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누비며 배달하는 ‘어시장의 꽃’

“자, 물건 갑니다 물건! 비켜주이소~!”

시장 통로에서 자기 키 만큼 물건을 잰 카트기를 밀고 가는 젊은 여자를 만났다. 사람들 사이로 진군하듯이 가는 그녀를 보고는 허겁지겁 뒤따라 잡았다.

“지금 손님이 주문한 것을 차에 실어주려고 가져가는 길이라예. 저기 돌아가면 부일상회라고 나와예. 거기가 저희 가게니 거기로 오세요.”

김민서 씨. 서른이 갓 되었을 때 어머니가 해오는 건어물상회에서 일을 시작해 이제 7년차였다. 어머니 서재선 아지매는 30년 동안 건어물 상회를 했다.

“우리 집은 전국구라예. 택배로 어디든지 보내거든요. 가까이에서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시장 밖 도로나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기 때문에 카트기에 가져가서 직접 차에 실어다 드려예. 그라모는 손님들이 좋아하니까요.”

민서 씨는 이 정도 서비스는 이미 몸에 배여 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다.

   

부일상회에서는 모든 건어물을 다루고 있다. 이 중 건다시마는 매년 5월초 완도에서 사와서 온 가족이 점포 2층에 둘러앉아 직접 가공하고 포장을 한다고 했다.

마침 재선 아지매가 종이상자를 뜯어 민서 씨에게 보인다. 손으로 상자 안 물건을 뒤적이며 이걸 팔아야 하나를 의논하는 듯했다.

“이걸 팔면 안 되지. 지금은 괜찮은데 며칠 있으면 곰팡이가 필 것 같은데….”

민서 씨는 펄쩍 뛰었다. 단호했다.

“총알꼴두기인데, 좀 하자가 있네예. 내가 먹을 수 있는 것을 팔아야지요. 사람을 속이지 않아야 하는 게 장사 기본입니더.”

부일상회는 건어물 중매인으로 시작했다. 당시는 건어물 중매인이 50명 정도였다. 민서 씨 어머니 서재선 아지매는 스물여덟이었다.

“처음 장사 시작할 당시는 마산이 생산지와 가깝고 어시장은 수협도 근처에 있고, 전국적으로 운송할 수 있는 위치니까 장사는 무척 잘 되었습니더. 다른 일을 하다가 이거 시작하면서 의식주해결을 해나갔지예. 그때는 어시장이 마산의 금전, 재력이 제일 많이 모이는 곳이었어요.”

재선 아지매는 민서 씨가 일을 제법 익히자 이제는 점포 운영을 딸에게 맡겨둔 듯했다.

“일을 참 잘 하지예. 다음에 우리가 못하면 지가 도맡아 해야지예.”
요즘 변화된 소비자 계층이나 기호에는 오래 동안 장사를 해온 자신보다 오히려 젊은 딸이 잘 맞춰나가는 것 같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권영란 기자

재선 아지매는 딸이 장사 하는 걸 넉넉하게 지켜보았다.

시집도 안 가고 장사만 하면 어쩌냐고 했더니 민서 씨는 “우리 오빠야 있어예. 어시장에서 일하는데예”라고 수줍은 웃음을 흘리며 말한다. 씩씩하고 활달하고 일도 당차게 하는 민서 씨가 참 예뻐 보인다고 하자 “어시장의 꽃이라고 해주이소”라고 말해놓고 큰소리로 또 웃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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