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요리를 먹는 법…‘달팽이처럼 천천히’

“라 루마까는 이탈리아어로 달팽이란 뜻으로 좀 더 느긋하게 맛을 음미하고, 즐겁게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슬로우 푸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정민철(32) 주방장이 운영하고 있는 이탈리안 요리 전문점 ‘라 루마까(la Lumaca)’ 소개문이다.

호텔 양식부 인턴으로 시작했지만…

라 루마까 사장이자 주방을 책임지고 있는 오너 셰프 정민철 씨는 마산에서 태어났다. 마산대학교 조리학과를 졸업한 정 씨는 스무 세 살에 서울 인터컨티넨탈호텔 양식부에서 인턴으로 첫발을 내딛었다.

“나름 열심히 해서 실력으로 호텔 양식부에 들어갔는데 1년 남짓 있다가 관뒀어요. 관두고 싶어서가 아니라 구조 조정인가를 하는데 연고도 없지, 나이도 제일 어리니 눈치를 주더군요.”

/김구연 기자

정민철 씨는 이후 서울 청담동 이탈리안 레스토랑 ‘안나비니’, 반포동 서래마을 프렌치 레스토랑 ‘라싸브어’ 등에서 일했다.

“서울에서는 나름 이름 있는 곳이었는데,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듯 다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주방 서열 두 번째인 수 셰프까지 차고 올라갔어요.”

민철 씨는 비록 한국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배웠지만 프랑스 요리보다 이탈리아 요리가 더 재밌고 잘 맞았다. 이탈리아에 가겠다는 생각에 아끼고 아껴 돈을 모았다.

스물여덟 살이 되던 해 그는 배낭을 짊어지고 홀연히 이탈리아로 떠났다. 90여 일 동안 현지 요리를 맛보고 식재료 탐구에 몰두했다.

“한정된 경비에 잠보다 먹을 걸 택했죠. 먹어봐야 물어보고 맛을 느낄 수 있으니까요. 나중에 30일 정도는 역이나 공원에서 노숙을 했어요.”

먹는데 사활을 걸다보니 누워 잠 잘 곳은 중요하지 않았다. 원재료를 직접 제조하는 치즈 농가, 발사믹 제조 농가를 찾아가 일손도 돕고 며칠 씩 숙식도 해결하곤 했다.

“이탈리아에 갈 때 오픈 티켓을 끊어서 돌아오는 비행기는 예약도 하지 않았어요. 취업 비자를 내려고 한국에 있을 때 경력증명서를 공증까지 다 받아서 챙겨가 내밀었지만 보기 좋게 튕겼죠.”

정 씨는 한국에 돌아와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탈리아에 유학을 가서 요리 공부를 더 할 것인지, 자그마한 가게라도 열어 볼 것인지 말이다.

“대학을 졸업해서도 호텔 주방에 들어가는 건 일종의 로망이었어요. 생각해보면 내가 잘하는 것 또는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호텔 주방으로 가야 그나마 알아주는 것, 남들 눈에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했죠. 이탈리아에 유학길에 오를까 잠시 고민했지만 유학이 꼭 답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류 호텔 주방이나 유학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스스로 책임지는 요리를 할 정도의 실력은 갖췄다는 자신감을 갖기로 마음먹고는 지난 2011년 8월 라 루마까를 열었다.

손님만큼 중요한 직원들의 점심

라 루마까에는 2인용 테이블 3개와 4인용 테이블 5개가 있다. 총 테이블 8개. 적은 수 같지만 요리사 처지에서는 이도 많다.

정민철 주방장은 “손님과 대화라도 한 번 제대로 하려면 테이블 5개가 적당한 것 같다”고 했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점심 시간 내내 다섯 팀 정도가 왔다 가면 많은 편이었다. 그러던 주방을 이제는 어느덧 둘이서 보게 됐다.

/김구연 기자

“손님이 적을 때는 혼자서 오븐에 쿠키도 직접 구워내고 여유가 있었는데, 지금은 메인 요리하기에 바빠요. 처음 생각했던 대로 하고 있나 문득문득 돌아보게 돼요.”

가게는 자연스럽게 예약제로 운영됐다. 찾아와도 자리가 없으니 손님들이 스스로 전화해서 예약하기 시작했다.

“가게 제일 앞쪽 2인용 한 테이블은 예약을 받지 않고 늘 남겨둡니다. 예약제를 원칙으로 하려한 게 아닌데, 기다리던 손님들이 예약을 해놓고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어요. 주택가 근처에 지리적으로 눈에 띄는 곳이 아닌데 찾는 손님들이 찾아줘서 너무 기쁘고 고마웠어요.”

점심 후 휴식 시간 3시간. 라 루마까는 오후 2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 사이에는 요리를 맛볼 수 없다. ‘가게 문은 버젓이 열려 있는데 손님을 왜 안 받아’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3시간 중 1시간은 이들도 자신들을 위해 요리하고 늦은 점심을 즐긴다. 나머지 2시간은 저녁 예약 손님을 맞으려면 재료 손질과 준비에 빠듯하다.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작 자기 밥은 종종 시켜먹는 경우가 있죠. 오늘 점심은 뭐 해먹지 하는 게 우리끼리 매일 하는 생각이에요.”

주방을 맡은 두 사람과 홀을 맡은 두 사람. 이들 사이는 격의 없이 편안해 보여 더없이 좋았다. 좋은 가게의 분위기는 실내 인테리어나 장식된 소품보다 요리를 만들어 내는 사람들 사이에서 스멀스멀 풍기는 에너지에서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요리로 맛보는 이탈리아

젊은 에너지가 담긴 스파게티, 스테이크, 샐러드 3가지 요리를 맛봤다.

먼저 ‘왕새우를 넣은 깔끔한 오일 스파게티’ 차례다. 빛깔은 마치 토마토소스 스파게티처럼 빨갛지만 맛은 엄연히 다르다.

오일 스파게티와 궁합이 좋은 재료로는 단연 해산물이 으뜸이다. 느끼할 것 같은 스파게티면은 새우에서 나는 매콤한 맛과 토마토를 씹으면 터져 나오는 새콤한 맛이 어우러졌다. 한 접시가 뚝딱 비워졌다.

손가락 3개 만한 왕새우 1개는 머리통째, 껍질째 들어가 있고, 나머지 손가락 1개 만한 새우 3개는 꼬리 부분만 남긴 채 머리와 몸통 껍질이 손질돼 있다.

정민철 주방장은 “육류에는 양파, 해산물에는 마늘이라는 원칙이 있다. 또 육류에 쓰는 허브는 로즈마리·라임, 해산물에 쓰는 허브는 바질이라는 나름의 규칙이 있다”고 설명했다.

해산물이 들어간 파스타에는 조개 육수를, 고기가 들어간 파스타에는 닭 육수나 소고기 육수를 쓴다.

다음으로 ‘포메리버섯크림소스를 이용한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 이름도 길다. 메뉴 이름을 보면 들어간 재료를 알 수 있도록 최대한 상세히 길게 쓰는 게 라 루마까의 특징이다.

/김구연 기자

메뉴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팬 위에 달군 크림에 버섯과 씨겨자(포메리)를 넣어 익힌 소스가 따로 곁들여진 스테이크 요리다.

라 루마까 소고기는 소금·통후추만 약간 곁들여 센불에 구워내 육즙 본연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일반적인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만날 수 있는 갈색 양념통에 푹 빠졌다 나온 듯한 스테이크와는 다르다.

/김구연 기자

라 루마까에서는 김해 도축장에서 가져오는 한우를 쓴다. 두 덩어리를 합쳐 180g 정량으로 손질하는 것도 정 씨가 맡는다.

그는 “소고기 안심구이는 두 가지 종류인데 ‘통후추의 소 안심구이’ 메뉴는 곁들여 나오는 소스가 별도로 없다. 말 그대로 잘 익혀 나온 안심을 맛볼 수 있는데 고기만 먹는 데 익숙하지 않거나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는 손님을 위해 크림소스에 익힌 버섯을 함께 내놓는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허브와 치즈로 맛을 낸 야생버섯구이 샐러드’는 불에 살짝 익힌 새송이 버섯과 갖가지 초록 채소 위에 올리브 오일, 바질, 호두, 잣, 꿀로 만든 드레싱과 발사믹 소스가 뿌려져 맛을 낸다.

“버섯은 창원 북면에 있는 농장에서 직거래 하고, 나머지 채소는 창원시청 옆 농협 경남본부 앞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지역 농산물 장터에서 사와요. 가게에서 스쿠터를 타면 5분 거리라 편합니다. 로즈마리와 바질과 같은 허브 종류는 겨울 빼고는 옥상에서 키웁니다.”

상큼한 드레싱 맛을 더 즐기고 싶다면 취향에 따라 마지막에 뿌려지는 치즈를 빼는 것도 좋겠다.

창원 신월동 주택가에 위치한 라 루마까에서는 아쉽게도 와인을 곁들일 수가 없다.

“법적으로 주류 판매를 금지하는 주택가 주변 구역이라 손님들의 요구에도 와인을 구비할 수가 없었죠. 맛있는 요리에 와인 한 잔 함께 즐길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또 냅니다. 이번에는 테이블 5개 원칙을 꼭 지키려구요.”

4월에서 5월이면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에 와인도 마실 수 있고 새로운 메뉴를 장착한 라 루마까 2호점이 생긴다. 2호점 주방장은 정민철 씨와 함께 일하고 있는 유경재(28) 씨가 맡을 예정이다.  

<메뉴 및 위치>
◇메뉴:

△왕새우를 넣은 깔끔한 오일 스파게티 1만 6000원 △신선한 조개와 백포도주 소스의 스파게티 1만 2000원 △온천달걀을 넣은 베이컨 크림스파게티 1만 3000원 △닭가슴살을 곁들인 훈제치즈 스파게티 1만 3000원 △스페인산 초리스와 병아리콩을 넣은 로제소스의 펜네파스타 1만 4000원 △후레쉬 모짜렐라 치즈를 넣은 토마토 스파게티 1만 2000원 △포메리버섯크림소스를 이용한 소고기 안심 스테이크 3만 3000원 △통후추의 소 안심구이 3만 3000원 △허브와 치즈로 맛을 낸 야생버섯구이 샐러드 1만 원

△구운 빵과 매콤한 닭구이 샐러드 1만 원.

◇영업 시간: 점심 오전 11시 50분 ~오후 2시 30분, 저녁 오후 5시 30분~오후 9시 30분(매주 월요일 휴무).

◇위치: 창원시 의창구 상남로 200(신월동).

◇전화: 070-7868-7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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