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서지역 주민들이 책 읽는 재미에 빠진 까닭!

 혹시 ‘한 마을 한 책 읽기’란 말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신지. 인터넷, 스마트폰이 사람들의 눈을 사로잡는 시대에 책 읽기, 그것도 ‘한 마을 한 책 읽기’라니, 하시며 격하게 반응하실 분도 있겠다. 최근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지역작은도서관협의회(회장 이우완)는 ‘내서 한 마을 한 책 읽기 추진 선포식’을 열었다.

지난 5월 12일 오전 창원시 마산회원구 내서읍 삼계본동 숲속마을도서관에서 이우완(42) 회장을 만났다. 제일 먼저 던진 질문은 ‘한 마을 한 책 읽기’가 무엇이냐는 것이었다.

“한 마을 한 책 읽기는 한 지역사회에서 일정기간에 걸쳐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함으로써 공통된 문화적 체험을 공유하는 대중 독서 운동입니다. 이 운동은 1998년 미국 워싱턴주의 시애틀공공도서관에서 시작된 후 전 세계적으로 번진 운동입니다.

저희가 이번에 펼치게 된 ‘내서 한 마을 한 책 읽기’에서는 두 권의 책을 어린이와 어른이 나눠서 읽게 됩니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한 책’은 남찬숙 작가의 〈할아버지의 방〉(미세기)이 선정되었고요. 청소년과 어른을 대상으로 하는 ‘한 책’은 김려령 작가의 〈우아한 거짓말〉(창비)이 선정되었습니다.

‘내서 한 마을 한 책 읽기’를 좀 더 대중적으로 펼치기 위해서 저희들 작은도서관뿐만 아니라, 내서에 있는 각 학교에 협조를 구해서 학교도서실도 이 운동을 같이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 책 읽기’에 참여하신 분들은 온라인 카페에 들어오셔서 감상평을 남길 수도 있고요. 10월 토론회와 작가와의 만남에도 함께하실 수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여름 방학 때 1박 2일 도서관캠프에서 토론과 다양한 독후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또 영화 〈우아한 거짓말〉 상영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한 마을 한 책 읽기’가 책을 읽을 수 있는 동기 부여, 독서문화 향상에 조금이나 이바지하리라 기대합니다. 올해는 첫 시도를 했던 지난해보다는 좀 더 짜임새 있게 사업을 준비했습니다.”

남해 고현면이 고향인 이 회장은 올해로 9년째 내서에서 살고 있다. 남해 고현중학교와 진주고등학교, 경상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나왔다. ‘남해의 섬 소년’은 과연 어떤 계기로 내서로 오게 된 것일까.

이우완 내서지역작은도서관협의회 회장./김구연 기자

4월부터 책 읽기 운동 시작

“중학교 때까지는 공부보다는 농사일 돕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때문에 공부는 잘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공부에 매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충무고등학교에 계시는 정헌 선생님께서 제 가능성을 보시고 저희 부모님을 설득하셨습니다. 그 이후로는 농사일에서 해방(?!)되어 공부만 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하기 전까지는 계속 진주에서 살다가 창원에 있는 남산중학교에 기간제교사로 가게 되면서 창원으로 오게 됐습니다. 그리고 2년 기간제교사를 마치고 이곳 내서로 오게 되었죠. 사실 집값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점도 고려가 됐습니다(웃음).

내서에 들어와 살게 되면서 생계수단으로 선택한 것이 초·중학교 방과후 논술강사였습니다. 학교뿐 아니라 인근의 작은도서관 두 곳에서도 방과 후 수업을 했습니다. 도서관에서 수업을 하면서 도서관에 관심을 많이 두게 되었고, 관장님들과 사서 선생님들과도 친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숲속마을도서관 건립추진위원회가 꾸려지면서 건립추진위 사무국장을 맡고, 개관 이후에는 시간을 낼 수 있는 여유가 가장 많고, 도서관에서 수업을, 그것도 독서논술 수업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제가 관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숲속마을도서관을 개관한 것이 2010년 12월인데요, 관장 맡은 지 한 달 만에 내서지역작은도서관협의회 모임에 가게 되었습니다. 도서관별로 관장님과 사서 두 분씩 오시는데 제가 유일한 남자였습니다. 여성분들이 많은 단체이고, 도서관이라는 것이 주로 주부와 아이들이 이용하는 곳이라 굳이 남자가 회장을 맡을 필요가 없는데도 1개월짜리 관장인 저를 회장으로 추대를 해주셔서 거절도 못 하고 맡게 되었습니다.”

이우완 내서지역작은도서관협의회 회장./김구연 기자

이 회장을 인터뷰어로 추천한 이민희 푸른내서주민회 사무국장은 “진주 경남예술고등학교 임용철회 사건에 대해 꼭 물어보라”고 했다. 이 회장이 내서로 오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됐을 것이라는 암시가 깔린 듯했다.

“별로 되새기고 싶지 않은 기억입니다. 벌써 12년 전의 일이네요. 2001년 10월께 산청에 있는 송계고등학교에 근무하던 중 경남예고 교장선생님께 면접 겸 인사를 갔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당시 허추자 교장선생님께서 이번에 경남예고에서 정규직 국어교사를 뽑을 예정이니 한번 응시해보라고 해서 그 해 경남교육청 위탁으로 치러진 사립학교 임용시험을 보게 되었습니다. 3명 지원해서 혼자 1차 필기시험에 합격하고 면접이랄 것도 없이 교장선생님과 이사장(교장 선생님 아들) 만나서 인사하는 것으로 최종합격이라는 구두통보까지 받았습니다. 근무하던 송계고등학교를 사직하고 첫 출근을 기다리고 있는데, 학교에 한번 들러달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교장실에 갔더니 신원조회 회보서를 보여주면서 대학 다닐 때 학생운동 했느냐고 묻더군요. 그 회보서에는 저의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대학 다닐 때 인문대학 학생회장으로서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처벌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국가보안법 전력은 김대중 정부 때 이미 사면 복권되어 교사임용의 결격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을 드렸지만, 그런 것은 공립학교에서나 따지는 것이고 사립학교 교원임용은 전적으로 이사장의 권한이기 때문에 비록 사면 복권되었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학교에 임용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당시 인권단체 등에 알려서 함께 대응을 하고, 방송에도 여러 차례 보도가 되었지만, 경남예고에서는 끝내 임용거부를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까지 제소를 했지만 인권위에서는 임용을 권고하는 수준의 결정밖에 내릴 수 없었습니다.”

이우완 내서지역작은도서관협의회 회장./김구연 기자

그는 이 과정을 겪으면서 두 가지의 부당함이 있었다고 술회했다.

“먼저, 신원조회 관련된 경찰청 내규인데요. 당시 경찰청 내규에는 사면 복권된 전과기록까지 기재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사면 복권되었다는 문구도 기재해 놓습니다. 하지만, 채용하는 측에서는 아무리 사면 복권되었다고 하더라도 전과기록을 본 이상은 채용하고 싶지 않을 거라는 겁니다. 사면 복권과 관계없이 주홍글씨처럼 항상 따라다닌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립학교의 지나친 자율권입니다. 사립학교 교원 월급은 모두 국가에서 지급합니다. 학교 운영자금 대부분도 국가에서 지원합니다. 교원 임용권한을 국가가 행사하지 못한다는 것은 너무나 부당한 것입니다.”

주제를 다시 도서관 이야기로 돌렸다. 내서지역작은도서관협의회를 소개해 달라고 했다.

“내서에 있는 작은도서관 일꾼들이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공통으로 부딪히는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더 나아가 좀 더 규모 있는 사업을 벌여보고자 해서 만든 협의체입니다. 2009년에 책사랑내서마을도서관, 하늘채문화의 집, 이미지작은도서관 등 세 개의 작은도서관과 푸른내서주민회라는 주민단체가 참여해 결성되었고, 2010년에 저희 숲속마을도서관이 개관과 동시에 가입해서 현재 네 개의 도서관과 한 개의 주민단체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이우완 내서지역작은도서관협의회 회장./김구연 기자

저희 작은도서관협의회에서는 정기적인 워크숍을 통해 도서관 운영자들의 실무능력과 도서관 운동에 대한 이해를 넓힘으로써 도서관 운영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장서점검과 같이 개별 도서관에서 진행하기 어려운 업무는 두레를 통해 네 개 도서관이 함께 진행하고 있습니다. 네 개의 작은도서관이 상시적인 업무협조를 통해 서로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기 때문에 결속력이 강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결속력이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에 작은도서관협의회에서 논의하여 제안하는 사업이 큰 무리 없이 각 도서관에서 집행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양한 삶 담긴 책 통해 소통 능력 키워야”

이 회장에게 책이란 무엇일까. 어떤 책을 감명 깊게 읽었을까.

“책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창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만든 ‘윈도’로 다양한 세계를 접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고전을 읽으면 옛 세상을 경험할 수 있고, 외국 서적을 보면서 그 나라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면 그들의 삶을 알게 되고 이해하게 되면서 사회적 실천으로까지 나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로 확정된 정몽준 씨 아들이 작가 조세희가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었더라면 세월호 침몰 사고와 관련해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도 미개한 것 아니겠느냐’와 같은 발언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들만의 세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담겨있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생 시절 실천문학사에서 나온 〈체 게바라 평전〉을 읽고 뜬눈으로 밤을 새웠던 기억이 납니다. 충격적이었죠. 자신은 의대생으로서 그대로 의사자격증만 딴다면 편안한 일생이 보장되는데, 자기 나라도 아닌 쿠바를 해방하겠다며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밀림으로 갔고, 해방된 쿠바에서 중앙은행총재와 장관까지 지냈지만 또 다른 남미 민중을 해방하겠다며 다시 총을 들고 볼리비아 밀림으로 떠나는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사상가이자, 작가였던 장 폴 사르트르의 말처럼 ‘우리 시대 가장 완벽한 인간’이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말로는 민중을 위해서라는 말을 자주하는데, 체 게바라처럼 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책을 안 읽느냐고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아마도 책보다 더 매혹적인 무언가가 많아서가 아닐까요? 어른들은 여가시간을 책 읽기보다 운동이나 여행에 투자하죠. 동네 서점은 문을 닫는데 아웃도어 매장은 계속 호황을 누리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그나마 남는 시간은 인터넷 게임으로 소비하고 있습니다. 책을 읽자는 구호만 외쳐서는 그들을 다시 책 앞으로 불러 모으지 못합니다. 책 읽기를 인터넷 게임보다 더 재미있고 운동이나 여행보다 더 유익한 것으로 만들어야 하겠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도서관에서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구요, ‘한 마을 한 책 읽기’도 그런 시도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우완 내서지역작은도서관협의회 회장./김구연 기자

그의 취미는 시간이 날 때마다 호계리에 있는 목공방에 가는 것이다.

“2년쯤 됐습니다. 어릴 때부터 나무 자르고 못질 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동안은 나 자신한테 투자하는 걸 잊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억눌렸던 욕망을 풀고 있는 셈이죠. 첫해에 기본적인 것을 배워서 도서관에 필요한 물건들을 만들었습니다. 그동안 탁자와 서랍장, 책장 등을 만들었습니다. 올해는 전통식 짜맞춤 기법에 빠져서 대패, 끌. 톱 등 개인 공구를 마구 사놓은 상태입니다. 여건만 된다면 개인 작업장도 마련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앞으로 계획과 꿈은 무엇인지 물었다.

“일단 작은도서관 운동에 더욱 매진해야겠죠. 아직 작은도서관이 시도하지 못했던 ‘사람도서관’을 우리 지역 작은도서관에서 시행해 보고 싶습니다. 그러고는 오십이 되기 전에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릎이 좋지 못해서 힘든 농사는 안 되겠지만, 준비를 많이 해서 내려간다면 풍족하지는 못하더라도 이웃들과 정 나누고, 손에 흙 묻혀가며 마음만은 여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늘그막에는 문학청년의 꿈도 다시 꾸어 볼 수 있으면 좋겠네요(웃음).”

인터뷰하는 동안 도서관 장서를 배경으로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수줍게 웃는 이 회장의 모습에서 문득 익숙한 문구가 떠올랐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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