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편견 혐오 속 성소수자
깊은 산골로 떠밀리다시피한 삶
다양한 관점으로 잔잔하게 그려

사랑을 사랑한다. 사랑이 묻어 있는 흔적을 사랑한다. 봄바람을 누리는 나른한 표정, 활짝 핀 꽃을 지나치지 못하고 카메라를 꺼내 드는 눈빛, 꼭 잡은 두 손, 늦은 밤 살금살금 걷는 발걸음. 어쩌면 사랑을 사랑하지만 직접 사랑하는 수고로움보다 누군가의 사랑을 지켜보는 편리한 사랑을 더 사랑하는지도 모른다. 사랑에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설렘과 기쁨에도 에너지가 필요하고 슬픔과 아픔에도 에너지가 필요하다. 때때로 사랑에 에너지를 쓰는 사람들에게 부러움과 경이로움을 느낀다. 곳곳에 사랑이 잔뜩 녹아 있는 <정말 먼 곳>에는 어쩌면 사랑의 원본일 것 같은 이야기가 있다.

'진우'는 사랑을 사랑이라고 말해주지 않는 곳으로부터 떠나왔다. 인적이 드문 깊은 산골에서 딸을 돌보고 양을 치며 사는 그는 적게 말하고 적게 웃는 사람이다. 어느 날 진우를 먼 곳으로 떠나게 했던 '현민'이 진우를 찾아온다. 잔잔하던 진우의 하루에 활기가 돌고 얼굴엔 숨길 수 없는 사랑이 묻어난다. 

영화 정말 먼 곳 한 장면. /갈무리
영화 〈정말 먼 곳〉 한 장면. /갈무리
영화 〈정말 먼 곳〉 한 장면. /갈무리

진우가 키우고 있는 딸 '설이'는 진우를 엄마라 부른다. 설이는 다른 아이처럼 유치원에 다니지 않는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설이를 키우는 진우 앞에 설이의 친엄마이자 진우의 쌍둥이 여동생인 '은영'이 나타난다. 성소수자인 삼촌 진우와 5년 전 무책임하게 아이를 맡겨두고 떠나버렸던 엄마 은영은 아이를 '키울 자격'을 두고 팽팽하게 대립한다. 그러던 중 마을 사람들 앞에서 진우와 현민의 관계가 강제로 밝혀지는 상황이 생기고 둘에게 호의적이던 마을 사람들은 순식간에 눈빛의 온도를 바꾼다. 은영과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현민과 사이에도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자 진우는 점점 안정을 잃어간다. 또다시 진우와 현민이 함께하면서 그들과 가장 먼 안식처가 될 곳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이 다시금 그들과 가장 가까운 곳이 된다. 다시 말해 사랑을 사랑이라고 대답해 주지 않는 곳이다.

살얼음판이 되어 버린 그곳에도 그들을 온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주려는 사람들이 있다. 진우를 남몰래 좋아하던 하숙집 딸 문경은 하루아침에 자신의 사랑을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진우를 사랑하기로 한다. 한 발짝씩 진우에게 다가가던 문경. 이제는 두 발짝 뒤에서 진우를 바라보며 그를 상처 내는 사람들과 정면으로 맞선다. 문경의 아버지도 진우가 또 다른 곳에서 다시 상처받을까 염려하며 이제는 자신의 곁에서 편히 쉴 것을 권한다. 진우를 바라보는 그들의 눈빛에 안온함이 흐른다.

영화 〈정말 먼 곳〉 한 장면. /갈무리

이 영화는 성소수자들이 사회에서 견뎌야 하는 차가운 시선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성 간의 사랑에는 외모, 경제력, 학벌 등 여러 겹의 필터가 불가결하게 씌워지는 요소라면 동성 간의 사랑은 '둘이 얼마나 사랑하는지'라는 전제가 가장 힘이 있다. 때문에 오히려 더 순수하고 원형에 가까운 사랑의 형태를 보여준다. 

진우와 현민은 또다시 먼 곳으로 떠나는 선택을 한다. 영화는 두 사람이 사랑을 찾는 과정을 보여 준다. 이는 우리가 현실에서 마주치는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답을 찾아가는 과정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언제나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나은 이상을 향해 나아간다. 정말 먼 곳은 어디일까. 우리는 여행으로 혹은 영화와 책으로 틈만 나면 바다를 헤엄치고 기회만 닿으면 대륙을 건넌다. 여전히 여기가 아닌 정말 먼 곳엔 무언가 더 나은 것이 있을 것만 같다. 그 막연한 환상이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다. 

영화 〈정말 먼 곳〉 출연진. /갈무리

영화 제목을 박은지 시인의 2018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등단작 '정말 먼 곳'에서 가져 왔다고 한다.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면 불안해졌다/ 우리가 상상을 잘하고 있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우리의 상상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알 수 없었고/ 거짓에 가까워지는 것만 같았다// 정말 먼 곳을 상상하는 사이 정말 가까운 곳은/ 매일 넘어지고 있었다 정말 가까운 곳은/ 상상을 벗어났다 우리는/ 돌부리에 걸리고 흙을 잃었으며 뿌리를 의심했다/ 견디는 일은 떨어지는 일이었다/ 떨어지는 소리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정말 먼 곳을 상상하며 정말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그래야 절벽에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정말 먼 곳과 내가 있는 곳은 영원히 합치될 수 없음을 이제는 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언젠가 내가 떠나오고자 노력했던 그곳이 아니었을까.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이제는 내가 직접 사랑하며 다가올 새 계절을 맞이하고 싶다. 

/조이슬 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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