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부터 재료연구 외길
연구소, 시험평가·기술지원
인력·예산 적지만 성과 커
일본 수출규제 대책 찾으려
소재 스마트데이터 구축 중
로드맵 만들어 재발 막을 것

한양대학교에서 금속가공학을 전공한 이정환(61) 재료연구소 소장은 자타공인 대한민국 소재산업의 전문가다. 1982년 재료연구소에 몸담아 소재 연구개발의 최전선에서 활약해 왔다. 그가 주로 연구한 분야는 자동차나 항공기 등에 사용하는 금속소재다. 또 금속소재를 이용한 융합소재 역시 그의 전문 분야다.

-재료연구소는 일반인들에게 친숙한 조직은 아니다. 소개를 부탁한다.

"재료연구소는 창원에 있는 소재 분야 정부 출연 연구기관이다. 1976년 '한국기계금속시험연구소'로 시작해 '한국기계연구소'가 됐다. 1992년 한국기계연구소가 한국기계연구원으로 승격되면서 본원이 대덕연구단지로 이전했는데, 창원은 재료 연구 분야를 중심으로 분원이 됐다. 2007년 지역단체의 요청을 수렴해 현재의 재료연구소가 됐다. 재료연구소가 연구하는 분야는 세라믹·금속·표면·융합소재와 제조 공정 등이다. 연구개발한 소재를 시험평가하고 이 소재를 기업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기술지원하는 것까지가 재료연구소의 역할이다."

-시험평가나 기술지원은 뭔가?

"만들어진 소재를 정밀 분석평가해 신뢰성 확보를 하는 거다. 소재의 물성이나 화학분석 따위를 한다. 그리고 소재에 불량이 있다면 왜 불량이 났는지, 이를 보완할 솔루션 따위를 마련하기도 한다. 단순 기술개발이 아니라 개발한 기술을 기업이 잘 쓸 수 있도록 하는 거다. 그 외에도 원자력발전소의 제작·시공·가동중 공인검사를 하거나, 풍력발전기의 블레이드를 공인검사하는 역할도 한다."

-기계·금속 소재가 주요 연구 분야인가?

"맞다. 화학소재 같은 경우 한국화학연구원이 있다. 하지만 앞으로는 융합소재의 시대다. 금속소재에 국한되지 않게 될 거다. 다른 연구기관과 협력해 차세대 기술에 필요한 소재를 연구개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대중에게 자랑할 만한 재료연구소의 성과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다.

"재료연구소가 가지고 있는 기술 중 세계 최초이거나 세계 1등인 기술이 9개 정도 있다. 강판이나 폴리머 등 유연소재의 표면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할 수 있는 광폭 표면 처리용 선형 이온빔 소스 및 공정 기술, 1m 상당의 폭을 세라믹 분말로 코팅할 수 있는 세라믹 코팅 기술 등이다. 재료연구소의 규모는 다른 정부 출연 연구기관에 비해 작다. 2018년 기준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평균 연구원이 401명, 예산이 1902억 원 정도인 데 반해 재료연구소는 연구원 214명, 예산 953억 원이다. 순위로 하면 25개 연구기관 중 연구원 숫자 17위, 예산 19위. 하지만 1인당 연구 성과는 상위권이다.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논문은 7위, 기술료는 5위 수준이다."

▲ 이정환 재료연구소 소장은 자타공인 대한민국 소재산업의 전문가다. 이 소장은 융합소재 연구에 박차를 가해 일본보다 먼저 시장을 선점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종현 기자
▲ 이정환 재료연구소 소장은 자타공인 대한민국 소재산업의 전문가다. 이 소장은 융합소재 연구에 박차를 가해 일본보다 먼저 시장을 선점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종현 기자

-재료연구소의 '원 승격' 움직임이 활발하다. 연구소와 연구원, 무슨 차이가 있나.

"원 승격은 기계연구원 부설기관이 아니라 독립 법인이 되는 것이다. 독립 법인이 될 경우 독자적인 연구기관으로서 자율성을 가져 중장기적인 소재 개발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부족했던 연구인력을 확보해 더 깊은, 넓은 소재 연구개발을 할 수 있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소재 국산화와 맞닿아 있는 거 같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소재 분야에 취약하다. 거기에 소재연구개발의 구심점이 될 기관도 없다. 지금은 소재 연구를 하는 곳이 분산돼 있는 상태다. 소재강국인 독일이 17개 재료연구소를 아우르는 '프라운호퍼연구소(FhG)'로, 일본이 '물질재료연구기구(NIMS)'로 소재 연구개발 역량을 집중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재료연구원으로 승격한다면 이런 외국 기관처럼 국내 소재 연구개발의 컨트롤타워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일본 수출 규제로 지역사회에도 악영향을 미칠까 우려된다.

"수출규제를 계속 유지하거나 확대할 경우 지역사회도 타격을 받게 된다. 특히 기계공단인 창원의 피해가 클 거다. 공작기계가 밀집된 창원은 수치제어반, 베어링, 고철, 금속적살가공기계, 강관 등을 일본에서 수입하고 있다. 그중 공작기계를 자동으로 조작하는 핵심 부품인 수치제어반은 일본 수입 의존도가 98.3%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소재 국산화의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있다.

"소재산업은 20년 이상 축적된 노하우나 기술이 바탕이 되는 산업이다. 미국, 독일, 일본은 이런 소재기술에 오랜 시간 투자해왔다. 앞서나가는 국가를 쫓아가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많은 투자와 집중이 필요하다."

-일본 의존 소재 중 재료연구소의 기술로 대체 가능한 것도 있을 텐데.

"일본 의존도가 높은 고순도 동합금, 티타늄, 고순도 니켈 등의 기술을 가지고 있다. 특히 고순도 니켈은 MLCC(Multi Layer Ceramic Condencer)라는 전자제품 부품에 꼭 필요한 소재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산 소재가 개발되었으면 한다."

-한국은 워낙 '빨리빨리'를 추구해서 체질적으로 소재 산업에 안 어울린다는 평도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은 속도 전쟁이다. 거기에 쓰일 소재는 과거처럼 단일소재가 아닌 융합소재고. 유행에 민감한 우리의 특성이 빛을 발할 수 있는 부분이다. 융합소재 연구에 박차를 가해 일본보다 먼저 시장을 선점하도록 노력하겠다."

-소재 국산화를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 생각하나?

"먼저 현 사태에 대한 정확한 진단, 데이터가 필요하다. 소재의 국내 기술 수준, 기업들의 재고 물량, 단기·중기·장기 대응책, 국산화되지 않은 이유 등의 내용을 담은 소재 스마트데이터를 만들고 있다. 이달 내에 자료를 완성하고 공유할 생각이다. 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품목별로 해결 방안을 찾을 거다. 진단 이후는 연구개발에 착수해야 한다. 소재 수요기업, 공급기업, 연구기관이 함께하는 소재 실증 단지(Test-Bed)를 구축해야 한다."

-소재 전문가로서, 이번 규제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처하고 있나.

"도광양회(韜光養晦·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리며 실력을 기른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에 비해 소재기술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이걸 극복해야 한다. 우리를 쉽게 보지 못하도록 기술을 갈고닦아야 한다. 단기적인 대책이 아니라 대한민국 소재기술 로드맵을 만들어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

-마지막으로 하고픈 말 있는지?

"앞에는 일본이 있고, 뒤에는 중국이 있다. 쫓고 쫓기는 상황이다. 다만 지금 중국은 양산에만 치중하다 보니 소재 연구개발은 아직 취약한 상태다. 이번 일을 기회로 소재 산업에 투자해서 중국이 쫓아오지 못하도록 바짝 달아났으면 한다. 그리고 20년 전쯤에는, 각 분야의 국산화 비율 같은 게 항상 나왔었다. 어느 분야의 어떤 소재를 어느 정도로 국산화했나 하는 형태로. 그런데 이게 어느 순간 사라졌다. 시장을 선도하는 퍼스트 러너(Fisrt Runner)로서의 원천 기술 개발에만 치중한 결과라 생각한다. 완성품이 머리라면 소재는 하체다. 머리만 볼 게 아니라 하체도 봤으면 한다. 균형 있는 기술 개발로 우리나라 미래 산업에 꼭 필요한 소재는 국가전략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관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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