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관계 악화로 일본에 대한 감정이 안 좋은 시기에 애니메이션 덕후들에게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바로 지난 7월 18일에 발생한 '교토 애니메이션 제1 스튜디오 방화사건'인데요. 일본 국내는 물론, 전 세계 많은 유명인과 애니메이션 팬들이 애도를 전했는데요.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방화를 저지른 40대 남성은 자기 소설을 교토 애니메이션이 표절했다는 확신을 하고 분노에 빠져 끔찍한 사건을 저질렀습니다. 이 사고로 사망자 35명이 발생하고 많은 부상자가 발생했는데요. 한국인 부상자도 1명 있다고 하지요. 쾌유하길 바랍니다.

교토 애니메이션 팬이 교토 애니메이션 등장 캐릭터를 이용한 일러스트를 그려 방화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했다. / 페이스북 Ethan Seth Abrea
교토 애니메이션 팬이 교토 애니메이션 등장 캐릭터를 이용한 일러스트를 그려 방화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했다. / 페이스북 Ethan Seth Abrea
지난 7월 18일 방화로 인해 교토 애니메이션 제1 스튜디오에 근무하던 직원 35명이 사망하고 많은 부상자가 방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KBS 뉴스 갈무리
지난 7월 18일 방화로 인해 교토 애니메이션 제1 스튜디오에 근무하던 직원 35명이 사망하고 많은 부상자가 방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KBS 뉴스 갈무리
한일관계가 악화된 가운데 일본 아사히 신문에서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 사건'을 추모하러 온 한국인 기사를 실었다. /아사히 신문 갈무리
한일관계가 악화된 가운데 일본 아사히 신문에서 '교토 애니메이션 방화 사건'을 추모하러 온 한국인 기사를 실었다. /아사히 신문 갈무리

요즘 같은 민감한 시기에 일본 애니메이션 회사와 그 작품들을 소개하기가 껄끄럽지만 그래도 애니메이션을 세계에서 제일 많이 생산하는 나라가 일본이니 독자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지역, 여성, 노동자 중심의 '교토 애니메이션'

약칭이자 애칭으로 '쿄애니'라 불리는 '교토 애니메이션'은 이름에 나와 있는 것처럼 교토에 스튜디오를 두고 있습니다. 현 사장 부인이자 창업자인 '핫타 요코'는 1981년 동네 주부들과 함께 도쿄 유명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채색 외주 작업을 하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20년 이상 외주작업 기술로 2003년에는 첫 자사 애니메이션 <풀 메탈 페닉! 후못후>로 원청 제작을 시작하게 됩니다. 이렇게 여성 주부들로 회사가 설립된 점, 지역에서 설립되어 도쿄 중심 애니메이션 회사와 대등하게 성장 한 점을 눈여겨봐야겠습니다.

교토 애니메이션 CI
교토 애니메이션 CI

더불어 교토 애니메이션 고용 형태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일본이 자랑하는 애니메이션 분야이지만 막상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렇게 자랑할 만한 수준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젊은 애니메이터들이 6일 근무에 잔업까지 해도 한 달 급여가 우리 돈으로 130여만 원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일본 비영리 운동법인 '젊은 애니메이션 제작자를 응원하는 모임'이  2016년 조사한 내용을 보면  73.8%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하는 개인사업자 형태로 일하고 있으며 급여에는 46.4%가 완전 성과급제, 기본급과 성과급제를 합쳐 적용되는 경우도 39.3%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반면 교토 애니메이션은 주로 정직원을 중심으로 제작이 진행되고, 급여도 성과급제가 아닌 월급제이기 때문에 작업량이 많든 적든 일정한 급여가 지급됩니다. 인력 유출이 적고 애니메이션 퀄리티가 꾸준하게 유지되는 비결이 바로 이런 이유가 아닐까 합니다. 지역에서 눈여겨볼 세 가지일 것 같습니다.

일본의 애니메이션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지만 젊은 애니메이터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본 비영리 법인 ‘젊은 애니메이션 제작자를 응원하는 모임’이  2016년 조사한 내용이다. /그림 손유진
일본의 애니메이션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지만 젊은 애니메이터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일본 비영리 법인 ‘젊은 애니메이션 제작자를 응원하는 모임’이 2016년 조사한 내용이다. /그림 손유진

교토 애니메이션의 작품들

그럼 '쿄애니' 작품 몇 가지를 살펴봅시다. 대표적인 작품을 들라고 한다면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라이트 노벨을 원작으로 독특하고 비일상적인 것을 좋아하는 소녀 스즈미야 하루히가 평범한 소년, 외계인, 시간여행자, 초능력자 친구들과의 얼렁뚱땅 고교생활을 그린 'SF 학원 러브코미디' 물입니다. 2006년 4월부터 7월까지 심야 시간대에 전 14화로 방송되었으며 2009년에는 기존 14화에 신작 14화를 추가해서 총 28화로 2기가 방영됩니다. 14화가 방영되었던 1기 때는 대 히트를 기록하며 '쿄애니'를 전성기로 이끌었는데요. 그러나 2기에서 신작 14화가 방영된 시기에 팬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습니다. 이름하여 무한의 루프. '엔들리스 에이트' 에피소드 때문이었습니다. 14화 중 무려 8화를 시간의 틀 속에 갇혀 버렸다는 내용으로 8화를 계속 반복하여 방영했는데요. (앵글 변화나 캐릭터 옷 등에서 조그마한 변화는 있습니다만) 같은 내용을 8주에 걸쳐서 봐야 하는 팬들 처지에서는 정말 고통스러웠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다음 화에서는 무한루프가 끊어지겠지'라고 기대하며 봤다가 8번이나 반복되는 스토리에 머리를 뜯으며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그나마 이듬해 2010년 봄, 극장판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이 개봉하면서 팬들 분노를 잠재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2기에서 새 에피소드 14개 중 8개의 내용이 무한 반복으로 방송되어 시청자들로 부터 원성을 샀다. /그림 손유진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2기에서 새 에피소드 14개 중 8개의 내용이 무한 반복으로 방송되어 시청자들로 부터 원성을 샀다. /그림 손유진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국내 포스터. '엔들리스 에이트' 사태로 떠난 팬심을 이 극장판으로 만회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소실 국내 포스터. '엔들리스 에이트' 사태로 떠난 팬심을 이 극장판으로 만회했다.

앞서 소개한 '엔들리스 에이트' 사건 이후로 위상이 흔들렸던 '쿄애니'는 2009년 여고생 밴드부 일상을 다룬 <케이온!>이 성공하면서 '쿄애니' 입지를 더욱더 튼튼하게 만듭니다. 특히 <케이온!>은 한국에서도 열풍이 일어나 악기 구매 급증으로 이어졌다는 설도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 교토부 국세조사 홍보대사까지 맡았는데요. 이 포스터의 도난 사고가 빈번한데다가 경매사이트에 올라왔다는 이야기도 있군요.

'쿄애니'의 정성기를 이끈 작품이자 일본 교토부 국세조사 홍보대사까지 맡았던 〈케이온!〉 포스터
'쿄애니'의 정성기를 이끈 작품이자 일본 교토부 국세조사 홍보대사까지 맡았던 〈케이온!〉 포스터
당시 이 포스터의 도난 사고가 빈번했다고. /그림 손유진
당시 이 포스터의 도난 사고가 빈번했다고. /그림 손유진

그리고 이건희 삼성 회장 투병 관련 TV조선 보도에서 이건희 회장이 병실 TV로 보고 있던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해져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오른 <목소리의 형태>도 바로 '쿄애니' 작품입니다. 초등학교 때 장애인 여학생을 왕따했던 가해자 주인공이 반대로 왕따를 당하게 되면서 고교생이 된 후 다시 그 여학생을 만나며 치유를 해 가는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입니다. 다소 주제가 무겁기는 하지만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건희 삼성 회장 투병 관련 TV조선 보도 화면에 나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작품 〈목소리의 형태〉 /그림 손유진
이건희 삼성 회장 투병 관련 TV조선 보도 화면에 나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작품 〈목소리의 형태〉 /그림 손유진
〈목소리의 형태〉 포스터
〈목소리의 형태〉 포스터

수많은 작품이 있지만 최근 애니메이션 <바이올렛 에버가든>을 소개합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최근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 상황이 썩 좋지는 않습니다. '쿄애니' 측에서 마련한 자구책은 바로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입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오리지널 콘텐츠로 일본 애니메이션을 많이 제작하고 있는데요. '쿄애니'가 '넷플릭스'의 투자를 받아 제작 애니메이션입니다. 유럽풍(?) 가상 국가가 배경인데요. 전쟁 병기로 살아온 '바이올렛'이라는 소녀가 전쟁이 끝난 후 '자동 수기 인형'이라는 편지 대필가로 일하면서 다양한 의뢰인들과 만나 겪는 이야기입니다. 역시 '쿄애니' 수준급 작화와 자체 공모한 감동적인 스토리로 많은 팬에게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2020년 극장판 개봉을 앞두고 있습니다만 '쿄애니 방화사건' 영향으로 제때 개봉(넷플릭스 스트리밍)이 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다행히 8월 13일 유튜브에 극장판 '바이올렛 에버가든 외전 - 영원과 자동수기 인형' 예고편이 업로드되었습니다.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도 '넷플릭스'를 통해 '바이올렛 에버가든'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고 있다.
교토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도 '넷플릭스'를 통해 '바이올렛 에버가든' 스트리밍 서비스를 하고 있다.

이 외에도 많은 작품이 있습니다만 너무 깊게 이야기하면 덕후가 양성되기 전에 다들 양덕동(養덕洞)을 떠날 것 같아 이 정도에서 정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화재가 발생한 '교토애니메이션' 제1 스튜디오는 철거를 하여 추모공원이나 추모비를 설치할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방화사건으로 작업 중인 원화가 불에 타버려 많은 작품이 방영 취소나 연기가 되어 애니메이션 덕후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습니다. 어서 빨리 수습되어 좋은 애니메이션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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