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봉 열풍이다. 명작이라 할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와 <택시 드라이버>(1989), 국내 영화 부흥의 시작을 알린 <쉬리>(1999)와 <공동경비구역 JSA>(2000), 그리고 액션 영화의 걸작 <존윅>(2015)까지. 게다가 <자전거를 탄 소년>(2012)와 <위플래쉬>(2015)도 다시 돌아온다니 '벌써' 싶어 민망하기까지 할 지경이다. 이러한 추세는 일본 영화에 더욱 도드라진다. 2017년에 개봉했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가 곧 스크린으로 복귀하며, <스윙걸즈>(2006)의 좌충우돌 소녀들도 다시 만난다. 이미 여러 차례라 지겨울 법도 한 <러브레터> 역시 탄생 30주년을 맞아 세상을 떠난 여주인공(故 나카야마 미호)을 향한 추모와 함께 다시 찾아왔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원인이라면 먼저 주제의 고갈을 지적할 수 있겠지만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변명임을 알 수 있다. 예술이라는 소재를 사용, 감동이라는 현상을 통해 전달하려는 주제는 엄밀하게 본다면 이미 그리 다양하지 않았다. 사랑과 우정, 삶과 죽음을 뺀다면 뭐가 있나 싶을 정도다. 그러고 보면 예술의 역사는 당연하고도 단순한 주제를 위해 다양한 소재와 상상력으로 새로움을 추구한 여정이었다. 그렇다면 ,이제와 상상력 고갈의 시대를 맞이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세상이 이래서는 당분간 회복이 힘들어 보인다. 하니 과거의 명작들을 돌아볼 밖에 없는 것으로 그렇다면 맞이할 과제는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다.
이러한 가운데 이번에 소개할 영화 <굿바이>는 진정 보석 같은 작품일 것으로, 2009년 81회 아카데미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음에도 국내 개봉 당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2023년, 다시금 우리 곁으로 돌아와 따스한 인사를 건네었다. 영문 원제는 'Departures'(출발·떠남)이다
영화가 시작되자 익숙한 클래식의 대표 선율이 흐르니,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의 4악장이다. 단원들이 호흡을 맞춰가는 가운데 딱 봐도 착해 보이는 주인공 다이고의 얼굴, 그는 첼로를 연주 중이다. 하지만, 리허설이 끝나자 악단의 해체가 결정되었고 변변치 않던 수입마저 끊기고 말았다. 그렇게 하루아침에 백수가 되어버린 다이고. 성품 고운 아내는 애써 별일 아니라며 위로하지만, 얼굴에 스민 근심을 온전히 감출 수는 없다. 그렇게 그들은 한적한 시골의 고향마을로 내려왔고, 아내의 수입으로 살아가기엔 염치가 없기에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발견한 "여행가이드" 구인 광고. 나이 무관에 고수익까지 보장된다니 망설일 이유가 없다. 그렇게 면접이 시작되었고 다이고는 일사천리 합격에다가 월급까지 미리 손에 쥐었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상황에 당황스럽던 찰나 이곳이 하는 일을 알곤 아연하고 말았으니 바로 죽은 이들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염습과 납관이었던 것이다. '여행을 안내하는 곳이라더니…'. 이제 일을 알았으니 어찌해야 할까? 베테랑 염습사 '이쿠에이'는 다이고의 얼굴로부터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하루하루 고인의 마지막을 배웅하는 날들이 지났다. 떠난 모두가 각자만의 사연을 지녔고 보내는 이들의 방식도 저마다 달랐다. 치부를 끝까지 숨겨 떠나는 길이 부끄럽지 않도록 애쓰는 이들, 돌아가신 할머니의 육신에 학생들에게 유행하는 양말을 신기며 마치 살아 계실 적처럼 장난을 치는 손녀들도 있었다. 하지만, 같았던 것은 고인을 향한 사랑이 진실했으며 앞으로도 그리워하리라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 번의 배웅을 마치고 돌아온 사무실, 모두가 지친 듯 생각에 잠겼고 다이고는 자신의 악기인 첼로를 연주한다. 이쿠에이와 여직원의 권유에 의한 것이었지만 진심이 담겼고, 이때 세상 모든 이를 위로하는 묵직한 선율이 주위를 휘돌자 눈물이 흐른다.
바로 프랑스의 작곡가 '샤를 구노'(Charles Gounod, 1818-1893)의 '아베 마리아'로 슈베르트의 것과 더불어 양대 '아베 마리아'로 칭송받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유명한 곡인 것이다. 그렇다 보니 많은 영화에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역사 속 여러 거룩한 순간을 새겼지만, 그중 2014년 8월15일 대전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성모 승천 대축일 미사'에서의 장면을 잊을 수 없다.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집전했으며 미사가 끝난 후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생존 학생들을 만나 위로하고 추모했었다. 그리고 이어진 특별 공연, 자신이 독실한 천주교 신자라며, 교황님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 소원이라 했던 소프라노 조수미 씨가 등장하여 특별 공연을 펼쳤다. 그리고 이때 그녀가 목소리로 전했던 위로의 메시지가 바로 구노의 아베 마리아였던 것이다.
다음으로 떠오르는 것은 한 음악가의 이름으로 바로 '바비 맥퍼린'이다. 미국의 보컬리스트이자 싱어송라이터이면서 클래식 지휘자로서 무대에 서기도 하였으니, 음악적으로 만능인데다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천의 목소리를 지녀 현존하는 최고의 아카펠라 가수로 불리며, 10여 차례의 그래미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모르겠다면 1988년 크게 히트한 'Don't Worry, Be Happy'의 모든 섹션을 오직 그의 목소리로만 소화한 가수라면 어떤가? 그런 그는 출현하는 모든 공연장에서 구노의 '아베 마리아'로 장관을 연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자신이 목소리 반주에 맞춰 관객들이 다 같이 노래하는 것으로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제 1권'의 첫 번째 전주곡을 바탕으로 선율을 입힌 곡이기에 가능한 연출인 것이다.
졸업식이면 으레 등장하는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이 있으니, 졸업은 마지막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가족 모두가 나서 축복으로 새로운 길을 응원한다.
죽음도 그런 것일까? 미지의 곳으로 출발하는 이를 미소로 배웅하려 그 자리에 모두 모이는 것일까? 원제인 '출발·떠남'이 '굿바이'라는 제목으로 바뀐 것이 아쉬운 것은 영화가 이야기하려는 지점과 동떨어져, 철저히 남은 자 중심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이 새로운 출발임을 믿지 않는 것일 게로, 그렇게 우리는 축복 없이 쉽게도 떠나보낸다.
※필자 소개
심광도 음악평론가(영화와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편안한 쉼터, 뮤직파라디소를 지키는 뮤파지기입니다. 문화가 물질을 이기는 세상을 꿈꿉니다.)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