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지 않아도 좋으니 차 한 잔 하고 가세요”

창원시 의창구 동읍 자여마을에 있는 에코상점 1호점은 주민의 ‘마을 쉼터’다. 장바구니를 들고 심부름 온 아이들은 무척이나 익숙한 모습이었다. 에코상점 안에 있는 할머니는 잠시 쉬었다 가는 것이라 했다. 손님이 제 집처럼 드나들고, 물건은 사지 않고 쉬었다 가는 상점? 에코상점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앉아 있던 할머니가 문을 나서며 말했다. “에코상점 잘 소개해줘. 새댁들이 참 착해.”

진심 알아주는 사람 있어 힘이 된다

-대표님이라고 부르면 되나요? 본인 소개부터 해주시죠.

“저희 에코상점의 실제 대표님은 모단체인 사단법인 창원여성회에 계십니다. 저는 사단법인 창원여성회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단장 이문희(43·창원시 의창구 동읍 자여마을)라고 합니다. 사회적기업인 에코상점 1호점을 맡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모단체인 창원여성회는 어떤 곳이죠?

“비영리로 풀뿌리 지역 활동을 하는 여성단체입니다.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활동을 주로 합니다. 여성이라면 보통 육아 문제가 따라 오잖아요? 여성과 육아, 자녀 교육이라는 주제를 여성이 중심이 돼 고민하고 논의합니다. 사회적 문제를 고민하고 의견을 표하기도 합니다.”

-교육감 선거 때 박종훈 교육감을 지지했던 단체 중 한 곳이 창원여성회 아닌가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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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환석 인턴기자

-정치적 활동을 한 이유 중에 ‘아이들’을 위한 일이라는 사명감 같은 것이 있었던 건가요?

“그렇죠.”

-그럼 세월호 참사 때문에 속상한 것도 많겠네요. (마침 인터뷰 전날은 세월호 참사 100일 째였다.)

“그럼요. 마을에 계신 몇 분하고 촛불집회에 다녀왔습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다 보니 남 일 같지 않죠.”

-살기 좋은 마을 만들기 사업단에서 운영하는 에코상점은 무엇을 파는 곳인가요?

“우리 밀 살리기 운동본부에서 나오는 좋은 먹을거리, 우리 지역 농산물을 이용해 직접 만든 반찬, 친환경 재료를 사용해 만든 생활용품 등을 팔고 있습니다.”

-특별히 친환경 제품을 팔겠다고 생각하신 이유가 있다면?

“처음 사회적기업을 준비하면서 이곳에 아토피 피부염을 앓는 사람이 많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 유독 이 곳에 아토피 환자가 많은지, 원인을 저희 나름대로 분석 했더니 대부분 아토피를 낫게 하려고 도시보다 환경이 좋은 이곳으로 이주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곳에 있는 아토피 환자는 아이들이 대부분입니다. 갈수록 환경이 나빠지니까 태아 때부터 피부질환을 앓고 태어난다고 하네요. 그래서 좋은 먹을거리, 친환경 생필품 등을 중심으로 판매활동을 하면 좋지 않을까하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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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환석 인턴기자
-잘 팔리는 상품은 무엇인가요?

“매실액 같은 친환경 발효액은 손님들이 꾸준히 찾아요. 요즘은 아무래도 부모가 맞벌이하는 가정이 많다보니, 저희가 직접 만든 반찬이 매출에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앞으로 반찬을 주력으로 사업을 운영할 계획입니다. 저희는 처음부터 아토피 환자를 위한 좋은 먹을거리, 건강한 먹을거리를 강조했으니까요. 그런 곳에서 안 좋은 식자재나 화학첨가물을 사용해 반찬을 만들 수는 없잖아요? 엄선해서 재료를 구입하고 첨가물도 전혀 사용하지 않으면서 맛은 좋은 먹을거리.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서 좋다고 하시는 분들이 늘 오시니까 힘이 됩니다. 에코에서 파는 먹을거리는 건강하고 안전하니까 믿고 산다고 말씀하세요.”

-그런 믿음은 어떻게 형성된 것일까요?

“5년 동안 쌓인 신뢰가 아닐까요? 우리가 수익만 생각하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믿음? 에코는 늘 봉사하는 곳, 하나라도 더 퍼주려는 곳이라는 인식이 있어요. 저희도 수익을 남기고 싶고, 가격을 조금 올리고 싶어도 그게 안돼요. 가격을 올리면 비싸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우리가 이윤을 조금만 남기고 싸게 파는 것이 맞지 않나 항상 고민하죠.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것을 주민들이 아시는 듯해요. 꼭 제품을 사지 않아도 차 한 잔 하고 가시고 이야기 하다 가시면서 신뢰가 쌓이지 않았나 생각해요. 진심은 꼭 말을 해야 아는 것이 아니라 행동에서 알 수 있죠.”

-친환경 제품 판매라는 비슷한 목적으로 운영되는 공동체가 많은데, 에코상점만의 차이점이 있다면?

“오래된 유명한 공동체에 에코상점은 견줄만한 것이 못된다고 봐요. 다만 전국 단위로 운영되는 공동체에 비해, 우리는 마을이 중심이라는 점이 장점이겠죠. 애초에 목표했던 부분이 우리가 중심이 돼 마을주민의 살림살이에 기여하자는 것이었어요. 우리의 활동이 기반이 돼 교육공동체, 복지공동체 등이 생겨나고, 우리 수익이 그런 공동체에 사용되길 바랐어요. 또한 우리는 소량이지만 참여자가 직접 제작해 판매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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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환석 인턴기자
-에코상점은 마을주민에게 무료로 문서 인쇄를 해준다고 들었습니다. 인터뷰 전에 밖에서 지켜보니까 아이들이 자기 집처럼 들러 제품을 사가고, 상점에 앉아있던 어르신이 “좋은 얘기 많이 해줘”라며 부탁도 하더군요. 상점이라기보다 마을 ‘쉼터’ 같은 느낌입니다.

“그것이 에코상점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더 많은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에코상점가면 마음이 편하다’, ‘인심이 좋다’면서 쉬었다가고 편하게 생각하면 좋겠어요. 무료 프린트는, 저희가 2호점까지 있는데, 내서에 있는 2호점에서 무료로 프린트를 해드리니까 주민들이 좋아하신다는 얘기를 들어서 저희 1호점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어른들이 쉬었다 가시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라 생각해요. 의도적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에요. 에코상점이 무엇을 하는 곳인지 궁금해서 들어오신 분이 있으면 차도 한잔 대접하고, 대화도 나누다보니 자연스럽게 ‘쉼터’역할을 하게 된 거죠. 마을이니까 가능한 일이죠. 만약 큰 시내에 에코상점이 있었다면 불가능하죠.”

-친환경 제품이라면 비싸지 않을까하는 선입견 같은 것이 있지 않나요?

“실제 시중에 파는 제품보다 조금 비싸다는 말은 하지만, 가격을 비교해 보면 비싼 편도 아니에요. 글쎄요. 판매하는 입장이라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시중에 파는 과자도 가격이 만만찮거든요. 질소 포장에 양은 적으면서. 그렇게 따지면 100~200원 비싸도 좋은 먹을거리가 좋지 않을까요?”

-아직까지 수익에서 만족할 만한 성과는 없나요?

“네. 아직 최저생계비를 받으며 일하고 있습니다. 지원금에 우리 수익금을 더해서 그 정도죠. 사회적 기업 울타리에서 벗어나 자립해도 그 정도 수준 밖에는 안 될 듯해요.”

-그래서 힘든 점은 없나요?

“많이 힘들죠. 저도 집에 가면 아이가 둘이에요. 남편이 번다해도 부족하죠. 사회적 기업은 5년이 지나면 자립을 준비해야 합니다. 시작할 땐 5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자립이 만만한 일이 아니더군요. 겁도 많이 나고 이쯤에서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했는데, 함께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이젠 괜찮아요. 그 분들이 제 힘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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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환석 인턴기자

문 닫지 않은 것만으로도 성공이다

-사회적기업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입니까?

“처음엔 사회적 기업이 뭔지도 몰랐어요. 이 일을 하기 전에 그림 공방을 운영했는데 친한 엄마들이 모여서 대화를 많이 했죠. 그때 어떤 엄마가 ‘사회적기업이라는 것이 있다던데, 잘 모르지만 한번 해보면 좋지 않을까요?’라며 먼저 제안을 했어요. 뭔지 모르지만 해보면 괜찮겠다싶어 무턱대고 시작했죠. 마침 사회적기업 공모기간이라 열심히 준비해서 서류를 넣었는데 덜컥 선정이 됐어요. 처음엔 사회적기업이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 영업활동을 하는 의미 있고 착한 생산 활동이라는 인식만 하고 시작했죠. 해가 거듭되면서 정말 어려웠어요. ‘내가 겉멋에 빠져서 섣불리 이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많이 했죠.”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면서 무엇이 가장 어렵던가요?

“처음에는 같이 일하는 마을 사람들끼리 마음 맞춰 좋은 제품을 만들어 팔고 수익을 얻으면 마을을 위해 쓰자는 생각만 했어요. 하지만 관리하는 기관에서 바라보는 사회적기업이랑 우리의 시각이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알았죠. 지원해주는 만큼 성과를 올려라 요구하니까 마을활동이나 마을운동은 뒤로 밀리고 수익을 쌓는 일에 전념해야하는 상황이 왔어요. ‘내가 돈 벌자고 사회적기업을 시작 하지 않았는데’하는 생각이 들면서 사업을 내려놓고 싶었죠. 하지만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니까 또 그건 아니다 싶었죠. 물론 모두 동등한 참여자지만, 저는 단장이란 직책을 맡고 있으니까 내가 포기하면 그들이 졸지에 실업자가 된다는 생각에 마음을 바로잡았죠.”

-본인이 생각할 때 에코상점이 수익보다 사회적 목적이 우선이라는 사회적기업의 정신을 잃지 않으면서 성공적으로 운영된다고 평가하시나요?

“잃지 않으려고 늘 고민하죠. 어떻게 하면 첫 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생각해요. 사실 모든 참여자가 같은 꿈을 꾼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사회적기업은 사회적 목적이 우선입니다’라고 말해도 함께 하는 분들이 생각하는 사회적기업의 모습이 다를 테고, 하고 싶은 것도 다를 테니까요. 처음엔 모두 똑같이 마을을 위해서 뭔가 해보자는 마음일 것이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점차 서로의 생각 차이가 드러나면서 상처를 주고받았죠. 그렇게 5년을 보냈습니다. 이젠 정말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 정리가 된 듯해요. 평가를 하자면, 단순히 잘했다 못했다 말할 수는 없어요. 못한 부분이 훨씬 많다고 생각하죠. 아직 에코상점을 모르시는 분도 계시고 관심이 없는 분도 계시니까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찾아왔냐가 중요하지 않아요. ‘일하는 구성원이 현재 상태를 만족하느냐’를 따져보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에 우리 사업이 실패로 평가돼서 우리가 더 이상 해야 할 것이 없다면 문을 닫아야겠죠. 그렇지 않은 것만으로도 성공이 아닐까 평가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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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환석 인턴기자
마을의 중심에서 행복을 외치다

-인터넷으로 보니까 제품 판매 외에 마을 행사나 문화 활동도 진행하던데?

“마을을 위한 행사를 많이 하려고 애는 썼어요. 우리 마을이 시내와 떨어져 있어 문화적으로 소외를 받는 곳이어서 여가생활을 즐기려면 밖으로 나가야하죠. 영화 관람만 해도 시내로 나가야 볼 수 있죠. 그래서 우리는 마을에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부모를 위한 문화센터 운영을 했어요. 하지만 부모님들이 경제 활동으로 벌어들인 수익을 아이의 교육비에 투자 하지, 자신의 여가에 사용하지 않더군요. 문화 체험, 문화 강좌를 여러 번 진행 해봐도 참석률이 높지가 않았어요. 저희가 홍보를 잘 못한 탓도 있죠. 많은 분이 참여할 수 있도록 홍보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어린이날 행사는 매년 다른 단체와 함께 하고 있는데, 올해는 세월호 참사 때문에 전단지 제작과 후원금을 받는 단계가 끝난 상태에서 중단했어요. 후원금은 다 돌려드렸죠. 보통 어린이날이 되면 부모님은 아이를 데리고 어디든 가야한다는 책임감이 있고 아이는 기대를 많이 하잖아요. 동네 안에서 어린이날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게 됐습니다. 많은 분이 행사를 못하게 돼 안타까워했죠. 최근에 진행한 행사는 알뜰장터라고, 1년에 3번 정도합니다. 어린이 장터도 열리고 먹을거리도 있고 체험장도 있어요. 체험장은 마을에서 솟대 만드는 분, 머리핀 만드는 분 등 재능 있는 분들이 자원봉사를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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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환석 인턴기자
-그분들에게 자원봉사를 요청하면 흔쾌히 응해주시나요?

“시간만 되면 기꺼이 해주겠다고 말씀하세요. 그 분들도 아이들이 있어서 부모의 마음으로 해주시는 거죠.”

-앞으로의 에코상점은 어떤 모습일까요?

“마침 엊그제 상점에서 토론을 했어요. 마을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왜 다시 마을인가’라는 주제로 진행했습니다. 마을의 미래를 고민하면서 주민 간의 교류가 확대 되면 자연스레 에코상점도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입니다. 주민들이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공간이 에코가 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좋아하는 단어가 ‘마을’이에요. 마을이 변하면 도시가 변하고, 도시가 변하면 나라가 변하지 않을까요? 우리 마을을 아이가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런 아이들을 보면서 어른들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마을. 그런 행복한 마을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요. 행복한 자여마을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중심에 우리 에코상점이 있으면 좋겠어요. 에코상점이 곧 자여마을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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