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를 이어 온, 밀양 중화요리 1호점

3대를 이어온 중화요리 전문점 ‘태화루’를 찾았다. 지난 1954년 밀양 땅에 처음으로 생긴 중화요리 1호점 태화루는 화교가 차린 식당이다. 밀양에서 나고 자라 중년을 맞은 이들 중에 태화루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정도라고.

관광학 전공했지만 가업 선택

밀양시 내이동에 있는 태화루를 찾은 점심이 지난 시간, 백발의 노인 세 명이 요리를 즐기고 있다. 50년 넘게 단골이란다.

“찾아온 어르신 중에는 어린 시절 저희 태화루에서 중화요리를 처음 드신 분도 계세요. 옛날 그 맛이 안 난다고 하면서도 계속 찾으시죠. 돌아가신 저희 할아버지 실력을 제가 못 쫓아갑니다.”

태화루의 3대 사장 이문건(52) 씨는 밀양에서 태어났지만, 1대 사장인 할아버지 이제태(1912년 출생) 씨의 고향은 중국 산둥이다. 

무역업을 하던 이제태 씨는 한국전쟁 때 북쪽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피란민에 휩쓸려 남쪽으로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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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화루. /김구연 기자

이제태 씨는 밀양에 있던 미군부대 근처에서 미군들이 먹는 만두와 빵을 만들어 급식을 납품하다가 중화요리를 하기 시작하면서 지난 1954년 태화루라는 이름을 내걸었다. 

밀양시 내일동 영남루 근처에 있던 태화루는 지난 2008년 밀양시 내이동으로 자리를 옮겨왔다.

이문건 씨는 2대 사장인 아버지 이상순(78) 씨의 뒤를 이을 생각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다. 

“대만에 있는 대학에서 관광학을 전공했어요. 여행사를 차려서 일하기도 했었죠. 이미 지난 일이고, 벌이도 어려웠어요. 결국 서른여섯이 되던 해 태화루의 주방을 책임지게 됐지요.”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기에 쉽지 않은 일이란 것도 익히 알았고, 대접받지 못하는 직업이란 것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처럼 이문건 사장은 중화요리 주방장이라는 길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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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화루 실내./김구연 기자

“할아버지 때부터 해오던 요리법 중에 태화루를 대표할 만한 메뉴를 엄선해 지키고 있지요. 하지만 젊은 사람들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조리법을 실험하면서 잘하고 있나 스스로 묻기도 많이 했어요.” 

전통요리에 변화를 준 한국인의 맛

중화요리 메뉴는 무궁무진하다. 넓은 중국 땅에서 지역마다 강조하는 맛과 조리법도 천차만별이다. 지역별 특징에 따라 크게 베이징요리, 난징요리, 광둥요리, 쓰촨요리로 구분한다. 

베이징은 지리적으로 한랭한 북방에 위치해 높은 칼로리가 필 요해 육류를 중심으로 강한 화력을 이용해 짧은 시간에 조리하는 튀김 요리와 볶음 요리가 주를 이룬다. 

난징에는 양쯔강 하구를 중심으로 따뜻한 기후로 해산물이 풍부해 이를 이용한 요리가 많다.

광둥요리는 남쪽의 더운 지방 광저우 지역에서 자연의 맛을 살린 담백한 요리를 하는 특징이 있으며, 특히 서유럽 요리의 영향을 받아 전통 요리에 맛의 변화를 많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서방, 양쯔강 상류의 산악지대 요리를 대표하는 쓰촨요리는 바다가 멀고 더위와 추위가 심해 악천후를 이기고자 향신료를 많이 썼다. 매운 요리가 많고, 소금절이 등 보존성이 높은 조리법이 발달했다. 

무역업을 했던 이문건 씨의 할아버지 이제태 씨가 한국전쟁으로 휩쓸리듯 밀양까지 내려왔을 때 먹고 사는 길은 요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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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산슬./김구연 기자

이제태 씨의 고향인 중국 산둥은 베이징과 가깝다. 오랫동안 중국의 수도로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지였던 베이징의 요리는 튀김과 볶음 등의 고급요리가 발달했다. 

불을 다루는 대표적인 요리인 중화요리에서 태화루가 자신하는 메뉴는 튀김 요리로는 사천탕수육, 볶음 요리로는 유산슬을 내놓았다. 두 요리 모두 한국인이 좋아하는 매운 맛을 더해 이문건 사장이 개발한 조리법으로 붉은 것이 특징이다. 

태화루에서 가장 인기가 높다는 사천탕수육을 먹었다. ‘사천’이라는 이름이 들어간 데서 알 수 있듯이 매콤한 맛이 일품이다. 대개의 탕수육 소스 맛이 새콤과 달콤에서 그친다면 사천탕수육은 새콤·달콤에 매콤까지 더해졌다.

고추기름과 청양고추를 더한 탕수육 소스를 만드는 비법도 중요하지만, 맛의 결정은 돼지고기 상태와 옷을 입혀 튀겨 내는 일에 달렸다. 

“매일 돼지고기 뒷다리를 통째로 사옵니다. 네모 반듯하게 냉동된 돼지고기를 써서는 곤란하죠, 육즙이 다르니까요. 뒷다리에 붙은 살은 빚어내듯 먹기 좋게 손질합니다. 여기에 고구마 전분을 묻히는 범벅 비율이 중요한데, 그래야 옷을 까슬까슬 거칠게 입힐 수 있어요.”

태화루의 유산슬에는 고추기름이 들어간다. 매콤하면서도 깔끔한 뒷맛 때문에 자꾸만 손이 간다. 콩기름에 열을 가해 고춧가루로 직접 고추기름을 만드니 일반 판매하는 고추기름보다 훨씬 붉다.

“사천탕수육과 유산슬은 고추기름을 써 매운맛을 더해 3대에 와서 변화를 시도한 경우라면, 수소면은 할아버지 때부터 해온 태화루만의 방식을 고집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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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천탕수육 /김구연 기자

마지막으로 할아버지가 즐겨 손님상에 내놓던 수소면은 옛 맛을 살리며 조리하고 있다.

물이 있는 볶음면이라는 뜻의 수소면. 일반적인 중화요리점의 수소면이 넓은 접시 위에 볶은 국수가 올려져 육수가 바닥을 출렁일 정도의 모습이라면, 태화루는 우동에 가깝다.

국물이 붉지 않고 맑으며 넉넉하다는 점에선 우동을 닮았지만 불맛이 매우 강해 우동과는 완전 다르다. 수소면은 일반 중국집에서 파는 흰 짬뽕에 가까운 맛이나, 또 그것과 같다고도 할 수 없는 고급스러운 면요리이다.

부드러운 면을 내는 비법은 옛것을 고수한 이문건 씨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태화루에서는 ‘면강화제’ 대신 ‘빙소다’를 쓴다.

“저도 면짱이라고 불리는 면강화제를 써서 면을 뽑아 봤지요. 반죽하기 편하고 삶았을 때 잘 퍼지지도 않거든요. 그렇지만 결정적으로 부드러움이 달라요.”

이 씨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했던 대로 빙소다를 고집한다. 빙소다는 얼음덩어리 형태의 식소다라는 뜻으로 가루 형태 식소다와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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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동 /김구연 기자

“면발이 맛있어 보이게 노란빛이 나는 건 면강화제를 썼다는 거예요. 강화제를 써 반죽한 면으로 뽑으면 탄력이 좋아 쉽게 안 퍼져 배달하기 좋죠. 우리 집 면은 잘 퍼져서 배달을 안 해요. 손님들도 그걸 알고 대부분 직접 와서 즐기거나, 퍼져도 괜찮으니 배달해 달라고 하죠.”

배달보다 직접 식당을 찾아오는 손님이 많은 태화루. 그곳에 가면 추억을 맛본다.

“3대째 이어오는 식당에 어르신, 아들, 손주 3대가 다 같이 와서 먹는 모습을 볼 때가 뿌듯합니다.” 

<메뉴 및 위치>

◇메뉴 : △수소면 7000원 △자장면 4000원 △짬뽕 4500원 △사천탕수육 소 1만 9000원·중 2만 2000원·대 2만 5000원 △유산슬 2만 5000원 △알뜰코스1 탕수육+자장면 1만 2000원 △알뜰코스2 탕수육+짬뽕 1만 3000원 △2인 코스 유산슬+탕수육+식사 3만 원 △3인 코스 유산슬+양장피+칠리새우+탕수육+식사 5만 원 △5인 코스 유산슬+양장피+칠리새우+난자완스+탕수육+식사 10만 원.

◇영업시간 : 오전 11시∼오후 9시(매월 둘째·넷째주 화요일 휴무).
◇위치 : 밀양시 북성로59(내이동).
◇전화 : 055-354-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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