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문명 세상에는 새로운 삶의 윤리가 있어야"

4월 28일은 원불교 ‘대각개교절’이다. 99년 전인 1915년 박중빈 소태산 대종사가 우주의 진리에 대해 크게 깨우치고 일원대도를 밝혀 원불교를 창시한 날로 원불교 최고의 경축일이다. 마침 경남교구 김경일 교구장이 경남에 부임한 지 1년이 다 돼가던 참이라 인터뷰를 추진했다. 그는 2003년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 이희운 목사와 함께 전북 해창갯벌에서 서울시청 앞 광장까지 새만금 간척사업 중단을 촉구하며 65일간 3보1배를 했던 이다. 인터뷰 추진 당시 어린이와 환경에 많은 정열을 쏟는 원불교에서는 대각개교절을 앞두고 성대한 자축 행사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4월 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앞에서 ‘경축’ 의미는 묻혀버렸고, 온 나라가 무사 생환을 기원하는 간절한 염원만이 충만했다. 대각개교절을 앞두고 4월 23일 오후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원불교 경남교구에서 만난 김경일 경남교구장은 세월호 사고에 대해 매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사고 원인을 급격한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허점이 집약돼 폭발한 것으로 지적하고 종교의 역할을 강조했다.

자본의 탐욕에서 벗어날 길 모색해야

-세월호 참사, 어떻게 이런 불행이 일어났을까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짧은 시간에 서양문명 특히 자본주의 서양문명을 아주 잘 흡수해서 지금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라는 얘기를 해왔잖아요. 이번 세월호 같은 경우 보면 아직 생명·인명에 대한 가치나 소중함, 이런 것들을 참 너무 가볍게 대하는 거죠. 법도 안 지키고 뭣도 안 지키고 선장이 뭘 안 하고 하지만 조금 더 큰 눈으로 보면 전부 다 회사의 이익 창출 그것에 다 맞물려 있어요. 선장의 월급을 적게 준다든지 배가 조타기가 고장 났는데 한 달 전부터 수리해달라 해도 안 하고 버텨왔다든지 하는 것도 전부 회사의 경제적 이익하고 관련 있는 거죠. 자본주의 패러다임에 갇혀 있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고는 우리 사회의 약점이 고스란히 집약돼 터진 겁니다. 대통령부터 재벌들, 관료, 정치인은 당연하고요, 전 국민이 함께 왜 우리 사회에 이런 문제가 한두 번이 아니고 계속 발생하는지, 근원 문제를 계속 탐구하고 고쳐나가야 합니다.”

김경일 원불교 경남교구장./김구연 기자

-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안전불감증이 많이 제기됩니다만, 그 과정의 부정과 비리를 찾아내 관계자를 처벌하고 잘못 작동된 시스템을 바로잡기만 하면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까요?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지금 우리를 얼마나 비웃는지 몰라요. 상식 밖의 일들이 한국에서는 왜 자꾸 일어나느냐는 거죠. 천안함 사건 터진 지 얼마나 됐습니까. 불과 얼마 전에도 체육관이 무너지면서 애꿎은 젊은 생명이 얼마나 스러졌습니까. 씨랜드에서는 또 그 어린 생명이 영문도 모르고 죽어갔죠. 서해훼리호 사건은요. 사고가 나면 호들갑을 떨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달라지거나 개선되지 않았다는 방증이잖아요. 그 배경에는 자본의 욕심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씨랜드 참사 때 아이를 잃은 하키 국가대표 선수가 자신이 받은 메달과 훈장을 전부 반납하고 뉴질랜드로 이민 간 일이 있었죠. 그 인터뷰가 이번에 보도됐던데, 공감이 참 많이 가요. 한국은 어떻게든 경쟁에서 이기라고 어릴 때부터 가르치는데, 그곳에서는 어떻게 같이 살까를 끊임없이 연구시킨대요. 그러니 우리나라에서는 자본주의의 탐욕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거죠. 자꾸만 윤리도 메말라가고, 공동체도 없어지고 말았어요. 내가 살아야 대접받는다는 생각, 어떻게든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이번 사고뿐만 아니라 훨씬 더한 문명적 위기를 맞게 될 겁니다. 이제는 세상과 더불어 사는 방식을 자꾸 연구해야 합니다.”

인터뷰 하는 김경일 원불교 경남교구장./김구연 기자

- 세월호 참사 직전에 경남에서는 학교폭력으로 학생 두 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우리 문명을 여러 가지로 비판할 수 있지만, 구체적으로 우리 삶에서 보면 밤이 없어졌다는 거예요. 24시간 내내 뭔가가 돌아가는 거죠. 그런 데서 생명의 리듬이 다 깨지고 그 리듬이 깨지면서 돈을 향한 리듬만 만들어져요. 요즘 아이들은 부모의 따뜻한 손길을 맛본 지가 오래됐어요. 대신 부모는 그에 대한 죄책감 부채의식이 있으니 돈으로 대신하는 거예요. 하지만 그걸로는 채워지지 않는 뭔가가 있다니까요. 부모의 따뜻한 사랑으로 채워줘야 하는데 그 채워지지 않는 걸 돈으로 주면, 돈이라는 게 잠시 마비시키지만 결국 안 채워져요. 그게 나중에 전부 불만요인으로 되는 거고 폭력으로 나타나는 거죠. 자본주의적 물성에 포섭돼 언제나 경쟁하고 이기고자 허겁지겁 달릴 수밖에 없는 시스템에서 벗어나려는 사회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 원불교에서는 후천개벽이라는 말을 쓰죠. 후천이란 새로운 문명세상이 열린다는 뜻이에요. 과거와는 판이 다른, 패러다임이 다른 새로운 문명세상이 열린다는 거죠. 새로운 문명 세상에 맞는 삶의 윤리, 뭐랄까 삶의 새로운 형태를 찾는 데 종교가 역할을 할 부분이 있다고 봅니다.”

새 문명에 맞는 정신 운동 필요

- 원불교 성직자 중에서는 드물게 새만금 반대 삼보일배를 하셨더군요. 하지만 이후로는 언론에 크게 노출되지는 않았던데요.

“기본적으로 삶에 무엇이 근본인가 하는 생명의 본질 문제에 관심이 있고, 그것을 화두로 삼고 살기에 세상에 얼굴을 드러내고 하는 그런 스타일은 기본적으로 아니에요. 근데 그때는 왜 그랬느냐면, 새만금이라는 문제가 그 당시 전북에서는 굉장히 중요한 이슈였어요.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이었느냐면, 지금도 가면 마찬가진데, 공사 시작 23년 됐는데 지금도 겨우 둑만 막아뒀어요. 갯벌을 막는 게 아니라 바다를 막는 거고 33㎞나 되는 방조제를 쌓아 바다를 막는 거예요. 세계서 최고 길다는 방조제 아닙니까. 그것을 막아서 뭘 하려 했느냐면 논을 만들어서 쌀을 생산하겠다는 건데, 그때 당시 쌀이 남아서 쌀 때문에 골머리가 아픈 시절이었어요. 남아도는 쌀을 주체를 못하는데 멀쩡한 바다를 막아서 논을 만들고 농사짓겠다니 얼마나 허황한 일입니까. 새만금은 세계에서 5번째로 큰 갯벌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갯벌이고요. 그리고 거기가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강을 끼고 있는 사구 갯벌이어서 생명의 다양성이 굉장히 풍부한 갯벌이었어요. 요즘 기준으로 보면 갯벌 단위당 면적과 논농사 단위당 면적에서 갯벌이 네 배에서 여섯 배 수익이 더 나옵니다. 가만 놔두면 수익도 많이 나는 것을 다 깔아뭉개고 거기다 지금까지 들어간 돈만 해도 3조 원 가까이 쏟아부었어요.

앞으로도 한 20조 이상 더 들어가야 거기에 공단과 논이 만들어진다고 해요. 근데 그 돈을 넣어 생산이 훨씬 더 떨어지면 이건 할 일이 아니죠. 정치적인 이슈 때문에 시작된 거예요. 노태우 대통령이 후보시절 전라도 표를 분산시키고자 공약하면서 시작됐고,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대통령이 죄다 전북 표를 의식해서 폐기하지 못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노무현 대통령이 와서는 국가가 난개발하면 안 된다는 교감이 있었어요. 하지만 대통령이라고 해도 막강한 관료들을 일거에 장악하지 못하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그러면 우리가 몸을 던져야겠다, 그렇게 삼보일배를 한 거죠. 새만금이란 게 그 당시 돈이 된다면 뭐든지 하는, 국가가 돈만 되면 뭐든지 한다는 그런 생각 소위 개발주의 그런 행태가 이제는 더 이상 안된다는 생각으로 새만금 삼보일배에 참여한 거고요.”

김경일 원불교 경남교구장./김구연 기자

- 당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만.

“이후 깨달은 게 지금은 어떻게 보면 나사가 완전히 풀린 자본주의, 자본 돈 탐욕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에 거대한 물결로 휩쓸고 지나가고 있는 거라는 거였어요. 그런 과정에서 전부 세월호 사건 같은 게 다 나는 거죠. 얼마 전 대학생 죽은 것도 건물 지으면서 철근 다 빼버리고, 그게 재벌들이 다 한 짓이잖아요. 그런 것들이 전부 공무원들이 눈감아준 거잖아요. 그런 것이 너무 많아요. 그때 당시에 그런 것들의 상징이라고 보고 그것을 중단시켜야겠다, 사실상 중단이 안 되더라도 그것으로서 마감하고 국민이 크게 각성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물욕에 대한 터무니없는 욕심들 그런 것을 절제하는 어떤 운동이 있어야겠다. 그런 차원에서 삼보일배 운동이 시작됐는데, 뒤에 보니 그거 가지고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좀 더 근원적인 것이 뭘까 그런 데 관심이 많고요.”

김경일 원불교 경남교구장./김구연 기자

-100여 년 전 후천개벽 추구하는 선인들이 있었는데, 지금 와서 문명위기론이 확산하고 있단 말입니다. 현재적 의미가 무얼까요?

“구한말에 조선이 무너지면서 서양문명이 들어오고 거기서 생긴 엄청난 혼란, 정신적 위기감을 극복하고자 하는 종교운동? 사상운동? 정신운동? 뭐 그런 거대한 흐름이 있었어요. 동학을 일으킨 수운 최제우 선생이나 강증산 선생, 원불교를 개교한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 같은 분들이 대표적이죠. 그 중 원불교는 앞으로 인류가 닥칠 문명의 최대 어려운 점은 소위 자본주의와 과학기술 발전에 의한 물질문명 중심사회가 되는 데 대한 우려를 많이 하죠. 그래서 물질문명 중심사회가 가져올 여러 가지 파생될 어려움에 대해 많은 지적을 해왔습니다. 개교표에 보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고 있는데 원불교를 개교하게 된 모티브를 표어로 한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우리가 현재가 당한 현실이라고 보고 있고요. 지금도 겪고 있는 거잖아요. 어쩌고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짧은 시간에 서양문명 특히 자본주의 서양문명을 아주 잘 흡수해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이라는 얘기를 해왔잖아요. 하지만 현대인들은 열심히 사는데 살면서도 사람들이 많이 호소하는 것이 뭔가 텅 빈 것 같다는 것, 채워지지 않는 가슴이라는 거죠. 이게 옛날에는 못살던 사람이 어디 가서 돈 좀 벌고, 학교 못 다니던 사람이 어디 가서 학교도 다니고 그러면 그런 것이 나라를 키워줬는데 이제는 돈도 벌만큼 벌고 배울 만큼 배웠는데도 채워지지 않은 무엇인가가 있는 거예요. 그게 뭐냐. 그 문제를 풀어내야 새로운 문명 패러다임이 열린다고 생각하고 있고. 우리 원불교는 그런 쪽에 더 많은 관심 갖고 있죠.”

김경일 원불교 경남교구장./김구연 기자

-종교가 현대인들이 겪는 정신적 공허감 같은 데 대한 대안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쩌면 종교는 믿음의 영역이고 논리적 사고나 이성의 영역으로는 인문학이 있겠는데, 인문학도 위기라고 합니다만.

“그래서 인문학 운동이 뜨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인문학 운동도 조금 지나면 저것도 장사가 되고 상업화합니다. 지금은 뭐를 꺼내놔도 자본주의가 워낙 힘이 세기에 전부 상업화돼요. 하기야 종교조차도 자본주의라고 하는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가고 있어요. 지금 세상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대요. 교세 조직 이런 것들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종교에 대해 환멸을 느낀다, 지식인일수록 더하고 그래서 종교를 거부하는 거고요. 그러면서 한편으로 영성의 갈증, 마음이 텅 빈 거 같은데 대한 갈증에 대해서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찾고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종교의 형태는 앞으로 점점 설 자리가 적어질 거고요. 앞으로 종교는 좀 더 유연하고 사람들의 내면에 깊숙이 사람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만족시키고 행복감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현대인들은 종교에 대해 이중적이에요. 이런 종교에 대해 매우 거부하고 종교의 본질적 요소, 근원적 생명에 대한 갈구, 영성에 대한 갈구 이런 것들은 더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해요.”

김경일 원불교 경남교구장./김구연 기자

종교인들간 대화의 장 마련하고파

-지역에 온 지 1년인데 앞으로 구상은 무엇인가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대학도 다녔고, 책도 옛날보다 훨씬 많이 읽었고, 인터넷 통해 엄청난 정보를 얻고, 돈도 먹을 만큼 있고, 옛날에는 세끼 밥도 못 먹었는데 지금은 어쨌든 많이 먹어서 병 나잖아요. 지금 입고 있는 이 옷이 옛날 임금님보다 못하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행복하지 못할까. 그런 질문을 계속 좀 던져보고 싶어요. 이곳은 산업지역이잖아요. 돈이 많이 돌아가니 다른 지역에 비해 살기가 좋죠. 조금이라도 부드럽고, 여유가 있으니까 길이라도 반듯하게 닦아놓고, 숲이라도 보존하고.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개발도 하지만 거기서 나오는 과실로 보존 노력도 해요. 그것만으로는 사람의 마음을 채우지 못합니다. OECD 편입는데도 자살률 1위라는 게 무슨 뜻일까 이런 데 대해 질문을 던져보고 싶고요. 진정으로 행복해지는 게 뭘까, 그런 것을 초점으로 해서 지역에서 사람들과 대화도 하고 싶고 그런 활동을 해보고 싶어요. 또 하나는 마산 부산이 광주와 더불어 우리나라 민주화운동 양대 기준이에요. 여기는 산업도 가지고 있고 민주화 전통도 있어요.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협력관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여기는 그런 여건이 굉장히 잘 갖춰진 지역인데 왜 그런 자부심도 갖지 못하고 그런 역사적인 것들이 다 뿌리 채 뽑혀서 말라 죽어갈까 그런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사람이 살만한 사회, 그래서 생명이 존중되고 가난하다 해도 최소한의 삶이 보장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없는 사람들의 인권이 함부로 짓밟히지 않고, 그래도 최소한의 삶이 존중되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 그런 것에 대해서 좀 관심 둬보고 싶습니다. 또 하나는 와서 보니 생각보다 종교인들간의 그런 대화 장이 없네요. 이런 얘기를 모여서 하는 장이 있어야 할 텐데 그게 없어요. 한번 좀 어떤 계기를 만들어서 같이 논의도 해보고 싶어요.”

김경일 원불교 경남교구장./김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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