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0일 간병일지' 산재 노동자 아내
김해 페인트공장서 남편 끼임사고
무너지는 가정 지킨 원동력은 사랑
"힘든 상황 도울테니 함께 이겨내자"

‘하늘이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면?’

이 물음에 소하랑(38) 작가는 2019년 7월 30일 오후 2시 30분 이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답을 내놓는다.

콕 집어 4년 전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이날 사랑하는 사람이 끔찍한 사고를 겪었기 때문이다. 김해 생림면 소재 페인트 제조공장에서 일하던 남편이 기계에 머리와 몸이 끼이는 사고를 당했다. 퇴사 30분 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4년 넘게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기로 한 날, 소 작가의 남편은 예기치 않은 산업재해로 삶이 무너졌다.

머리뼈가 부서지고 시신경이 손상됐다. 부산지역 권역 외상센터로 옮겨진 남편은 당시 아내조차 얼굴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얼마나 상태가 안 좋았는지 담당 의사는 소 작가에게 남편이 숨지게 될 것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꺼냈다. 심지어 “수술해도 죽고, 안 해도 죽는다”고까지 했다.

그러니 소 작가는 남편 곁을 떠날 수 없었다. 일주일 내내 집에 가지 않았다. 사고 현장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눈물로 밤을 지새웠다. 사흘은 아예 잠도 못 잤다. 중환자실 앞에 담요를 깔고 앉아 기도로 시간을 보냈다.

소하랑 작가가 지난 26일 오전 창원시 성산구 경남사회적경제혁신타운에서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그는 예명으로 활동 중이다. /최석환 기자

우여곡절 끝에 남편은 목숨을 건졌지만, 뇌를 크게 다쳐 7살 아이가 돼버리고 말았다. 보디빌더 출신인 40살 남편은 중증 치매 환자처럼 나이도, 이름도, 심지어 아내의 존재도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남아있는 기억은 20살 이전 기억뿐이다. 그마저도 온전하지 않다. 치료 과정에서 손가락 일부도 잃고, 왼쪽 눈은 실명했다. 그나마 시력이 남아있는 오른쪽 눈 또한 0.16으로 거의 앞이 보이지 않는다. 거기다 만성 신부전증과 당뇨까지 겹쳤다.

소 작가는 뇌병변 장애로 남편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결혼한 사실조차 모를 때면 슬픈 감정을 억누르고 이렇게 입을 뗀다. ‘저는 소하랑이고요. 당신과 저는 부산 성당에서 처음 만나 2002년부터 10년 연애 후 결혼했어요. 지난해 결혼 10주년이었고, 초등학교 4학년생인 딸을 두고 있어요. 당신은 회사에서 사고로 머리를 다쳐 신장투석을 하고 있어요. 지금 가장 기억하고 외워야 할 것은 당신과 나, 딸 셋이서 한집에 살고 있다는 거예요. 상황이 안정되면 우리는 10년 후 세계여행을 다니면서 즐겁게 살 거예요.’

소 작가는 이런 상황이 안타깝기만 하다. 언제라도 사고 전처럼 멀쩡한 모습으로 자기에게 와줄 것만 같은데 현실이 그렇지 않아서다. “사고 목격자도 없고 공장 내 폐쇄회로(CC)TV도 없어 당시 상황을 아무도 알지 못해요. 누구도 알지 못하는 문제 때문에 남편이 어린아이가 돼버린 거죠. 그렇더라도 저는 교육도 하고 자극도 주면 좋아질 거라고 믿었거든요. 그런데 입력이 안 되더라고요. 자기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자각 능력도 없고. 집에 있으면 화장실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요. 이러한 현실을 부정하게 되더라고요.”

어느 날 교통사고처럼 불현듯 찾아온 산재 문제는 소 작가의 몸과 마음도 병들게 했다. 남편이 아파하던 사이 우울증과 공황장애, 위궤양, 디스크, 심지어 유방암 진단도 받았다. 재앙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지만, 그런 와중에도 소 작가는 오로지 남편에게 초점을 뒀다. 법률·의학 서적을 읽고, 관련 강좌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다니면서 공부했다. 남편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최근에는 이전보다 여유가 생겨 네이버 카페 ‘슬기로운 산재 생활’에서 전무이사를 맡아 일하고 있다. 여기서 또다른 뇌 질환 환자·보호자에게 자기 경험을 공유하고 나누는 활동도 한다. 900일간 이어진 남편 간병 일지를 모아 <휴가갑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내기도 했다.

산재가 발생한 뒤 소 작가는 매일 곤두선 신경을 부여잡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첫째도 남편, 둘째도 남편, 딸은 그 뒷순위다. 딸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다는 그는 남편 당뇨 산재 승인을 근로복지공단에서 받아내는 게 가장 큰 목표라고 전했다. 불가피할 경우 공단을 상대로 행정소송도 검토 중이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젊은 남성은 후천성 장애가 생기면 받아주는 요양시설이 없다는 점, 우리나라는 산재보험이 잘돼 있는 나라라는 점도 알게 됐어요. 저의 상황을 누군가에게 말해주면 ‘대단하시다, 저라면 못할 것 같다’고 하는 분이 많은데요. 매우 슬픈 상황에 놓인 분이 많을 테니 함께 일어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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