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돛으로, 바람의 힘만으로 움직이는 배들은 바람을 등져야 앞으로 나아가잖아요? 그런데 요트는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보고 가더라고요. 신기했죠. 그때, 그 느낌에 매료돼 요트에 관심을 두게 됐고, 또 배우다 보니 지금 여기까지 왔네요."

통영에서 열리는 이순신장군배 국제요트대회 준비로 분주한 노성진(41) 경남요트협회 수석부회장을 만난 건 지난 11일 통영 도남동 해양스포츠센터 2층에서였다. 경남도 산하 체육단체가 모두 창원에 있지만 유일하게 요트협회만 통영에 있다. 통영이 경남 요트의 메카라는 점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셈이다. 인사를 나누자마자 프린트물을 건네는 노 부회장은 숨 쉴 틈도 없이 11월에 통영 앞바다에서 열리는 이순신장군배 국제요트대회를 소개하느라 바쁘다. 평소 요트에 대한 열정과 이번 대회를 준비하는 책임자로서 열의가 느껴진다. 요트대회에 대한 이야기는 좀 미루고 노 부회장 자신의 이야기부터 듣기로 했다.

노성진 경남요트협회 수석부회장.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노성진 경남요트협회 수석부회장.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바람을 거슬러 가는 요트 매력에 '풍덩'

노 부회장이 요트를 처음 접한 건 7년쯤 됐단다. "지금 해양소년단 경기남부 김태원 연맹장이 당시엔 부회장이었는데 요트에 타고 있다가 저를 보고는 한 번 배워보면 어떻겠냐고 하더라고요. 맞바람을 맞는데도 전진하는 요트가 저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기에 앞뒤 생각할 것도 없이 바로 배우겠다고 했죠. 통영에서는 시험을 치지 않고 40시간만 강습을 받으면 면허를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때 교육을 받아 면허를 따고 본격적으로 요트를 타게 됐죠."

노 부회장은 경남요트협회에 들어오기 전부터 사회단체에 가입해 다양한 봉사활동을 했다. 이런 노 부회장을 지켜본 요트협회 관련 인사들이 협회에 들어와 도와주면 좋지 않겠느냐고 해 돕다 보니 자연스레 지금의 수석부회장 직함까지 받게 됐다. "제가 요트협회 중책을 맡으면서 중점적으로 추진한 것이 유소년 육성입니다. 통영시요트협회와 함께 초·중학생 등 유소년 육성에 심혈을 기울이다 보니 작년 6월 유소년 요트대회에서 종목 우승도 하고, 종합 2위를 차지하는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현재 도내 시·군협회에서 유소년 팀이 있는 곳은 통영밖에 없단다.

이런 결과는 협회의 전폭적인 지원도 한 몫을 했다. 협회는 유소년팀 기량 향상을 위해 지난해 말레이시아 랑카위로 50일 동안 전지훈련을 다녀오기도 했다. 랑카위는 바람이 많이 불어 요트 실력을 기르는 데 아주 좋은 곳이란다. 당시 감독과 유소년 20명이 갔는데, 예산이 넉넉지 않아서 모두 힘든 생활을 했다고. 하지만, 이후 실력이 일취월장해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다고 했다. "격려차 랑카위를 방문했는데 아이들이 참 힘들어하더라고요. 그래서 잠시 휴식기를 가지며 함께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녔더니 아이들이 활력을 되찾더군요. 이런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습니다. 저도 그 덕분에 랑카위라는 곳을 가 보기도 하고 참 좋았죠."

 

봉사하는 일, 오히려 도움받고 많이 배워

수석부회장이라고 해도 생업을 제쳐놓고 협회 일을 할 수는 없을 터다. 어떤 일을 하기에 자유롭게 요트 일에 매달릴 수 있는 걸까?

"가까운 곳에 제가 운영하는 호텔이 있습니다. 지난 2010년 8월에 건물을 지어 오픈했습니다. 당시는 조선경기도 좋은데다 관광객도 많아 잘 됐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통

영 인기가 예전 같지 않은데다 경기도 악화하다 보니 어렵네요. 물론 지금은 어느 자치단체 할 것 없이 관광객을 잡고자 온갖 아이디어를 내놓다 보니 관광객이 분산된 측면이 있겠죠. 그래서 제 사업도 번창하고, 통영의 관광객 유치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요트대회를 더 착실히 준비하려 합니다." 그의 말에서 통영 사랑이 엿보인다.

노 부회장은 대학 다니느라 통영을 잠시 떠난 것 외에는 평생(?)을 이곳에서 살았다고 했다.

"외동아들로 일찍 결혼해 부모님 모시고 아들 셋과 함께 삽니다. 부모님은 통영사람은 아니지만 거의 50년을 이곳에서 살아 이젠 통영사람이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겁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에게서 주위에 어려운 사람들이 있는지 둘러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라 자연스럽게 봉사활동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그의 본격적인 사회활동은 청년회의소에 가입하면서부터다. 2006년엔 JC회장도 역임했으며, 이후 경남요트협회와 통영시새마을직공장협의회 등 많은 단체에 가입했단다.

"통영시새마을직공장협의회는 개인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차상위계층 가구 초등학교 고학년 20명 정도를 데리고 나라사랑 국토사랑 프로그램 일환으로 독도를 방문한 적이 있었습니다. 2박 3일 일정으로 갔는데 다행히 독도 접안이 가능하더라고요. 아이들이 너무 좋아하기에 회원들과 이 사업을 계속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다음해 다시 독도에 가려고 했는데 2박 3일이 아이들에게 다소 무리여서 일정을 줄여 1박 2일로 판문점, 통일전망대, 김구기념관 등을 데리고 다녔습니다. 이런 사업들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참 의미를 느끼게 됐습니다."

현재 법무부 법사랑위원회 통영지부 운영처장을 맡고 있는 그는 매년 법사랑위 차원서 600명 정도의 어르신들 초대해 의료 봉사를 하는가 하면, 단체에 가입할 여력은 안되지만 그래도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하는 주위  젊은 친구들 20명 정도를 모아 만원씩 회비를 내 주위 어려운 이웃을 보살피는 일도 한다. 노 부회장은 "사실 주위 어려운 이웃을 돕는다고 하지만 이런 활동을 통해 많은 사람을 알게 되고, 또 오히려 제가 도움도 많이 받고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아직 젊은 나이이기에 많이 성장하고 배우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성공가능성 큰 통영 유소년 경력단절 안타까워

대화를 다시 요트 이야기로 돌렸다. 협회 일을 하면서 힘들거나 황당했던 일은 없었을까?

"지난해 서울에서 이순신장군배 요트대회를 각국 대사관 직원들에게 소개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2018년 경상남도 대표 국제경기대회로 선정돼 제가 짧은 영어실력으로 소개를 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강의하는 게 서툴다 보니 비전문가라는 사실을 외국인들도 알더군요. 각 지자체에서 행사 등을 홍보할 때면 많은 예산을 들여 전문 스피치 강사로부터 지도를 받기도 하는데, 저희는 대충 준비해 설명하면 되는 줄 알았죠. 나중에 끝나고 나니 오히려 비전문가여서 더 잘했다며 각국 대사들이 저를 격려해 주더군요. 그러면서 통영이 어디에 있느냐, 부산에서 가깝느냐 등 통영에 꼭 놀러 가겠노라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노 부회장은 어려운 이야기를 꺼낸다. 요트를 타는 통영 유소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가 가장 문제라는 것이다. "비인기 종목이라 대학에서는 요트를 하는 곳이 거의 없어 학생들의 경력단절 문제가 생깁니다. 아시아 대회에서 메달을 따고 하지만 대학마다 동호회만 있을 뿐 정식으로 팀을 구성한 곳이 없어 통영 유소년들이 갈 곳이 없습니다."

노 부회장에 따르면 인근 부산에는 부경대에 요트팀이 있지만 부산 학생들 차지라는 것이다. 부산에서는 유소년들이 개인 강습을 통해 요트를 배우고, 실력이 좋은 학생은 모두 부경대로 가게 되지만 통영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통영에서도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지만 아직은 어려운 실정입니다. 비록 언제일지 모르지만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종목이거든요. 초등학생인데 누가 봐도 정말 잘 타는 선수가 있습니다. 이런 친구들은 조금만 옆에서 지도해주면 성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더구나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 정식 종목 아닙니까? 그럼에도, 이를 뒷받침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네요."

 

한산대첩 역사의 현장서 열리는 국제요트대회

자연스레 이야기는 이순신장군배 국제요트대회로 이어졌다. 올해로 13회째인 이 대회는 사전경기로 오는 오는 10월 25~27일 통영 죽림만에서 40척이 참가해 유소년 랭킹전과 장애인 경기가 펼쳐진다. 이어 주경기는 11월 6∼10일 J24 클래스와 ORC 1~3클래스가 통영 화도 앞 해상과 한산해역, 비진도 외해에서 국내최대 60척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다. 이 밖에도 청소년 RC요트대회가 11월 9·10일 양일간 트라이애슬론 광장에서 30척이 참가한 가운데 펼쳐진다. 경남도와 통영시가 주최하는데 조직위와 국내외 모든 선수·임원 등이 한산도 제승당을 찾아 이순신 장군을 참배하고 출정식을 하는 것으로 대회는 시작된다.

이순신장군배 국제요트대회 이야기가 나오자 노 부회장의 목소리가 올라간다. "통영 앞바다는 세계 4대 해전사에 빛나는 한산대첩이 펼쳐진 역사의 현장입니다. 이런 의미 있는 곳에서 열리는 이순신장군배 국제요트대회는 중국 차이나컵, 태국 킹스컵과 함께 아시아 3대 요트대회로 불리는 국내 최고 요트대회죠. 13개국에서 130여 척, 700여 명이 참가하게 됩니다."

그의 이야기는 끊길 줄 몰랐다. "제가 수석부회장 맡으면서 기존 주경기에만 100척 이상 배가 출전했던 것을 60척으로 줄였습니다. 안전상의 이유죠. ORC클래스 요트를 많이 줄였습니다." 자연경관이 워낙 빼어난 통영을 알리려면 많은 요트를 출전시키는 게 좋겠지만 양식 어장과 정기여객선, 어선이 많이 다녀 안전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단다.

대신 올해는 이전 대회 때 하지 않았던 사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마린 페스티벌을 새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요트대회에 협회사람이나 선수, 임원들, 인근 주민 등은 알고 참여하지만 일반 시민들이 함께할 수 없다면 대회를 치르는 의미가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페스티벌을 열어 가수를 초청해 분위기를 돋우면 대회 홍보나 관광객 유치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가뜩이나 어려운 지역사회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죠. 여름 휴가철과 비교해 10, 11월은 관광 비수기인데 마린 페스티벌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오면 내년엔 더 확대할 생각입니다."

 

'요트 도시' 통영 시민과 함께 키우고 싶어

협회 수석부회장으로서 야심(?)도 드러냈다. "개인적으로 회장을 맡고 싶은 생각도 있습니다. 통영사람으로서 경남요트협회가 통영에 있는 만큼 요트 도시 통영을 시민과 함께 키워보고 싶은 것이죠." 아시아 3대 요트대회로서가 아니라 '통영 주민에 의한, 통영 주민을 위한 멋진 요트대회를 만들어 요트인이라면 누구든지 참가하고 싶은 생각이 들게끔 하고 싶다'는 것이다.

"지난 8월 경남도지사배 전국요트대회가 통영에서 열렸습니다. 매물도로 가는 코스로 한 번, 통영으로 오는 코스로 한 번 진행됐는데 대회 중 매물도에서 하루 숙박을 했습니다. 매물도 물양장 앞에 테이블을 펴 행사를 진행하고, 섬 주민들이 잡은 싱싱한 해산물도 사 먹고, 민박을 하니 주민들이 반겼습니다. 당연히 선수들도 좋아할 수밖에요."

그는 섬에 조성하는 요트 계류장에 대한 생각도 전했다. "매물도에 시험적으로 요트 계류장을 조성했는데 주변 인식이 좋지 않았습니다. 일반 어선을 댈 곳도 부족한데 무슨 요트계류장이냐는 것이죠. 그런데 이번 행사를 통해 주민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섬 주민과 전혀 상관없다고 여겼던 시설이 주민 소득과 연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죠. 이참에 시가 다른 섬에도 요트 계류장을 더 많이 설치하면 어떨까 싶습니다. 어차피 요트 인구는 늘어날 것이고, 통영에는 요트 인프라를 잘 갖춘 아름다운 섬이 많다고 소문이 나면 전국 요트인들이 찾는 새로운 관광상품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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