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마음으로 도시개발사업 외길 인생

‘길’이라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도시개발사업 현장소장을 10여년 하다 양산 우림종합건설로 독립한 지 올해로 30년이 된 이종원(66) 회장은 이제까지 걸어온 길을 술회하며 “이 길을 선택하기 잘한 것 같다”고 했다.

돌아보면 아쉬운 순간도 있었지만, 7남매 중 외아들인 이 회장의 어깨에는 많은 이의 생계와 미래가 걸려 있었기에 성실하게 한발 한발 내디딘 지난 발걸음에 후회는 없다.

그의 가족, 그리고 직원들의 가족을 생각하며 무리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온 지난 길이 뿌듯하다.

모험보다 안정 택한 젊은 가장

이 회장의 일생을 굳건히 받치고 있는 것은 바로 ‘가족’이다. 한때는 이 회장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였지만, 지금은 그의 든든한 울타리이자 생의 보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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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우림종합건설 이종원 회장.

토목을 전공하고 공직 생활을 잠시 하던 이 회장이 건설공사업으로 이직하게 된 것은 바로 가족 때문이었다.

“제가 7남매 중 외아들입니다. 누나 2명에 여동생이 4명이죠. 그런데 내가 24살 때 부친이 돌아가셨습니다. 생계유지를 위해 건설현장 소장 등을 하며 현장을 떠돌았습니다.”

현장 생활만 10년. 집에는 주말에나 겨우 갈 수 있었다. 그동안 홀어머니를 모시고 동생들 치다꺼리에 자식들 키우는 일은 그의 아내 몫이었다. 그래서 이 회장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제일 고마웠던 사람으로 가족을 꼽는다.

그러다 도시개발 경기가 좋은 시절, 30년 전 이 회장은 독립하게 된다.

양산시 평산동에 본사를 둔 우림종합건설은 토목건축공사업을 주로 한다. 도시개발사업을 하는 것이 전문이다.

이 회장은 회사를 꾸려오면서 모험을 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큰 욕심이 없었다고 한다.

“모험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안정이 중요했죠. 내가 욕심을 부려 잘못되면 내가 책임져야 하는 가족들은 어찌 되나 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창 아파트 건설 사업이 성장할 때 아파트 건설업에 뛰어들었더라면 지금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게 아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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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우림종합건설 이종원 회장.

허허벌판에 도시 기본 만들기

도시개발 사업은 택지를 개발해 분양하는 사업이다. 논밭 등을 평탄화하고 도로·배수시설 등 기반시설을 갖춰 상업·주거지역으로 분양한다. 도시의 기본을 만드는 사업이다. 이 회장의 적성에 맞았다.

“도시개발사업은 관급공사처럼 한정된 예산에서 하는 사업이 아닙니다. 지가가 오르면 여유가 그만큼 생기니까 지역 환원도 하고 미래를 위한 투자도 가능합니다. 주위에 인심도 얻으면서 사업을 할 수 있죠. 그런데 일반 건설은 한정된 예산으로 낙찰받아 수익도 남겨야 하고 하도급도 줘야 하니까 적응이 잘 안 되더군요. 모질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해요. 그래서 회사는 작지만 도시개발 사업에 주력하기로 했습니다.”

우림종합건설은 그동안 부산(양산) 기장 교리지구 기획정리사업, 밀양 내이2지구 개발사업, 거창 대평지구 개발사업 등 수많은 공사를 했다.

각종 인·허가부터 분양까지 굵직굵직한 현장들은 한 사업을 끝내는 데 4~5년씩 걸린다. 지금은 목포항 건설 공사를 3년째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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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우림종합건설 이종원 회장.

이 회장은 독립하기 전 현장소장으로 있을 때도 많은 공사에 참여했다. 

현장에서 제일 힘든 것은 민원 해결이었다. 주로 지장물 철거 보상 등 돈과 관련된 민원이 많았지만, 정든 땅을 떠나야 하는 사람 중에는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민원도 있었다.

태풍 등 천재지변은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하는 일이었다. 태풍에 공사장이 다 쓸려 내려가 손실을 본 일도 있었다.

“공사 현장에 묘가 있었는데 태풍이 지나고 나서 보니까 봉분이 사라지고 없는 겁니다. 이장을 해야 하는데 묘 위치를 찾느라 고생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차를 타고 다니다 보면 격세지감과 보람을 함께 느낀다. 허허벌판이었던 곳에 반듯한 도시가 들어서 있는 것을 보면 가슴 뿌듯함을 느낀다고 한다.

가족 많은 직원 선호

우림종합건설이 양산에 자리 잡은 것은 직원들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초창기 울산 쪽 일을 많이 하다 보니 울산에 연고지가 있는 직원이 많았다. 부산에서 회사를 운영하기에는 직원들 출퇴근 거리가 너무 멀었다.

부산에서도 가깝고 울산에서도 가까운 곳, 그곳이 바로 양산 웅산 지역이었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살아왔던 이 회장이었기에 직원을 뽑을 때는 주민등록등본부터 본다고 한다. ‘식구’가 많은 사람을 선호하는 것이다.

“부양가족이 많은 사람은 행동을 함부로 할 수가 없어요. 그만큼 책임감이 강하니까 좋은 직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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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우림종합건설 이종원 회장.

우림종합건설에는 설립 때부터 함께 일한 직원도 있다. 현장직을 포함해 50여 명 직원 모두 이젠 한가족이 됐다.

우림종합건설 사시에서 제일 먼저 꼽는 것은 ‘가족’이다. 사무실 한쪽 벽에 걸린 사시에는 ‘가족을 위해 안전점검, 회사를 위해 원가절감, 후손을 위해 성실시공’이라고 적혀 있다.

안전하게 일해야 하는 이유는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아닌 바로 ‘가족’을 위해서이다.

사시·사훈과 별개로 사무실 곳곳에는 이 회장이 항상 강조하는 ‘여유를 가지고 미래를 생각하며 성실하게 시공하자’라는 말이 붙어 있다. 일을 할 때 항상 멀리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 이 회장의 설명이다.

서울대 빗물연구센터와 MOU

무리하지 않고 큰 고비가 없었다고 하지만,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건설사업을 하면서 어찌 고비가 없었을까.

실제 2~3년 전 수주가 잘되지 않아 구조조정을 몇 명 해야 했던 뼈아픈 경험도 있다. 그래서 자체사업으로 사업 다변화하는 방안도 찾고 있다.

“앞으로 회사를 더 크게 키우겠다는 욕심은 없습니다. 다만 바람은 직원들, 나를 믿고 지금까지 같이 온 직원들을 책임지는 겁니다.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신경 쓰는 것이지 내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고민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더 이상 구조조정하지 않고, 직원 가족들이 신경 안 쓸 수 있도록 가정을 꾸리도록 하는 것, 그것이 제가 할 역할이자 사명입니다. 직원들이 안정된 생활을 하도록 하는 것이 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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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우림종합건설 이종원 회장.

우림종합건설은 올 1월 서울대학교 빗물연구센터와 상호협력 MOU를 체결했다. 회사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그것은 회사뿐 아니라 후손들의 미래와 환경을 위한 의미 있는 선택이기도 하다.

최근 들어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환경의 중요성을 인식하며 버려지는 빗물을 재활용해 생활용수 등으로 사용하는 빗물순환체계에 관심을 갖는 곳이 많다.

이 회장이 빗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아들 때문이다. 토목공학, 그중에서도 수공학을 전공한 아들(38)의 권유로 관심을 갖고 MOU까지 하게 됐다. 점차 정부 건물 등에 이 빗물순환시스템이 적용되면 우림종합건설의 사업 영역을 확대할 계획으로 ‘수질환경 전문공사업’ 면허도 취득했다.

교육 사업은 투자가 아니다

이 회장은 김해에 있는 학교법인 청담학원의 한림중학교 이사장으로 있다. 별나다. 건설회사 회장이 시골 중학교 이사장이라니.

교육 사업을 하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1990년대쯤 학교 건설 공사를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학교에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사립학교를 지으면서 사립학교 운영에 대해 알게 되고. 그러다 부산시 교육청에 근무하던 친구가 돈을 떠나 학교 사업을 한번 해 보라고 권유하더군요.”

살면서 이름 석 자 남길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 꿈을 교육 사업을 통해 실현해보자 싶었다. 

처음 부산의 모 여고 재단을 맡으려다 여의치 않아 포기하고 있을 때, 김해의 한 시골 중학교를 알게 됐다. 여느 시골학교처럼 학생 수가 자꾸 줄고 재정이 어려운 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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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우림종합건설 이종원 회장.

이 회장은 15년 정도 학교에 정을 쏟았지만, 학교 일에 간여하지는 않는다.

“시골학교로 자꾸 침체해서 교장부터 나서서 학생 유치하려고 고생이 많습니다. 그냥 방학하기 전 등 학교 몇 번 찾아가서 고생하는 선생님들 밥 한번 사주고, 애들 어학연수 가는데 돈이 모자라다 하면 보태주고…. 돈만 쓰는 거죠. 다른 단체에 그만큼 기부를 하면 표창장이라도 받을 테지만, 학교는 그런 것도 없어요. 그래도 버릴 수는 없습니다. 도시 학교와는 달리 시골 학교는 사정이 어려운 데 외면할 수가 없어요. 다른 사립재단은 교장을 자기 사람으로 임명한다거나 하는 자기 사람 심기로 하지만, 그러면 안 됩니다.”

이 회장은 교육사업은 ‘투자’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돈에 대한 투자가 아닌 ‘미래에 대한 투자’가 될 법도 하건만 이 회장은 “교육사업을 투자라고 하면 안 된다”고 확고했다. 오로지 지역 미래를 위한 봉사였다.

이제 이 회장의 어깨에 짊어진 ‘가족’은 자신의 가족과 직원들의 가족을 넘어서 ‘지역의 미래’로 확대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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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림종합건설 로고와 사시.

언제까지나 현역 건설인

이 회장은 양산상공회의소 부회장직을 맡고 있다.

지난 2010년 경상남도로부터 자랑스러운 건설인상을 받기도 했다. 또 이 회장과 우림종합건설은 2007년 양산건축문화대상, 2013년 경상남도 건축대상제 은상 등을 받았다.

하지만 이 회장은 이에 대해 “별로 할 말이 없다”고 했다. 이유는 “특별히 잘한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뭐 자랑할 게 있다고…. 특별히 잘한 게 없습니다. 이런 걸로 자랑하면 욕먹어요. 이 인터뷰도 안 하고 싶습니다. 정말 잘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신문에 나고 해야지, 대단한 것도 없는 내가 나가면 안 되죠.”

하지만 지역 건설업계에서 30년 이상 잔뼈 굵은 산 증인이자 선배 원로 건설인의 노고와 역할은 중요하다. 30년 성실히 걸어온 그 길을 누가 무시할 수 있을까.

이 회장에게 ‘직원들의 안정된 삶’ 외에 다른 개인적인 꿈은 없을까 궁금했다.

‘언제까지나 현역’이고 싶다는 이 회장은 은퇴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단지 양산 원동에 농장을 만들어 틈나는 대로 돌보고 있다. 밭도 일구고 닭·염소 등도 키우고 있다. 이 회장의 본사 집무실에는 원동 농장 사진이 걸려 있다.

또 사무실 곳곳에 있는 서양화도 이 회장의 작품이다. 그동안 가족들을 건사하느라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 후회는 없지만 아쉬움은 있다.

그래서 이 회장은 그동안 못해본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서양화에 빠져들었다. 늘 가족이 먼저였던 7남매 중 외아들이 뒤늦게 자신만을 위해 손에 든 것이 붓이다. 요즘은 부산에 개인 사무실을 별도로 두고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등 취미생활을 하고 있다.

다시 ‘길’ 이야기로 돌아가자.

이 회장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그때그때 일기 등 글을 쓴 것을 엮어 언젠간 책을 내고 싶다고 했다.
“목적지가 같아도 그곳으로 가는 무수히 많은 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개개인의 길이 다 다릅니다. 욕심을 부리면 안 됩니다. 과한 욕심을 부리면 잘못된 길을 가게 됩니다. 멀리 보고 성실하게 길을 걸어야 합니다. 이게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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