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희생이 없다면 누군가 행복해 질 수 없다”

인터넷에서 우연히 ‘공공미디어 단잠 2주년 생존 기념 파티’를 연다는 글을 읽었다. ‘공공미디어 단잠’은 무엇을 하는 곳이기에 ‘생존’이라는 엄숙한 표현을 들어 살아남았음을 축하하는지 궁금해졌다. 창원시 성산구 중앙동의 어느 상가 지하에 위치한 ‘단잠’의 사무실을 찾아 그들의 2년간의 생존기를 들어봤다. 이 글은 ‘단잠’의 인터뷰를 구술 형식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저희는 ‘공공미디어 단잠(이하 ‘단잠’)’입니다. 이름이 ‘단잠’인 이유가 궁금하시죠? 저희가 단편영화를 많이 찍었거든요. ‘단’이 ‘달다’는 뜻도 있고 한자로 ‘짧다’는 뜻도 있잖아요. ‘짧은’ 영화를 보러 오신 분들이 그 순간만큼은 ‘단잠’을 자듯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지었습니다. 영화가 재미없으면 달콤하게 주무시라는 뜻도 있죠.(웃음)

구성원은 대표 허성용 감독, 박해욱 실장, 기획팀에 김달님·이은지·이수진, 제작팀에 박창근·김자양·김정목, 그리고 가장 중요한 행정 업무와 맛있는 점심을 해결해 주는 김광숙 어머님. 이렇게 모두 9명입니다.
‘단잠’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업을 하나하나 말씀드릴게요. 첫 번째는 ‘공익미디어콘텐츠’ 제작입니다. 저희와 상황이 비슷한 사회적 기업이나 마을기업, 시민단체와 문화예술단체의 홍보영상을 제작해드려요.

DSC01273.JPG
▲ /최환석 인턴기자

다음은 ‘독립영화 제작 및 상영’입니다. ‘단잠’은 ‘영화사 단잠’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네 편의 영화를 제작했고, 영화 상영도 하고 있습니다. 영화 상영은 여러 형태가 있습니다. 경남을 순회하면서 시청각장애인도 볼 수 있도록 특별히 제작된 ‘베리어프리 영화’를 시청각장애인, 어르신과 저소득층에게 무료로 보여드리고 있습니다. 2년 정도 진행했어요. 그 외에는 지역민들 대상으로 독립영화제나 월 1회 상영회를 열고 있습니다.

그리고 ‘미디어 교육’이 있습니다. ‘미디어 교육’은 공모사업에 선정돼 약간의 비용을 지원받아 진행합니다. 미디어 교육은 소외계층이 대상입니다. 그래서 수익이 없더라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문화기획•활성화’는 여러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 중 두 가지만 말씀드리면 홀몸노인들에게 쌀을 나눠 드릴 목적으로 운영하는 ‘쌀·책 교환 장터’와 폐지를 모으시는 노인들께 맞춤 손수레를 제작해드리고 생필품도 지원하는 ‘러브리어카’가 있습니다.

미디어로 더불어 잘사는 지역사회를 꿈꾸다

저희 영화를 보시면 알겠지만 대부분 내용에 지역 사회의 문제의식이 결합해 있습니다. 모두가 함께 고민하는 부분을 영화로 찍었죠. 저희 신념은 ‘우리가 잘할 수 있는 영상으로 더불어 잘사는 지역사회를 꿈꾸다’입니다.

DSC01287.JPG
▲ /최환석 인턴기자

처음엔 인터넷 방송을 해볼까 생각했습니다. 지역에 소외된 곳을 찾아가 방송으로 알리자는 생각을 했는데, 같은 방법으로 ‘송출’에 나선 단체가 많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송출에 대한 생각은 없습니다.

대신 저희는 ‘콘텐츠’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이 ‘밀양 송전탑 이야기’입니다. 2년 전부터 진행했고 올해 다큐멘터리로 보여드리려 합니다. 그리고 경남통일농업협력회가 2006년부터 북한에 농업기술을 전하거나 묘목을 보내는 사업을 계속 했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중단했다가 최근 재개했습니다. 5년 만에 북한에 갈 수 있게 된 거죠. 그분들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드는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지역 소식에 대한 지역민의 관심이 소홀하지 않으냐고요? 매일 나오는 신문은 고민이 많을 거로 생각합니다. 전 사실 <경남도민일보>에 애착이 많습니다. 지역신문이 나아갈 방향을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저희는 신문보다 좀 더 한 가지 이야기를 지속해서 할 수 있습니다. 이전 <굿바이 마산>이라는 중편 극과 다큐멘터리를 결합한 영화에서도 통합과정에서 없어진 ‘마산’이라는 이름을 알리려 노력했습니다. 저희는 하나의 주제에 마음을 쏟기 시작하면 콘텐츠로 구성하는 건 자신 있습니다. 다른 지역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지역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지역민이 함께 영화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DSC01323.JPG
▲ /최환석 인턴기자

영화가 소외계층에게 밥 한 끼보다 대단한 게 있을까 생각 할 수도 있어요. 이제는 극장에 가지 않아도 스마트 폰으로 볼 수 있는 게 영환데. 하지만 쉽고 편하게 볼 수 있을수록 문화적 혜택에서 소외되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시청각장애인들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영화를 접해본 적 없는 사람들이 많아요. ‘베리어프리 영화’는, 기존 영화에 음성해설과 자막작업이 더해졌어요. 그래서 시각장애인은 설명을 들으며 영화를 감상할 수 있고, 청각장애인은 자막을 보며 감상할 수 있어요. 이분들에게 꼭 영화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에 2012년도에 7개 지역을 돌아 1000여 명에게 영화를 보여드렸어요.

처음엔 저희도 의문이 있었어요, 이 경험이 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지. 상영이 끝나고 다섯 분 정도 감상문을 보내주셨는데, 연세가 70이 되신 분들이 태어나 처음 영화를 봤다고 하셨어요. 영화만 본 게 아니라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기회도 됐다고 말씀하셨을 때 감동을 많이 느꼈어요. 이분들에게 영화를 보는 두 시간이 값진 시간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다음엔 지역을 넓혀서 외진 곳에 있는 요양원이나 장애인시설을 찾아가 2차 상영회를 열었어요. 

그땐 더 반응이 좋았어요. 그분들도 영화를 처음 보신 거라고 했어요. 밥 한 끼가 중요하지만, 밥값에 상응하는 영화 한 편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영화 한 편이 저소득층 아이의 미래를 바꾸거나 꿈을 꾸게 할 수 있다면 어쩌면 밥 한 끼보다 중요할 수 있죠. 한 아버님은 “후회한다. 내 인생. 눈이 보이지 않아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생각했는데 영화의 주인공을 보면서 나 자신이 참 못났다고 느꼈다. 20년 전으로 돌아가 열심히 돈 벌어 내 딸에게 사탕 하나 사주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20년 전에 이분이 영화를 접했다면 많은 부분이 달라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저희는 영화 상영이 누군가의 인생에서 밥 한 끼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

DSC01338.JPG
▲ /최환석 인턴기자
저희는 저소득층 아이들과 함께 영화도 찍고 그림도 그려요. 미디어 교육 과정 안에 저희가 하고 싶은 것과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함께 포함해요. 그래서 그때그때 교육내용이 바뀝니다. 

시골학교에서 ‘미디어 교육’을 했을 때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여기 아이들은 꿈이 한정돼 있다. 그런데 미디어 교육을 하고 나서 그 꿈이 커졌다”고. 보는 만큼 아이의 꿈이 커진다고 봐요. 지금은 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거든요. 재능을 발견해주는 교육이죠. 들리지 않고 말은 못하지만 그래서 보는 눈이 대단해요. 몇 년 차 사진가보다 더 재미있게 찍어요. 보통 중학생들은 사진에 균형 감각이 없고, 대학생들은 균형감각만 배워서 사진에 재미가 없어요. 하지만 이 아이들은 타고난 균형 감각이 있어요. 삐뚤어진 작품이지만 그 속에 안정감과 이야기가 있어요. 희한하게 재미있는 대상을 잘 찾아요. ‘타고난 사진가구나’하는 생각을 해요. 그때 보람을 느낍니다. 

우리도 몰랐고 아이들도 몰랐던 사실을 서로 알아가죠. 미디어 교육이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목표는 조금씩 달라질 수 있지만, 가르침보다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작품을 완성하는 과정에 정이 들 함께 하는 ‘소중한 시간을 선물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라 단기 청소년쉼터’는 소년원에 다녀오거나 가정폭력 때문에 집을 나온 남자 고등학생 또래 아이들이 모인 곳입니다. 2012년에 그곳 아이들과 영화제작을 하면서 석 달을 함께 했어요. 그땐 경험도 없고 부족한 부분이 많아서 아이들에게 잘해주지 못한 것이 기억에 많이 남아있어요. 한 아이에게 가장 후회되는 일이 뭐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중3 때 싸움을 시작했던 일이라고 해요. 그 때문에 인생을 망쳤다고. 다시 인생을 시작하고 싶단 말을 하는데, 그런 말을 하기에 너무 어린 나이잖아요. 그런 아이들이 정말 많았어요.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많이 울었죠. 애들도 많이 울었어요. 한 명은 편지를 썼더군요. 자기가 울면 선생님들 마음이 아플 테니 절대 울지 않을 거라고. 미디어 교육은, 교육하지 않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애들과 친해지는 것이 중요하죠.

아직 만족할 수 없지만 ‘초심’ 잃지 않아

‘단잠’은 ‘경남형 예비 사회적 기업’입니다. 일부 요건을 채우지 못했지만, 요건을 보완하면 나중에 사회적 기업이 될 수 있는 단계입니다. 처음에는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습니다. 영화사를 10년 정도 했는데 좀 더 사회와 깊은 관계를 맺고 싶었습니다. 또 ‘시기성’이 문제였는데요, 영화를 만드는 기간이 짧게는 6개월이다 보니 사회문제를 알리기엔 늦은 감이 있었어요. 적극적으로 지역사회와 함께하고, 하고자 하는 말을 빨리 전달하고 싶었죠. 그러다 우연히 사회적 기업 제도를 알게 됐습니다.

DSC01364.JPG
▲ /최환석 인턴기자

힘든 부분요?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목적이 기업의 이익보다 우선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관련 기관이 사회적 기업의 원 목적을 충분히 이해하고 기억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사회적 기업’이란 이름에 모든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오로지 ‘일자리 창출’입니다. ‘사회적 기업’을 일자리 주는 기업으로만 보고 사회적 목적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어요. 인쇄소나 디자인 회사에서 사회적 기업을 어떻게 하느냐는 문의가 쏟아집니다. 지원금을 받기 위한 거죠. 일자리만 창출하면 된다는 생각이 문제입니다. 사회적 기업을 평가하는 기준이 그렇습니다. 담당자 입장에서도 그 부분에 치중할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국가에서 사회적 기업을 통제하려 하고 점수와 등수를 매기니 담당자들도 그 부분을 만족할 수 있는 기업만 뽑죠. 이게 저희의 가장 큰 고민입니다. 과연 이게 사회적 기업이 맞는가. 고민이라기보다 안타깝죠. 일단은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런 얘기 하면 저희도 싸잡아 욕먹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당장 저희가 해야 할 일은 돈이 좀 안 되더라도 직원 모두가 열심히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겁니다. 지역사회와 같이할 수 있는 사업을 지금 모습에서 2·3년 동안 좀 더 해나가고 싶습니다. 이번 2주년에도 고민했지만, 처음 영화사의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2년 후에는 좀 더 영상 미디어 콘텐츠 부분에 집중해서 지역이야기를 영상에 담아 다큐멘터리, 극영화로 만들어 사회적 기업 인증에 박차를 가하려 합니다. 이번 시나리오 공모전에 당선된 마산 해안가를 도는 버스이야기를 영상에 담을 계획입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우리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인가’입니다. 아이디어는 중요하지 않아요. 세상 모든 곳에 아이디어가 있죠. 이걸 현실화시킬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또한, 현실화하는 데 필요한 것은 돈입니다. 돈이란 물질이죠. 물질이 따라올 수 있는 아이디어 인지가 중요합니다. ‘러브 리어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돈을 어떻게 마련할까 고민하다 떠올린 것이 기금 마련을 위한 인터넷 사이트 운영이었습니다. ‘러브 리어카’ 프로젝트가 영상과 관련이 없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지속해서 프로젝트를 이어나갈 생각은 없습니다. 영상이 아니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저희 역할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러브 리어카’도 처음 해보니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저희의 실패와 경험담을 책자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다른 단체가 이걸 보고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습니다. 지역사회와 함께할 수 있는 일이고, 지역사회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예쁜 일이라서 진행했지, 같은 일을 반복하고 싶진 않습니다. 누군가 이 일들을 맡아 해주길 바라요.

DSC01389.JPG
▲ /최환석 인턴기자

저희의 모든 활동이 만족스럽지는 않아요. 아쉬운 활동도 있죠. 대표적인 것이 <빵빵빵 창원!> 프로젝트입니다. 역부족이었단 생각이 많이 들었던 활동이에요. 대기업 가맹점이 생겨나자 운영이 어려워져 빵집 하시는 분이 자살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지역 빵집을 살리자는 생각으로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젊은이들을 모아 문화운동처럼 번질 수 있게 해보자 해서 우리 지역 빵을 먹어보는 모임을 만들었어요. 맛있는 빵집을 선정하고 홍보도 해줬죠. 하지만 구체적인 ‘지역 빵집을 살리는 과정’까지 가지 못했어요. 빵집 사장님들이 저희의 접근에 보수적이었고, 우리 능력에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분들이 원하는 걸 우리가 몰랐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잘하는 방법으로만 접근한 것이 실패의 요인이 아닐까 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해보고 싶어요.

DSC01410.JPG
▲ /최환석 인턴기자
빚 있어도 사람 있어 두렵지 않아

저희가 사실 초창기에 빚을 많이 졌어요. 감당할 수 없는 빚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직원이 많아지고 모두 자기 자리에서 일당백처럼 움직여 주니까 빚이 두렵지 않아요. 언제든 갚을 수 있단 생각이 들어요. 빚이 겁나서 중단했다면, 더 힘든 삶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아직 빚이 남아 있지만 두렵지 않습니다.

지금은 소수가 계획을 짜고 나머지가 따라오는 방식입니다. 점점 경험 있는 사람을 보충하고 나머지 식구도 경험이 많아지면 시스템을 조절할 계획입니다. ‘사람’이 준비돼 있기 때문에 가능하리라 생각합니다. 정부도 시스템의 문제라고 하잖아요? 공감은 하는데, 사람이 없으면 시스템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좋은 사람들이 있어요.

이젠 지금까지 해온 활동을 다듬어야 할 때라고 생각해요. 계속해서 어떤 일을 하겠다면 꼭 필요한 과정이죠. 또 2014년 하반기부터는 저희가 좀 더 잘할 수 있는 영상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다큐멘터리 2편과 극영화, 장편영화도 준비 중입니다. 물론 모두 ‘지역사회 이야기’입니다.

모두 월급 받는 만큼 더 열심히 해주길 바라요. 아니다, 월급이 많지 않으니 덜 열심히 하려나?(웃음) 작년 크리스마스 때 모두 모여 올해 가장 잘한 일이 뭔지 얘기했는데 하나같이 단잠에 입사한 일을 꼽았어요. 그때 참 행복했어요. 앞으로도 직원들, 저희와 함께하는 모든 분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저희에게 관심을 보내는 분들에게 감사합니다. 저희가 하는 일보다 더 과대하게 관심을 가져줘서. 저희는 그렇게 생각해요. ‘우리 희생이 없다면 누군가 행복해 질 수 없다’고.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