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콘텐츠 빨리 발굴해 이미지화 시켜야"

경남은 예로부터 제조업과 이를 뒷받침 하는 기계공업이 발달한 지역이다. 반면 한국경제의 12%를 담당하는 IT산업은 대부분 서울에 밀집 돼 있다. 하지만 어느 산업이건 간에 고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IT산업이 밑바탕에 깔려야 한다. 경남의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는 요즘, 지역 IT산업과 인력의 현황을 살펴보고, 미래를 모색하고자 IT와 관련된 지역 인물들을 만나보기로 했다. 그 첫 번째로 박동규 창원대학교 정보통신공학과 교수를 만났다.

<코스모스>를 읽고 공대로

박동규(44) 교수를 만났을 때 첫 인상은 여느 교수와는 결이 달랐다. 꼿꼿함이나 자존심, 혹은 권위 보다는 편안한 인상이었고, 기자가 알아본 결과 실제 그 인상대로 사람들을 편안하게 해 주고 관계가 좋은 편이었다.

박 교수는 부산에서 태어났지만, 실제 자란 곳은 마산 구암동 일대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깡통을 활용해서 도구를 만들거나 라디오 조립을 좋아했다. 어린시절부터 ‘이공계의 싹’이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인생을 결정지은 것은 한 권의 책이었다. 바로 희대의 천문학자였던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였다. 참고로 ‘코스모스’는 최근 다큐멘터리로 재구성 돼 한창 케이블 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영 중이다.

“좁은 세상에서 우주에 대해 얘기하니까 너무 신비로웠죠. 정말 우주탐사선 같은 것을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갈 곳이 없었죠.”

하긴 그랬다. 그가 대학에 간 1988년은 아직 우리나라는 인공위성 하나도 띄우지 못할 때였다. 당연히 관련학과가 전무했다. 그래서 그는 물리학, 전자공학 중에서 진로를 고민하다가 컴퓨터를 하고 싶어서 부산대학교 전자계산학과에 입학했다.

박동규 창원대학교 정보통신공학과 교수./임종금 기자

“물론 저는 대학에 들어갈 때 까지 컴퓨터를 다뤄보지 않았습니다. 뭔가 멋져 보여서 간 겁니다. 대학에 가서야 처음으로 컴퓨터를 만져봤습니다.”

그는 군대를 제대하고 1993년 8월에 부산대학교를 졸업하고, 1994년에 부산대학교 대학원에 진학하고, 1996년에 박사과정으로 들어갔다. 그야말로 평범한 공학도의 전철을 따라가고 있었다.

‘닷컴 회사’가 아니라 대학교수로

그가 대학원 시절 들어간 연구실은 ‘그래픽스 응용연구실’이었다. 당시 지도교수가 조환규 교수였는데 특이한 이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제가 알기로 조환규 교수님이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이었는가? 관련된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게임이나 영상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된 것이 바로 이 교수님 영향 덕분입니다.”

그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동안 세상은 급속히 변화했다. 1995년부터 가정에 PC가 보급되기 시작했고, 1998년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에는 IT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전 세계 닷컴열풍으로 인터넷과 컴퓨터 산업이 급속도로 발전할 시기였다. 그러자 그에게도 여러 차례 기회가 왔다.

“닷컴 회사에서 저에게 와 달라고 얘길 하더군요. 연봉도 많았고, 당시 주식 가치도 상당했습니다.”

-그러면 회사에 들어가셨나요?

“글쎄요. 저는 정말 이상했던 것이 뭘 하는 지 뚜렷한 비전도 없고, 확실한 기술력이 없는 데도 홈페이지 하나로 돈을 엄청나게 끌어들이고 하는 것이 굉장히 어색해 보였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회사로 가지 않고 부산대학교 정보통신연구소 연구교수로 가게 됐습니다.”

그의 예측대로 당시 인터넷 산업은 지나친 거품이었다. 2000년 인터넷 회사 주식들이 일제히 폭락하면서 그것이 증명됐다.

교수의 길을 선택한 그는 2000년 영산대학교 멀티미디어 공학과 전임교원으로 시작해 2002년 4월 창원대학교 정보통신공학과 교수로 오게 됐다. 전공은 게임공학, 3D그래픽, 멀티미디어 콘텐츠 전공이었다.

자료를 보며 설명하고 있는 박동규 교수./임종금 기자

한국과 너무나 다른 미국

그가 창원대학교에 오던 2000년, 기자도 창원대학교 새내기로 입학했다. 당시 창원대에서는 BK21등 국가적 지원을 상당히 받는 대학 중 하나였다.

-교수님이나 정보통신공학과도 지원을 좀 받지 않았습니까?

“창원대는 주력이 메카트로닉스, 기계산업이기 때문에 정보통신 분야는 주된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2007년, 2012년 두 번에 걸친 미국 방문이었다. 그는 2007년 7월부터 1년 동안 미국 펜실베니아 주 피츠버그에 있는 ‘카네기 멜런대학(Carnegie Mellon University)’에 교환교수로 있었으며, 2012년에는 텍사스 주에 있는 ‘텍사스A&M대학’에 방문교수로 있었다. 둘 다 모두 미국 이공계에서도 명문대학이었다.

-미국 대학에 가니까 우리와 뭐가 가장 다르던가요?

“카네기 멜런 대학에 가 보니까 한 학부에 노벨상 수상자를 포함해 교원에 무려 282명이었습니다. 매년 신입생은 140명 정도 입학을 합니다. 그만큼 교원들이 풍부하고 연구 분야가 다양하다는 겁니다. 저는 그곳에서 컴퓨터 애니메이션 물리기반 모델링이라고 해서 로봇이나 사람의 움직임을 시뮬레이션 해서 애니메이션 영화나 3D그래픽에 활용하는 것을 전공했습니다. 그러나 전공 말고도 다양하게 많은 것을 봤습니다. 예를 들면 무인자동차에 대한 것도 많이 접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있을 때 무인자동차 경주대회가 열렸는데 상금이 600만 달러(약 65억 원)입니다. 무인자동차 팀에 스탭이 48명이 있습니다. 무인자동차에는 컴퓨터, 레이더, 사물인식, 인공지능, 통신기술이 집약돼야 합니다.”

카네기 멜런 대학 전경./박동규 교수 제공

-거기에 우리나라 연구자들이 많은가요?

“미국 연구소나 대학에 한국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2000년 거품이 꺼지면서 대학이나 기업에서 관련 인력들을 채용하지 못하니까 미국으로 가서 연구원이 많이 됐습니다. 뛰어난 인력이 미국에서 눌러앉음으로 인해 인재유출이 된 측면이 많습니다.”

-미국에서 한국 연구자들을 좋아합니까?

“되게 좋아하죠. 왜냐하면 충성도가 높고, 약속을 잘 지켜서 신뢰관계가 좋습니다. 한국 연구자에게 맡겨 놓으면 항상 기대한 만큼의 성과는 내는 편입니다. 그래서 계속 재계약이 되는 겁니다. 그러다보니 미국에서 인식이 좋아져 한국 연구자들을 많이 쓰는 편입니다. 한국인 다음으로 중국인과 인도인이 많습니다. 특히 실리콘밸리 최고 경영자 15%가 인도인입니다. 일단 인도인은 영어가 되니까 미국에서 뿌리내리기 쉬워서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카이스트나 포항공대, 서울대 등에서 상당한 연구 인력과 시설들을 갖추지 않았습니까?

“가장 근본적으로 융합이라는 측면이 떨어집니다. 예를 들면 레빈 골란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티스트입니다. 예술대학 교순데 작품을 스마트폰을 사용해서 만들기도 하고,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기도 하는 등 최첨단 기술을 접목시키는 겁니다. 우리나라라면 그게 될까요? 미국의 장점이 자유로운 교류와 사고를 하고 다른 분야의 기술도 두루 섭렵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도 융합이 많이 언급되는데, 융합이라는 것은 그저 이것저것 기웃대는 것을 융합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자기 학문의 깊이를 가지고 이것저것을 포용할 수 있는 것이 융합입니다.”

폐쇄적 독점구조를 깨겠다

그는 피츠버그와 텍사스에 가서 연구실에 앉아만 있지 않았다. 그 도시들의 고민과 해법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왔다.

“피츠버그 하면 과거 철강도시였습니다. 2차 대전 직후 미국 철강산업의 70~80%를 피츠버그가 맡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 철강회사가 있습니까? 포항제철, 신일본제철 등 신흥국에게 다 밀려버렸습니다. 자동차의 메카이던 디트로이트도 파산하고. 미국 북동지역 제조업 기반이 박살이 났습니다. 그래서 뭘 할까 고민하다가 이 사람들이 ‘교통이 좋고 사람이 많이 왕래하니 의료산업을 하자’고 했습니다. UPMC라고 미국의 메디컬센터 중에 가장 큰 곳을 만든 겁니다. 각종 암이나 난치병 치료에 많은 성과를 냈습니다. 다음으로 생각한 것이 로봇산업을 키우자. 피츠버그는 미식축구팀, 프로야구팀, 아이스하키팀이 모두 있는 곳입니다. 스포츠산업을 로봇산업과 접목시켜 관련 연구소가 많고 상당한 고용창출 효과를 발생시켰습니다. 텍사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석유와 곡물생산이 주된 산업입니다. 그야말로 1차 산업이 중심인 곳입니다. 석유재벌이 제가 방문교수로 간 텍사스A&M대학에 미션을 준 겁니다. 신성장동력을 찾아내달라. 그래서 선택한 분야가 게임센터입니다. 거기서 유니티라고 게임만드는 개발도구가 만들어졌습니다. 그쪽 관련 학과 졸업생들은 EA와 같은 게임대기업에 대부분 취업하고, 미국 게임산업을 떠받치고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참 인상깊었습니다. 왜냐하면 석유가 나오면 가만히 앉아서 안주하기 쉬운데 그 돈을 가지고 게임산업에 투자하는 안목이 뛰어난 것입니다.”

피츠버그 시 전경./박동규 교수 제공
피츠버그에 있을 당시 박동규 교수./박동규 교수 제공

-우리나라는 이런 안목들이 부족한 이유가 뭘까요?

“돈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볼까요? 2006년에 제가 스캔 툴이라고 해서 자동차 안을 스캔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했습니다. 이런 프로그램이 있으면 자동차를 튜닝하거나 자기 나름대로 만질 줄 안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사용할 겁니다. 당시에는 앱스토어가 없어서 휴대폰에 이 프로그램을 넣으려면 이동통신사와 협상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두 거절을 하더군요. 왜 그런지 알아보니까 ‘데이터 요금이 많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였습니다. 굉장히 분노를 했습니다. 이동통신사들의 독점이권을 위해서 그런 것들을 막아 버린 겁니다. 제 말고도 이런 사례는 참 많았을 겁니다. 이런 폐쇄성 때문에 국내 IT산업은 장기적인 발전이 안 이뤄지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이대로 ‘IT인프라만 잘 갖춘 IT후진국’으로 몰락하는 걸까요?

“다행히 앱스토어가 생기고 스마트폰 혁명이 시작되면서 새로운 비전이 생겼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보면 유명한 <앵그리 버드>를 만든 업체가 핀란드 무명기업입니다. 노키아가 무너지면서 1만 명을 해고했습니다. 그러나 그 해고된 1만 명이 1만 개의 기업을 만들어 내면서 기술 산업을 다시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재벌 독점기업은 망하도록 내버려둬야 합니다. 공룡이 죽음으로써 작은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활로가 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기업문화가 잘못 됐습니다. 네이버도 벤처로 성장했지만 다른 벤처의 인터넷 사업을 가로채고 방해하면서 자라왔습니다. 카카오톡도 한번 성공하자 폐쇄적인 자기 생태계를 만들어 버립니다. 이런 것이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미국만 하더라도 신생기업에 아마존에 서버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최대한 적은 예산에 서버를 제작해 줍니다. 그리고 작은 기업들에게 대기업이 가진 개발소스를 공개해서 작은 기업이 이를 토대로 살아남으면 2차적으로 대기업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하는 문화가 보편화 됐습니다.”

그 때문일까? 그는 ‘창원시 스마트모바일 앱지원센터’에서 센터장을 맡고 있다. <앵그리 버드>처럼 아이디어가 있는 개발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 창원시의 예산을 받아 운영한다.

-지원센터 예산이 얼마입니까?

“1억 원 입니다. 겉보기에는 적은 돈입니다. 그러나 최대한 좋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고 지역에 있는 기술기업들도 오픈하도록 해서 기술교류도 만들다 보면 독점구도를 조금이라도 깰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창원시 모바일 앱 지원센터 개소식 당시 박동규 교수(왼쪽에서 4번째)./임종금 기자

-롤 모델이 있나요? 핀란드나 미국 얘기는 너무 먼 얘기 같습니다.

“부산에 김준수라고 트리노드 대표가 있습니다. 포코팡이라는 일본 앱스토어 랭킹 1위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부산 구포에 조그마한 사무실을 쓰고 있습니다만 월 매출이 200억 원이 됩니다. 경남에서도 빨리 이런 롤모델들을 만들어야 합니다. 하다못해 부산만 하더라도 항만물류를 IT를 바탕으로 고도화 하는 작업을 제법 오래 해왔습니다. 부산에는 부산모바일앱센터에서 앱 개발을 전담하고 교육기관이 5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경남은 IT컨트롤 타워는 당연히 없고, 하다못해 그나마 있는 콘텐츠도 살리지 못하는 형국입니다.”

-경남에 어떤 콘텐츠가 있다는 말씀인지요.

“경남은 이미지가 딱딱하죠. 젊은 친구들이 여행을 가면 순천 갔다가 바로 부산으로 넘어가고 경주로 갑니다. 경남엔 들르지 않습니다. 볼거리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 친구들이 나이가 들면 또 똑같이 순천으로 부산으로 경주로만 돌 겁니다. 경남이 가진 콘텐츠를 빨리 발굴해서 이미지화 시켜야 합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여러 나라들보다 한국이 답답하고, 한국 안에서도 경남이 더 답답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경남에서 처음으로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앱 개발을 통한 인력양성과 창업을 시켜야 하는 입장이다. 예산이나 시간 또한 넉넉지 않을 것이다. 한정된 자원을 이용해 성과를 낼 자신이 있을까?

“큰 시스템을 만드는 건 무리고, 아이디어를 가지고 게임 분야로 접근하는 전략을 고민 중입니다. 게임 같은 경우에는 언어적 장벽도 덜하고 간단한 메뉴만 가지고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제가 만든 <달려라 봉도사(나꼼수에 나오는 정봉주 전 국회의원을 모델로 만든 게임)>도 국내 앱스토어 랭킹 3~4위를 했고, 다른 국내 개발자가 만든 <코크 쉐이크>라는 게임은 중동에서 1위를 하고 있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아이디어를 잘 활용한다면 충분히 성공을 할 수 있고, 이런 것들이 모이면 대기업이 만든 독점구조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현실은 답답하지만 활로는 충분히 있다는 말이다. 특히 애플 앱스토어, 구글 플레이와 같은 감히 우리나라 대기업이나 통신사들은 손도 대지 못하는 모바일 생태계가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순식간에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만약 좋은 아이디어가 있거나 앱을 개발하는데 도움을 받고 싶으면 홈페이지(cwapp.org)나 전화번호 055) 213-2869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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