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천다랭이마을-벽련마을 18㎞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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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천마을 팔각정에서 시작

휴일 남해군 남면 가천 다랭이마을은 관광객들로 북새통이다. 고샅마다 유유히 흐르는 관광객은 정작 다랭이논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마을을 벗어나 다랭이논으로 향하니 문득 한적해진다.

남해바래길 두 번째 코스 앵강다숲길은 이 다랭이논 끝자락, 팔각정에서 시작한다. 팔각정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그야말로 망망대해. 보는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면 일본을 왼쪽으로 끼고 태평양으로 이어진다고 한다. 태평양이라니 멋진 출발이 아닌가.

출발하자마자 대숲을 만난다. 파도 소리와 대숲에 이는 바람 소리가 묘하게 닮았다. 대숲을 빠져나오면서부터 절벽 아래 경사를 따라 길이 이어진다. 시작부터 난코스다. 삼천포대교를 지나 가천마을에 거의 다다를 즈음 한국의 아름다운 길이라고 적힌 간판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도로는 수평선이 보이는 바다를 왼편으로 끼고 낭떠러지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다. 그 낭떠러지 도로 바로 아래로 바래길이 나 있는 것이다.

가천마을 팔각정./이서후 기자

급한 경사를 가로지르는 만큼 난간을 튼튼하게 세워 놓았다. 더러 난간이 없는 곳이 있는데 발걸음을 조심해서 옮기자. 그러는 동안 파도 소리는 끊임없이 길을 따라온다. 조금만 더 가면 전망이 탁 트인 평지가 나온다. 바다 건너편으로 노도가 손에 잡힐 듯하다. 이 평지로부터 길은 앵강만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남해섬을 나비 모양에 비유하면, 날개와 날개가 붙은 몸통 아래쪽 부분이 앵강만일 것이다. 남면과 이동면, 상주면 9개 마을이 이 앵강만을 끼고 있다.

평지를 지나 잠시 가파른 돌길을 오르고 나면 다시 넓은 평지가 드러난다. 한적하고 양지바른 곳이다. 뜻밖에 아늑하기도 해서 마치 바래길에 숨겨진 비밀 장소라고 할만하다. 띄엄띄엄 벤치가 놓여 있는데 특히 큰 소나무 두 그루 아래 벤치에는 한여름에 시원한 그늘로 가득 찰 것 같다. 길은 이제 내리막이다. 조금 걷다 보면 크고 작은 해안초소들이 연이어 나타난다. 이제는 쓰지 않는 곳들이다. 마지막 초소 옥상에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길은 이제 바다 건너 노도를 완전히 오른편으로 제치고 나아간다. 이곳은 내리막이 꽤 가파르니 조심조심 걷자. 제법 숲이 깊어 혼자 걷기에 조금 무서울 수도 있겠다. 하지만, 길이 정비가 잘 되었고 아기자기해서 걷는 재미가 있다. 숲을 벗어나면 길이 잠시 도로 쪽으로 슬쩍 다가간다. 도로 아래서 차들이 아슬아슬 커브 길을 돌아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서 홍현마을까지는 아직 1㎞가 남았다. 노도는 이제 뒤편으로 사라지고 아득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그러다 시야가 탁 트이는 곳에서부터는 시멘트길이 시작된다. 낭떠러지길이 끝난 것이다.

가천마을에서 시작한 낭떠러지 길에서 처음 만나는 평지. 건너편으로 노도가 보인다./이서후 기자

◇홍현마을 석방렴을 지나

주황색 지붕이 이색적인 펜션을 지나 조금만 가면 조그만 선착장이 보인다. 홍현마을 초입이다. 여기서는 바닷가 넓은 도로를 따라간다. 해변에 깔린 커다란 돌들이 인상적이다. 홍현마을에서는 예로부터 이런 돌들로 석방렴을 만들어 물고기를 잡았단다. 석방렴은 해변에 돌담을 쌓아 밀물 때 들어온 물고기가 썰물이 되면 갇히게 한 원시적인 어로 방법이다. 홍현마을에서 처음 만난 석방렴을 지나 방풍림을 에돌아 가면 또 다른 석방렴이 나온다. 앞의 것보다 크기가 작다.

두 번째 석방렴을 지나면 다시 도로를 따라 걸어야 한다. 바래길을 위해 새로 만든 인도가 산뜻하다. 최근에 만든 듯한 전망대도 있다. 그러다 길은 해변을 향해 꺾여 들어간다. 송림을 거느린 해변을 다 걷고 나면 바다를 등지고 돌아 나오는데, 완만한 경사에 걸쳐진 농지가 인상 깊다. 그리고는 낮은 언덕을 하나 넘는다. 언덕길은 풍경이 곱다. 특히 언덕 뒤로 펼쳐진 하늘빛이 바다 못지않게 푸르다. 그 하늘을 보며 언덕 너머 풍경을 상상해보는 일 또한 멋지다. 소담하고 즐거운 언덕이다.

홍현마을 석방렴(돌밭)./이서후 기자

언덕을 넘어 내리막을 쭉 내려오면 월포마을이다. 마을 해변은 월포해수욕장이다. 월포해수욕장은 바로 곁 두곡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두 해수욕장은 기본적으로 몽돌해변인데, 월하 쪽에는 자갈 사이 모래사장이 제법 풍성하다. 두곡은 온통 자갈 해변이다. 자갈밭은 음파 같은 곡선을 그리며 바닷물과 경계를 이루고 있다. 두곡해수욕장 끝 펜션 앞은 뜻밖에 모래사장이다. 길은 모래사장을 지나 바위섬을 오른편에 세우고 육지를 향한다. 이정표는 미국마을을 가리키고 있다.

◇미국마을을 관통해

이제부터 도로를 따라 걷는다. 인도가 있지만 차들이 속도가 높으니 조심하자. 가다 보면 남면과 이동면 경계가 나타난다. 여기서 200m를 더 가면 길은 도로를 버리고 산으로 들어간다. 산속에서 이 길이 맞나 불안해질 즈음 바래길 이정표가 나타난다. 그리고 잠시 산행을 하게 된다. 하지만, 길이 가파르진 않고 길지도 않으니 잠시 여유로운 마음으로 걷자. 산길을 빠져나오면 포장된 농로가 산 중턱으로 이어지는데 도로 아래부터 바닷가까지 경사는 온통 논밭이다. 이곳에서 앵강만을 바라보는 전망은 가히 2코스 최고라고 할 만하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가지런히 정돈된 농토와 그 너머 반짝이는 바다, 정박한 어선, 묵직한 존재감의 노도를 가만히 바라보자.

미국마을 초입./이서후 기자

그 전망을 오른편으로 끼고 길이 계속된다. 가다 보면 수로 위로 철망을 걸친 길이 나오는데 울렁울렁 걷는 재미가 있다. 이후는 소소한 산속 오솔길이다. 조금만 더 가면 미국마을이 나온다. 정확히 미국마을 위쪽 끝이다. 미국마을(아메리칸빌리지)은 남해군에서 재미교포들이 노후생활을 이곳에서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래서 미국식으로 지은 주택이 볼만하다. 지금은 펜션을 운영하는 곳도 많다.

미국마을을 관통해 빠져나오면 도로를 건너야 한다. 주변 논밭이 아주 반듯하고 가지런한데, 15년 전쯤 경지정리를 해서 그렇다고 한다. 길은 그대로 바다를 만난다. 화계마을이다. 마을은 바닷가를 따라 제법 규모가 크다. 이 마을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 보면 곧 신전숲이다. 이곳이 앵강만의 가장 깊숙한 곳이겠다. 숲은 상수리나무로 가득하다. 군부대가 있다가 이전을 했는데, 그 자리에 체험시설 등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앵강다숲마을이라고 이름 붙였다. 2코스 명칭인 앵강다숲길은 바로 이 신전숲에서 비롯된 것이다. 앵강다숲마을에는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가 있다. 여기까지 오느라 제법 지치기도 했을 테니 탐방센터에 들러 차도 얻어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오자. 오전 10시에서 오후 4시까지 근무자가 있다.

신전숲 주변 앵강다숲마을에 있는 남해바래길탐방안내센터./이서후 기자

다시 길을 나서 신전숲 끝에서 신전교를 지난다. 작은 다리와 큰 다리로 이뤄져 있다. 이제부터 길은 해안을 따라 마을들을 연결하며 이어진다. 여기서부터 바다 풍경은 앵강만의 반대편을 바라본다. 지금껏 지나온 마을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평마을과 남해자동차운전학원을 지나면 원천마을이다. 원천마을 방풍림도 제법 운치가 있다. 원천마을에서 마지막 벽련마을 까지는 따로 이정표가 없다. 도로를 따라가는 길이며 인도가 따로 없기에 위험하기도 해서 굳이 힘이 남아돌지 않으면 원천에서 걷기를 마쳐도 된다.

만약 차를 가천마을에 세우고 걷기 시작했다면 돌아가는 버스를 타는 게 불편하겠다. 벽련이나 원천마을에서 남해읍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 다시 남해읍에서 가천마을로 가는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시간이 맞지 않으면 2시간이 걸릴지도 모를 일이다. 이럴 때 콜택시를 이용해보는 것도 괜찮다. 다만 남해읍에서부터 오기 때문에 운임이 2~3만 원 정도라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버스정류장에 붙은 광고를 유심히 살피면 근처 면사무소 소재지에 있는 콜택시 번호를 찾을 수도 있다.

화계마을에서 바라본 신전숲./이서후 기자

<2코스 마을 고샅고샅>

남해바래길 2코스는 앵강만을 끼고돈다. 앵강만은 남해섬 남쪽으로 움푹 들어간 바다다. 이동면, 상주면, 남면 9개 마을을 두르고 있다. 기록은 나비가 두 날개를 펼친 것 같은 모양이라고 전한다. 항아리가 누워있는 것 같다 해서 사람들이 '앵강'이라고 불렀다는 말도 있다. 지금은 앵강만의 구슬픈 파도 소리가 앵무새의 노랫가락 같아 '앵강(鸚康)'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한다. 이 앵강만이 바래길 2코스의 모두라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마을마다 해변에 조성한 방풍림(防風林)이 2코스의 특징이라고 하는데, 이들 역시 모두 앵강만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홍현1리마을과 석방렴

가천 다랭이마을에서 시작한 바래길 2코스가 처음 만나는 마을이 홍현이다. 무지개 '홍(虹)'에, 고개 '현(峴)'. '무지개 고개'란 뜻이다. 홍현마을 뒤편 설흘산과 도성산의 산세가 무지개처럼 생겼다고 해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이전에는 물직리(勿直里)로 불렸는데, '무지기(무지개) 마을'을 한자로 옮긴 것이다. 조선 고종 32년(1895년) 갑오개혁에 이은 지방행정구역 개편 때 무지개를 한자로 의역해 홍현으로 이름 붙였다고 기록은 전한다. 지금은 홍현 해라우지 마을이라고도 부르는데, 해라우지도 무지개란 뜻이다.

홍현마을은 남해가 '전야산군'이라 불리던 신라시대부터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다면 1200년이 넘은 것이다. 아주 옛날에는 이곳에서 소라가 많이 나서 '라라(螺羅 일명 난날)'라고 부르기도 했단다.

바래길이 홍현마을로 들어서면 바로 바닷가 길을 걷게 된다. 1996년 앵강만 개발사업으로 만들어진 호안도로다. 도로를 따라 마을을 빠져나갈 때까지 250여 미터가 모두 방풍림으로 이어져 있다. 바닷가는 몽돌해변이다. 그런데 해변을 가득 채운 건 몽돌자갈이 아니라 커다란 몽돌바위다. 홍현마을 사람들은 예로부터 이 바위를 바닷가에 쌓아 석방렴(石防簾, 돌발)을 만들었다. 석방렴은 썰물 때 들어온 물고기가 밀물이 되면 갇히게 한 원시적인 어로 방법이다.

남해군 남면 홍현마을 인근 바래길을 걷는 회사 선후배들./이서후 기자

◇숙호숲과 전복양식장

홍현마을에서 나온 바래길은 잠시 도로를 따라간다. 그러다 다시 바닷가로 내려서는데 그곳이 숙호숲이다. 하지만, 홍현마을에서 계속해 해안을 걸어도 되겠다. 숙호숲 직전에 만나는 커다란 건물이 하나 있는데 전복양식장이다. 남해전복영어조합법인이 운영하는 곳이다. 예로부터 홍현 앞바다는 전복, 해삼, 미역이 많이 나기로 유명했다고 한다. 양식장에서 1년 정도 배양한 전복은 다시 홍현 앞바다 양식장으로 보내 3년 이상을 키운다. 특이하게도 이 법인에서는 실제 제주 해녀를 고용하고 있다고 한다. 해녀들은 양식장 전복뿐 아니라 앵강만 주변 마을에서 자연산 전복도 수확한다. 그래서 양식장 한편에 있는 판매장에서 자연산 전복과 멍게, 해삼 등을 살 수 있다. 양식장 건물 2층에는 법인이 운영하는 '남해자연맛집'이란 전복 전문 식당이 있어 신선한 전복 요리를 바로 맛볼 수 있다.

숙호숲과-몽돌해변./이서후 기자

전복양식장을 지나면 바로 숙호숲이다. 홍현 해변과 다르게 자잘한 몽돌이 깔린 데다 울창한 송림이 200m 정도 이어져 있는데 제법 운치가 있다. 숙호숲 끝 해안에 있는 게 칼바위다. 이 바위에는 아득한 옛날 어느 장수가 바위에서 바다를 뛰어넘어 금산에 들어갔다는 장수방(將帥房) 전설이 전해진다. 바위 위에 그때의 발자국이 남아 있다고 한다. 이 숙호숲 끝에서 바래길은 바다를 등진다.

◇월포·두곡해수욕장과 고진성

숙호숲에 이어 바래길은 작은 등성이를 하나 넘어 월포마을을 만난다.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는 백사장은 바로 옆 두곡마을 해안과 이어지며 900m나 계속된다. 상주해수욕장과 더불어 남해섬이 품은 또 하나의 보물 월포·두곡 해수욕장이다.

백사장은 두곡마을을 스치고 흘러온 두곡천을 경계로 월포마을과 두곡마을로 나뉜다. 하지만, 바닷가에 이른 하천은 지하로 사라져 백사장에는 경계가 없다. 긴 해변을 따라 정렬한 소나무들도 장관이다. 두곡 쪽은 1972년 마을 자력으로, 월포 쪽은 1986년 남해군 지원으로 심었다고 한다. 해수욕장이 끝나는 지점에 꼭두방이라는 바위섬이 있다. 조그만 정박시설을 만들면서 콘크리트로 육지와 연결됐다. 뒤로 돌아가 보니 제법 덩치가 큰 바위섬이다. 유명한 낚시터라고 한다.

월포두곡해수욕장 끝에서 바라본 앵간만./이서후 기자

월포마을은 마을 생김새가 음력 초 열흘 초승달 모양을 닮았다 해 옛날에는 순월개라고 했다. 두곡마을로는 바래길이 가 닿지는 않는다. 바닷가에서 조금 멀리 있어서다. 옛날에는 쇠를 굽던 곳이 있어 두곡마을을 전동(煎銅)이라 불렀다고 기록은 전한다. 또는 이 마을에서 곡식을 되는 데 쓰는 말(斗)을 많이 만들어서 두곡이라고 했다는 말도 있다. 20여 년 전에는 마을 앞 '몰랭이'라는 등성이에서 봄이면 화전놀이를 했는데, 지금은 해수욕장 송림으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바래길에서 두곡마을을 바라보면 왼쪽으로 낮은 등성이가 있는데, 임진왜란 때 왜구를 방비하려고 쌓은 고진성(古鎭城) 자리다. 지금도 성벽 일부가 남아있다. 남해군에서 가장 오래된 성 중 하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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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흔적만 겨우 남아 있는 고진성./이서후 기자

◇미국마을과 용문사

월포·두곡해수욕장을 거친 바래길은 바다를 벗어나 호구산 자락을 살짝 걸친다. 그리고는 미국마을을 만난다. '아메리칸빌리지'라 불리는 이 마을은 독일마을에 이어 남해군에서 추진한 또 하나의 이주마을이다. 지난 2005년부터 재미교포들에게 분양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내국인이 소유하는 집도 많다. 주민들 말로는 2016년 3월 현재 22가구가 살고 있다고 한다. 이름난 대학에서 일하는 교수들이 제법 살고 있다는 귀띔이다. 마을 생김새는 단출한데, 미국식 건축양식으로 지은 예쁜 집들이 마을 한가운데 도로를 따라 길게 늘어서 있다. 펜션 영업을 하는 곳이 많으니 기회가 되면 한 번 묵어볼 만하다.

바래길은 미국마을을 관통한 도로를 따라 그대로 바다로 이어진다. 반대로 산 위로 올라가면 용문사 주차장이다. 바래길만이 목적이 아니라면 용문사는 꼭 한번 가볼 만하다. 신라 문무왕 3년(663) 원효대사가 창건한 금산 보광사가 전신인데, 조선 현종 원년(1660) 백월대사가 보광사의 사운이 기운 것을 보고 지금 자리에 용문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승병 활동의 근거지 노릇도 했다. 지금 당시 쓰던 삼혈포와 승병들 밥을 담던 구시통과, 왕실로부터 받은 보물을 간직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대웅전, 명부전 같은 건물과 국가 보물 1446호 괘불탱화 등 용문사가 지난 문화재는 16점이나 된다. 용문사 뒤편 녹차밭은 주변 소나무와 어우러져 멋스럽다. 주변에 남해군이 조성한 자생식물단지 '3자림(유자·비자·치자)'이 있다.

용문사 숲./이서후 기자

용문사 주차장 근처에 이무기가 살았다던 용소(龍沼)라는 못이 있는데, 근처 용소마을 이름이 여기에서 비롯됐다. 용소마을은 예로부터 남해에서 가장 큰 마을이라고 주민들은 말한다.

◇화계마을과 배선대

미국마을에서 벗어난 바래길은 바다와 만나면서 화계마을로 이어진다. 해안도로를 따라가다 보면 마을이 나온다. 마을 중간 즈음에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를 눈여겨보자. 500여 년 전 정박한 배를 묶어두던 나무라고 한다. 둘레가 7.1m, 높이가 14m로 지난 1982년 남해군 보호수 12-34호로 지정되었다. 그러니까 이곳이 옛날에는 바닷가였다는 뜻이다. 해변 일부가 매립되면서 육지로 밀려난 모양새가 됐다. 매립으로 조선시대 만든 굴항(掘江)이 사라졌다. 이는 바다 쪽 입구는 좁게 육지 쪽은 깊게 만들고 주변에 나무를 심어 배를 숨겼다가 왜구가 나타나면 바로 출동하도록 한 군사시설이다. 화계마을은 조선시대 조창(세금 창고)이 있던 곳이다. 그래서 왜구가 노략질을 일삼았다. 매립으로 사라진 것 또 있다. 배선대도 매립으로 사라졌다. 배를 대는 곳이란 뜻인데, 예로부터 화계마을에서는 정월 보름날 어선들이 선창에 일렬로 늘어서 용왕에게 제사를 지냈다. 이것을 '화계 배선대놀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매립을 하면서 선착장이 사라졌고, 마을 사람들은 선착장 자리에 '배선대'라고 적은 비석을 세워 지금도 제사를 지내고 있다. 화계마을 앞을 지나다 보면 배선대와 느티나무를 모두 볼 수 있으니 잘 찾아보자.

마을에서 육지 쪽으로 깊이 들어가면 길현미술관이 나온다. 미술가 길현(48)이 운영하는 곳인데,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행사가 많다. 길현미술관은 옛 성남초등학교를 고쳐 만든 것이다. 초등학교 자리는 옛날 곡포성이 있던 곳이다. 화계마을의 옛 이름이 곡포(曲浦)다. 이는 화계마을이 앵강만의 가장 깊숙하고 구부러진 곳에 있기에 붙여진 것이다.

◇신전·원천마을과 앵강다숲

화계마을 해안도로는 그대로 신전숲으로 이어진다. 이곳은 신전마을 앞 해안에 이 숲은 남해 이동면에서 가장 풍광이 좋기로 유명하다. 참나무, 소나무, 느티나무, 편백, 소사나무 등 18여 수종이 너비 200m, 폭 70m에 가득하다. 이전에는 군부대가 있어 출입할 수 없었는데, 지금은 부대가 옮겨가고 남해군에서 이곳에 휴양촌과 체험촌을 조성해 앵강다숲마을이라 이름 붙였다. 이곳에 남해바래길 탐방안내센터가 있어 바래길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바로 옆 남해약초홍보관에서는 쑥뜸 무료 체험도 할 수 있고, 3층에는 카페가 있어 차도 한잔할 수 있다. 쑥 관련 메뉴가 독특하다. 운이 좋고 시간대가 잘 맞으면 신전숲에서 멋들어진 노을을 감상할 수도 있다.

신전숲에서 바닷가를 계속 따라가면 원천마을이다. 옛날에 이곳에 원(院: 나라에서 만든 일종의 여관)이 있었는데, '원이 있던 냇가 마을'이란 뜻에서 마을 이름이 원천(院川)이 됐다. 원천마을 앞 해안을 따라 아름드리 느티나무, 포구나무가 500m가량 이어지는데, 의외의 발견처럼 멋들어진 풍경을 보여주는 방풍림이자 어부림이다.

<바래길에서 만난 사람들>

◇ 인심 좋은 남해 아지매들

남해바래길을 걷다 보면 더러 뭐 하는 사람이냐, 어디에 사느냐고 묻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때마다 사진 찍으러 다니는 사람이라거나 그냥 백수라고 대답합니다. 그게 불쌍해 보이셨는지 이것저것 챙겨주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2코스 미국마을 초입에서 만난 아지매도 그렇게 우연히 만났습니다. 굳이 산책가던 길을 되돌려 마을을 안내해주십니다. 그리고 선뜻 집안도 구경시켜 주셨습니다.

"웰컴 투 마이 하우스!"

할머니식 영어라며 쑥스러운 표정으로 환영 인사를 하시고는 차와 과일을 내오셨지요.

"봄에 꽃 필 적에 지금 사는 집을 보고 너무 맘에 들어서 이전 주인에게 팔라고 사정사정해서 겨우 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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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마을에서 만난 아지매./이서후 기자

올해 66세 되셨다는 아지매는 시댁이 남해랍니다. 식탁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피로가 스스로 풀리는 기분입니다.

미국마을 바로 아래 시금치밭에서 만난 아지매도 그랬습니다. 아지매는 시금치를 키워 자식 대학 등록금 내셨답니다. 이제는 손자들이 대학에 들어간다는군요.

"우리 외손자 올해 대학 들어가서 보태줬제. 할머니가 되가꼬 좀 도와줘야지. 할머니 장하제? 허허허"

얼마 전에 딸이랑 일본 여행을 했답니다. 딸이 척척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보고는, 어려운 집안 사정에도 참 잘 큰 것 같아 대견한 생각이 드셨답니다.

"그러면 밥은 우짤라꼬? 우리 집에 따라 올라갈까?"

굳이 점심을 대접하겠다는 걸 겨우 사양하고 돌아서는 뒤통수에다 그럼 조심하며 다니라고 당부하십니다.

거참, 남해 아지매들 인심 참 좋습니다.

◇홍현마을 빨래하는 할머니

남해군 남면 홍현마을 고샅을 거닐다 빨래터에서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동네 한 편에 있는 물이 아주 풍부한 공동 빨래터였습니다.

그날따라 햇살도 좋아서 빨래터에 앉은 할머니가 참 따뜻해 보였습니다.

"어무이, 오늘 날이 참 따시네예."

"어~ 오늘 따시네. 따시다꼬 내가 빨래허네."

"여기 물이 많이 나오네예."

"여 물이 참 좋네. 옛날에는 물이 적어서 바가지를 달아두고 받아 뭇는데, 요새는 물이 많아. 겨울에는 따시고 여름에는 찹고. 요새는 따시네. 감기가 들어서 드러 누가 있다가 날이 따시다꼬 내가 살살 일어나 옷 씻는다고 일카네. 한체 산께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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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현마을 빨래하는 할머니./이서후 기자

"어무이 혼자 사신다고예?"

"영감, 할멈 이래만 살고 자식들은 객지나가 살제. 오늘 아들이 오끼네. 집에 마 바램이 불어가꼬 보로꾸(담장)가 넘어 가가꼬, 그거 쌓는다꼬 오끼네."

그렇게 한참을 할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눕니다. 홍현마을은 아랫담, 웃담으로 나뉘어 있답니다. 그 말 자체가 참 정겹습니다.

지나던 고양이가 문득 동그란 눈을 하고 그런 우리를 보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끝내 자기 자신은 찍지 말라고 하십니다. 초라한 입성이 부끄럽답니다.

그래도 몰래 찍었습니다. 죄송합니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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