황에서 안전대책을 마련할 때 위험을 회피하거나 감소시킬 수 있다면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주의 의무를 위반한 것이 과실이 아니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재판부는 삼성중공업과 협력업체 상급 관리 감독자에게 구체적, 직접적 주의 의무가 없다는 1심과 달리 "기업 수직적 계층구조 아래에서 근본적인 안전대책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권한은 상급 관리 감독자에게 있으므로 산업재해 예방 안전관리 책무도 권한에 비해 무겁고 상급 관리 감독자 각자 담당하는 안전관리업무를 게을리 한 사실을 인정할 수 있는 이상 업무상 과실로 평가될 수 있고 과실로 난 결과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다만, 항소심 재판부는 원심을 파기한 4명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혐의는 1심과 마찬가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삼성중공업 대상 검사 항소는 기각했다.

◇2020도3996 = 대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상 삼성중공업에 크레인끼리 충돌하는 산업안전사고를 막을 합리적인 안전조치 의무가 있다고 해석했다.

대법원도 항소심과 마찬가지로 8안벽에서 난 크레인 사고를 언급하며 "이미 크레인 간 충돌 사고가 수차례 발생한 바, 사업주는 합리적으로 필요한 범위 내 안전조치를 보강해 크레인 간 충돌에 따른 대형 안전사고 발생을 예방할 의무가 요구된다"고 봤다.

대법원 판결문에서는 여러 차례 '특성'이 언급된다. "수많은 근로자가 동시에 투입되고, 다수 대형 장비가 수시로 이동 작업을 수행하며 육중한 철골 구조물이 블록을 형성하여 선체에 조립되는 공정이 필수적이어서 대형 크레인이 상시로 이용되고, 사업장 내 크레인 간 충돌 사고를 포함하여 과거 여러 차례 다양한 산업재해가 발생한 전력이 있는 대규모 조선소"라는 점이 판단에 영향을 미친 셈이다.

대법원은 △안전대책을 포함하지 않고 작업계획서를 작성한 점 △크레인 충돌 예방 신호방법을 제대로 정하지 않은 점 △출입금지구역 설정 등 조치를 하지 않은 점을 무죄로 판단한 원심이 법리를 오해했다며 삼성중공업 책임을 인정했다.

한편, 창원지방법원 형사3-2부는 오는 23일 오후 1시 55분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파기환송심 선고를 예고했다.

/최환석 김다솜 기자 che@ido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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