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모나리자다. 영화 <이퀄리브리엄>에서 감정이 죄악인 세상에서 이를 유발하는 예술품 중 대표인 양 불태워지더니 이번 영화에서도 불에 의해 소멸한다. <이퀄리브리엄>에서는 그나마 인류가 창조한 최고의 예술로의 대표성이라도 입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 소멸 과정이 어이없고도 허망하며 영화가 전하려는 메시지와도 닿았다. 영화 <나이브스 아웃>은 추리영화다. 하니 분명한 사건이 벌어질 것이고 영특한 탐정이 이를 해결해 나갈 것이다. 그리고 '글래스 어니언'(유리 양파)이란 부제도 달렸다. 이런 경우엔 힌트나 메시지인 경우가 많다. 모나리자와 글래스 어니언. 과연 이 둘은 어떤 의미로 영화에서 작용할 것인가?
주지사 클레어가 인터뷰를 준비하던 중 나무로 만들어진 상자를 배송받는다. 그녀뿐만이 아니다. 그녀를 포함하여 네 명의 친구가 수수께끼에 싸인 상자를 받아든다. 화려한 시기를 지나 이제 시들어 버린 전 모델 버디, 알파 소속의 과학자 라이오넬 그리고 소셜 미디어에서 인플루언서로 활약 중인 듀크가 그들이다. 처음부터 사건인가 싶겠지만 그건 아니다. 이는 단지 억만장자인 또 다른 친구 마일스가 보낸 것으로, 퍼즐 풀기를 통해서만 상자가 열려 초대장을 받아들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었다.
이후 선착장에 모여든 친구들. 그들은 드디어 마일스의 별장이 위치한 그리스의 어느 섬으로 향한다. 살인자와 혐의자들만 존재하는 섬. 분명히 기시감이 있는 설정일 터이고 이러한 설정은 추리물의 역사에서 오래되었지만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이러한 초대에 계획에 없던 두 인물이 동참한다. 그들의 또 다른 친구 앤디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탐정 브누아 블랑이다. 앤디를 바라보는 친구들의 시선은 불편하고 브누아는 초대조차 받지 않은 상황. 당황한 마일스는 어찌 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하지만 어쩌면 잘된 일이라며 그를 머물도록 한다. 자신이 짜놓은 살인 사건 트릭 이벤트가 더욱 흥미로워졌다며 오히려 들뜬 모습이다.
살인 트릭 이벤트가 시작하던 날, 브누아가 분위기를 망쳐버리고 만다. 애써 짜놓은 트릭을 시작하기도 전 그 자리에서 풀어버린 것이다. 이때 이벤트를 망쳤다며 화를 내는 마일스에게 브누아는 이곳에 있는 이들에게 살인을 인식시키지 말라며 오히려 경고한다. 그렇다. 브누아는 일부러 이벤트를 망친 것이다.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은 친구라는 이름을 지녔지만 섣불리 반항했다간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이들이었으며, 마일스를 살해할 만한 동기가 있는 자들이었다. 마일스가 지닌 돈의 힘에 지배되어 영혼마저 팔아 진실을 묻어야 했던 군상들. 그러다 일어난 진짜 살인사건. 과연 그들은 어떤 사연을 지닌 것일까? 모두가 불편해하는 앤디는 과연 누구이며 브누아는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된 것일까?
"푸가는 선율을 기초로 한 아름다운 퍼즐이죠. 하나의 튠(Tune)을 층으로 쌓으면 아름다운 새 구조로 변하기 시작해요."
버디의 파티장, 나무 상자의 퍼즐을 풀던 중 흘러나오는 선율에 한 남자가 아는 척을 한다. 물론 충분한 힌트가 되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 곡은 영화 전체의 주제를 관통하는 것으로 바로 '바흐'(Johann Sebastian Bach·1685~1750)의 '푸가 사단조 BWV 578', 일명 '작은 푸가'(Fugue in G Minor·BWV 578 'The Little')다. 영화의 시작, 캄캄한 배경에서 주지사인 클레어가 나무상자를 받아드는 장면까지, 피아노 소리를 통해 흘러나오는 곡도 바로 이 곡이니 처음부터 영화는 전하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한 것이다.
곡은 아른슈타트에서 오르가니스트로 성장하던 20대 초반에 창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바흐가 오르간을 위하여 완성한 많은 작품 중 명작이자 인기곡으로 이는 지휘자 스토코프스키의 관현악 편곡에 힘입은 바가 크다. 스토코프스키는 이 외에 바흐의 많은 작품을 편곡하여 대중성을 더하였는데 영화 <환타지아>(1940)의 첫 곡이 바로 그가 편곡한 '토카타와 푸가 BWV. 565'이기도 하다.
제목에 걸맞게 4분 정도의 짧은 곡으로, 너무도 유명한 주제가 제시되면 다른 성부가 이를 모방하여 등장하고, 이어 두 번의 현란한 조바꿈을 거쳐 대단원에 이른다.
이쯤에서 '큰 푸가'도 있겠구나 추리해 볼 수 있다. 정답은 '그렇다'. 바로 '전주곡과 푸가 BWV. 542'이다. 바흐의 오르간 작품 중 사단조로 이루어진 두 개의 위대한 푸가가 있어 두 작품을 규모로 나누어 구분하는 것으로 BWV. 542는 12분여가 소요되는 장대한 곡이다.
그렇다면, 푸가란 무엇인가? 이는 모방 대위법의 한 종류로 도주라는 뜻을 지녔다. 하나의 주제 선율이 연주되면 다른 성부가 이를 똑같이 혹은 다양한 변형을 통해 모방하여 등장하는 것으로, 간단히 말해 기악으로 쓰인 돌림노래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푸가는 폴리포니를 역시 기본으로 한다. 여러 성부가 어우러지지만 대위법에 기반, 같거나 비슷한 선율로 독립된 지위와 지분을 지닌다는 것이다.
독립적 지위와 지분이라…. 그렇다면 영화 속 네 친구는 어떤가? 얼핏 본다면 성공한 이들로 마일스의 뒤를 따르지만 주체적 지분을 전혀 지니고 있지 않다. 푸가 속 뒤따르는 선율이 지닌 독립적 가치에 턱없이 부족한 인물인 데다 심지어 화성적 반주(호모포니)로서도 모자랄 지경이다. 이런 이들이 모여 화음을 맞추고 있으니 조화의 오묘함은 어찌 찾는단 말인가. 그저 이용하기에 급급하며 눈치 보기에 바쁘다.
그리고 다시 푸가를 들어본다. 단순하던 선율이 뒤따르는 선율과 뒤섞인다. 두 성부 정도면 참을 만하다만 세 개, 네 개 늘어나니 복잡하고 정신이 없다. 마치 여러 사람이 모여 자신의 이야기로 바쁜 형상이다. 이쯤이면 주제 선율을 찾기도 힘들어지고 뭐가 주제였는지조차 모호해진다. 분명한 것은 그 속에 녹아 반드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대사처럼 '복잡함 뒤에 숨겨진 투명한 진실', 음악으로 지어진 글래스 어니언, 그것이 바로 푸가다. 이런 가운데 푸가가 지닌 또 하나의 놀라운 점은 각 성부가 돌아가며 주인공이 되기도 하며 서로 상처 내지 않은 채 쌓여 새로운 구조와 음악적 감동을 창조한다는 것이다. 참으로 민주적이고도 평화로운 양식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영화 속 빌런과 그의 친구들은 이를 저버렸다. 함께 쌓아 올려 충분히 서로 주인이자 오묘할 수 있었건만 그러지 못한 것이다. 게다가 그들이 저버린 것은 처음으로 주선율을 제시한 이였다. 하니 어찌 무너지지 않을까?
/심광도 시민기자
※ 이 기사는 경상남도 지역신문발전지원사업 보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