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길이란 걸음 뒤에 남겨진 발자국

나는 단숨에 생의 근원에 가 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네팔에 가려고 한 건 지난 여행을 정리하기 위해서였다. 힌두교가 불교를 품고, 불교가 힌두교를 품은 곳. 어쩌면 인도보다 넓은, 그 종교성이라면 내 여행을, 내 생을, 한꺼번에 정리해 줄 것 같았다.
하지만 어디서나 일상은 그저 일상이었다. 복잡한 카트만두의 거리에서, 까마득한 히말라야의 산길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걷고 걷다가 저물 무렵 숙소에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결국, 길이란 걸음 뒤에 남겨진 발자국, 삶의 의미란 생이 지나간 자리에 남겨진 흔적, 하여, 단숨에 완성되는 생은 어디에도 없었다. 삶은 그저 지금, 한 걸음을 내밀고, 다시 한 걸음을 내미는 것이다.

비행기 창으로 저 멀리 구름인가 했더니 히말라야다. 구름을 뚫고 우뚝 솟은 설산들이 긴 띠를 이루고 있다. 비행기에서 봐도 인간의 눈길은 히말라야 전체를 담지 못한다.

오래전 인도 대륙과 중앙아시아 대륙이 부딪히면서 그 사이에 있던 바다가 하늘로 치솟았다. 그 바다를 테티스 해라고 부른다. 테티스는 두 대륙의 고집으로 증발해 버렸다. 아직도 이어지는 두 대륙의 지독한 힘겨루기, 하여, 히말라야는 험난하다. 험난하여 아름답다.

아름다워서 인간을 유혹한다. 그래서 위험하다. 저기 설산 위로 막 피어오른 구름과 설산 아래로 흐르는 강은 테티스의 먼 후손이 아닐까.

/이서후

비행기가 카트만두의 하늘로 들어섰다. 10만 년 전, 이곳 카트만두 계곡은 강물로 가득 찬 호수였다고 한다. 그 강물이 모두 지금의 갠지스 강으로 스며들어, 해발 1300m,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고도에 앉은 수도, 카트만두가 탄생했다. 도시 위로 자욱한 저 안개는 오래전 사라진 호수의 흔적일 것이다.

그 아이를 본 순간 한눈에 한국인임을 알았다. 오랜 여행자들이 으레 그렇듯, 저가 항공을 택했다면, 아마도 우리는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왔을 것이다. 30일짜리 비자를 받으려고 다른 외국인들처럼 긴 줄을 서 있는데, 문득 그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이거 제대로 쓴 건지 좀 봐주실래요?”

그러고는 비자 신청서를 내 눈앞에 들이밀었다. 이번이 두 번째라고 했다. 네팔에 반해 다시 왔다고, 오늘 전에 만났던 네팔 친구를 다시 만날 거라고 했다. 그 아이는 보우다로 간다고 했다. 내가 알기에 그곳은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곳이다.

“보우다? 아, 보다나트? 그 큰 불탑 말이죠? 근데, 그쪽에도 묵을 데가 있어요?”

아마도 친구가 재워줄 거라고, 그 아이는 말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문득 그 아이를 따라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트만두를 찾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공항 앞에서 택시를 타고 여행자 거리인 타멜로 간다. 그 아이가 아니었다면 나도 그랬을 거다. 우리는 같이 택시를 타고 보다나트로 향했다. 물론 뜬금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때로 이런 우발적인 결정이 여행을 더 풍성하게 한다.

택시 안에서 바라본 도시는 온통 먼지가 자욱했다. 그리고 무척 어수선해 보였다. 수백 가닥은 되어 보이는 전선이 엉망으로 매달린 전봇대가 가로수처럼 서 있었다. 그 전선만큼 얽혀 있는 자동차와 사람들. 도대체 저들은 어떤 정신으로 이런 풍경을 견디는 걸까. 하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그저 태평했다.

네팔 수도 카트만두./이서후

어쩌면, 좀 더럽게 살면 어때, 라고 내게 되묻는 것 같기도 했다. 이렇게 엉망이어서, 좀 지저분하게 살아도 된다고, 너처럼 항상 가지런하고 질서정연하게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는 듯했다. 하여 내가 속했던 곳에서 누구나 하나씩은 지니고 있는, 그 사회적 가면을 여기서는 벗어 버리라고 하는 듯했다. 왠지 이 도시에 정이 들 것 같았다.

그 아이는 보다나트의 한 게스트하우스로 나를 데려다 주고는 사라졌다. 아담하고 깔끔한 정원이 있는 곳이었다. 문득 나는 고아처럼 낯선 곳에 남겨졌다. 일단 샤워부터 했다. 샤워실 전등은 저녁처럼 어두웠다. 핫 샤워(Hot Shower) 가능, 이라더니 그냥 찬물이 나왔다.

추위에 이를 악물고 한참 비누칠을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툭 하고 전기가 나갔다. 이런 젠장. 더듬더듬 샤워를 끝내고 나니 한숨이 나왔다. 오자마자 이렇게 당할 줄이야. 여행지의 첫날은 항상 불편하고 어리둥절하다. 더구나 무척 피곤하다. 피곤하면 그냥 만사가 귀찮아진다. 하여 계획이고 뭐고 다 소용없는 일이 된다. 하지만 이때부터 진짜 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눈을 떠보니 주위가 캄캄하다. 언제 잠이 들었을까. 창이 어두운 걸 보니 아직 꼭두새벽이다. 다시 잠들지 못하고 뒤척였다. 한참 뒤 동쪽 하늘이 뿌옇게 밝아왔다. 그리고 짙은 안개 사이로 비치는 아침 햇살. 그 햇살을 쫓아 밖으로 나와 골목을 걸었다. 거리에 아침이 시작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카트만두의 아침은 부지런한 빗자루질로 시작되고 있었다. 휴지 하나 없어도 마치 먼지라도 죄다 쓸어버리겠다는 생각인지 빗자루질을 하는 모양새가 야무지다.

/이서후

어제 저물 무렵 정신없이 그 아이를 따라다녔던 골목이라 아침에 다시 보니 무척 낯설었다. 굽이굽이 골목은 꽤 복잡해서, 내가 다시 숙소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은근 걱정도 됐다. 보다나트라 불리는 불탑의 위치를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불탑 위치를 알고 나면 숙소는 어떻게든 찾아가겠지 싶었다.

불탑은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돌아볼 생각이었다. 저만치 그 유명한 탑이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서도 하얀 탑신에 그려진 부처의 눈이 또렷했다. 그 눈을 마주 보며 주변 골목을 돌아볼 생각으로 걷는데,

어라, 바로 코앞이 탑이다. 출입구도 없었고, 간판도 못 봤고, 입장료를 받는 사람도 없었다. 여행 안내서에는 입장료가 얼마라고까지 분명히 나와 있었다. 내가 이곳 주민들만 다니는 숨겨진 길로 들어와 버린 것일까.

아무튼, 그 아침에도 수많은 사람이 탑돌이를 하고 있었다. 보다나트는 전 세계 불교 문화권을 통틀어 가장 큰 불탑이라고 했다. 멀리 티베트에서도 찾아온다는 불교 성지. 한참을 불탑을 올려다보다, 또 한참을 사람들을 바라보다, 나도 그 인파 속으로 들어가 탑을 돌았다. 탑 주변으로는 온통 상가였다. 기념품 가게, 식당, 카페, 게스트하우스가 몇몇 사찰 건물과 맞물려 탑을 완벽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상가들도 이제 막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연거푸 다섯 바퀴를 돌았다. 사람들은 백 년 전에도 그랬다는 듯, 백 년 후에도 그럴 것이라는 듯, 그렇게 탑을 돌고 있었다. 이들은 오늘 하루를 온통 탑돌이에 바칠 것이다. 어디서건 종교 성지의 성스러움은 성지 자체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그곳을 찾는 사람들의 엄숙하고 절실한 태도에서 나온다. 그 엄숙함을 감당할 길이 없어 나는 탑돌이 행렬을 빠져나왔다. 아직 오전 9시 전이다. 입장료를 받지 않았던 것은 직원들이 9시에 출근하기 때문이었다. 9시가 되기 전에 나는 황급히 숙소로 돌아왔다.

/이서후

숙소에서 아침을 먹고 파슈파티나트 사원으로 향했다. 택시를 타지 않고 걷어갈 생각이었다. 지도를 보니 걸어서 30분 정도 거리였다.

그리고 이렇게 평범한 골목들을 걸어서 지나야 제대로 그 도시를 느낄 수 있다. 몇 번 골목을 헤맨 끝에 물어물어 겨우 방향을 잡았다.

그제야 골목의 일상이 눈에 들어왔다. 양지바른 곳에 앉아 해바라기를 하는 사람들, 친절한 눈빛을 한 주민들이 흘끔흘끔 나를 훔쳐본다. 여행자라면 이런 시선에 익숙해져야 한다. 여행지에서 애초에 낯선 것은 풍경이 아니다. 오히려 그 풍경 속에 서 있는 여행자 자신이다. 풍경 속에서 일상을 사는 이들에게는 바로 여행자가 낯선 존재다. 그런 시선을 겸손하고 부드럽게 받아 내야 한다. 그렇게 풍경에 녹아들어 갈 때야 비로소 온전한 여행자라고 할 수 있다.

히말라야에서 시작한 바그마티 강은 카트만두 계곡을 향해 서쪽으로 흐르다가, 거의 직각을 이루며 남쪽으로 방향을 바꾼다. 이 직각으로 꺾인 부분에 파슈파티나트 사원이 있다. 강을 따라 조금 걸으니 파슈파티로 들어가는 후문이 보였다. 항상 인파가 몰리는 사원이지만, 후문이어서 그런지 오히려 한가해 보였다. 입장료가 1000루피나 했다. 우리 돈으로 거의 만원, 주머니 사정이 빤한 여행자에게는 꽤 큰돈이다.

파슈파티나트는 네팔 힌두교의 대표사원이다. 힌두교 최고의 신, 시바를 섬기는 곳이다. 이 사원의 모든 일은 시바의 이름으로 진행된다. 그래서 멀리 인도에서도 순례자들이 찾아온다. 하지만 일반 여행자들이 비싼 입장료를 내고 이곳을 찾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화장터를 보기 위해서다. 사원 앞으로 흐르는 바그마티 강을 따라 길게 늘어선 화장터. 이를 가트라 부른다. 카트만두 주민이 죽으면 이곳 화장터에서 장례를 치른다. 그리고 시신을 태워 강에 흘려보낸다. 바그마티는 인도의 성스러운 강, 갠지스로 이어진다. 시바의 사원 앞으로 흘려보낸 영혼은 시바의 도시 인도 바라나시에 가 닿는다. 여행자들은 이곳에서 죽음이 가는 길을 본다.

/이서후

화장터는 죽은 이들로 붐볐다. 죽은 이들은 바그마티 강에 발을 씻고 얌전히 장작더미 위에 가서 누웠다. 화염 속에서 그들의 표정은 평온해 보였다. 화장터 건너편, 강의 기슭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장례 의식을 구경하고 있었다. 장례식 도중 오열하며 쓰러지는 아낙을 보며 낄낄대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에게 죽음은 그저 강 저쪽의 일이며 삶은 이쪽에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아주 진지하게 장례 과정을 지켜보는 사람도 보였다. 그들에게 삶과 죽음은 단지 이쪽저쪽의 문제가 아닐 것이다.

/이서후

카트만두의 여행자 거리, 타멜로 가려고 택시를 탔다. 택시 기사는 이름이 라쥬라고 했다. 택시비를 흥정할 때 흔쾌히 결론을 내놓는 그가 맘에 들어 그의 등을 몇 번이고 토닥거렸다. 그도 내가 맘에 드는 눈치였다. 그래서였을까.

“카트만두는 더러워요. (Nepal is dirty.)”

문득 그가 룸미러로 내 눈치를 보며 말했다. 아마 조금 더 발전한 나라에서 온 나를 치켜세워주고 싶었나 보다. 말투에 그의 부끄러움이 묻어 나왔다. 나는 동의하지 않았다.

“아니요. 먼지가 많은 거예요. (No. it’s dusty.) 먼지가 많은 게 더러운 것은 아니에요. (Dusty does not mean dirty.)”

그는 수긍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쩌면 다행이었다. 그저 먼지가 많은 것을 더럽다고 생각하는 그 순수함이. 그는 아직 진짜 더러운 것이 뭔지 모르는 곳에 살고 있다는 거니까.

과연 타멜 거리는 여행자들로 만원이었다. 원래 묵으려 했던 숙소도 만원이었다. 아쉬워 돌아서는데 주인이 길 건너편 호텔로 가보라고 했다. 호텔이라기엔 작고 낡았지만, 방값이 싸고 방이 넓어 그냥 눌러앉았다. 다행히 뜨거운 물은 잘 나왔다.

저녁 무렵 타멜 구경을 나섰다. 처음 온 여행자에게는 꽤 복잡한 곳이었다. 내가 택시를 내린 곳이 어디였는지도 헷갈린다. 헷갈리는 건 길만이 아니었다. 추운 것인지 안 추운 것인지 알 수 없는 날씨, 외로운 건지 아닌지 알 수 없는 내 마음도 헷갈렸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어느 곳이나 그저 개처럼 씩 웃으며 돌아다니면 그만이었다.

/이서후

타멜 거리에 해가 지고 있었다. 어둠을 든든한 배경으로 두고도 거리의 네온사인들은 힘에 부친 듯 어두웠다. 어쩌면 내가 그동안 지나치게 환한 밤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밤은 원래 어두운 것이라고, 타멜 거리가 내게 말하는 듯했다. 하여 밤은 거리를 휘적휘적 돌아다니기보다, 자기 속으로 침잠하는 시간이라고, 외로움을 키우는 시간이라고, 일러주는 듯했다. 더듬더듬 숙소로 돌아가는 길, 어둠 속으로 공원의 새들이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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