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드라마서 방영되며 유명세
올해 부처님오신날 행사 구름 인파

연못 위 3000개 낙화봉 점화
솔솔 떨어지는 불꽃 모습 장관

"현장이 복잡해서 짜증이 났지만, 낙화는 정말 예뻤어요."

"정말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는 문장을 줄여 이르는 말). 그래도 안 봤으면 후회할 뻔. 환상적이고 감동적인 순간들."

27일 오후 SNS에 올라온 함안 낙화놀이 현장 반응이다. 엄청난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도로도 행사 현장도 혼잡해 불편했지만, 낙화놀이 자체는 정말 예뻤다는 이야기다. 반면에 함안 현지인들은 이게 대체 무슨 난리인지 어리둥절해하기도 했다. 수십 년째 해오던 전통 행사인데, 갑자기 전국에서 수만 명이 몰려들니 그럴 수밖에 없다.

27일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무진정과 이수정에서 '함안 낙화놀이'행사가 열렸다.불꽃들이 실타래처럼 떨어지며 황금색 궤적을 그리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27일 함안군 함안면 괴산리 무진정과 이수정에서 '함안 낙화놀이'행사가 열렸다.불꽃들이 실타래처럼 떨어지며 황금색 궤적을 그리고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이슬비처럼 떨어지는 느린 불꽃의 감동 = 함안 낙화놀이는 2008년 전통 불꽃놀이 중에서 최초로 경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조선 선조 때 함안군수로 온 한강 정구가 백성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매년 사월 초파일(지금 부처님오신날)마다 했다고 전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 중단됐다가 1960년 괴항마을 청년회가 재연하며 명맥을 이어왔고, 2000년대 들어서 함안면민을 중심으로 함안낙화놀이보존위원회가 만들어지며 지금까지 열리고 있다.

함안 낙화놀이가 처음 전국적으로 알려진 건 2021년 4월 KBS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을 통해서다. 매년 하던 행사를 코로나19로 못하고 있었는데, 당시 프로그램을 위해 일부러 시연했다고 한다. 

실제로 낙화를 본 이들은 알겠지만, 전통 불꽃놀이라고 해서 폭죽을 쏘거나 터트리거나 하는 게 아니다. 연못 위로 3000개 가까운 낙화봉을 설치해 진행한다. 낙화봉은 참나무 숯가루를 발라 만든 광목 심지에 한지를 싸서 만든다. 이걸 수면 위로 늘어뜨리고 불을 붙이면 불꽃이 이슬비처럼 세세하고 느릿하게 물 위로 떨어진다. 이 장면을 실제로 보면 정말 감동적이다. 불꽃놀이 시연자들은 낙화봉 하나하나에 불을 붙이는데 이 장면에서 엄청난 정성스러움이 느껴지며 낙화의 매력을 더한다. 당시 온라인으로 이 영상을 본 누리꾼들 반응이 대단했고, 언젠가 한 번 꼭 가봐야 하는 행사로 입소문이 났다. 2022년 KBS 2TV 드라마 <붉은단심> 1회 마지막 남녀 주인공의 애틋한 재회 장면에도 들어가면서 다시 한번 화제가 됐다. 올해 마침 부처님오신날을 낀 연휴 기간에 낙화놀이 일정이 정해지면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함안군 인스타그램 계정(@haman_official)에 행사 관련 문의가 폭주했었다.

27일 소복소복 떨어지는
27일 오후 함안 무진정에서 열린 2023 낙화놀이에서 소복소복 불꽃이 떨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소복소복 떨어지는
27일 오후 함안 무진정에서 열린 2023 낙화놀이에서 소복소복 불꽃이 떨어지고 있다. /연합뉴스

◇소박한 연못과 정자, 나들이 장소로 인기 = 낙화놀이가 아니라도 행사 장소인 무진정은 최근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많은 곳이다. 함안군 함안면 괴항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무진정은 소박한 정자와 연못, 그 위를 가르는 퇴색한 돌다리 그리고 연못 둘레를 둘러싼 아름드리 왕버들이 있어 운치를 더한다.

무진정은 정확하게 연못 가 바위 언덕에 있는 정자를 말한다. 조선 전기 학자 조삼이 1542년에 지었다. 조삼은 생육신 중 한 사람인 어계 조려의 손자로 무진(無盡)은 그의 호다. 요즘에는 무진정으로 불리는데, 함안 지역민들은 옛날부터 이곳을 이수정이라고 했다. 19세기 조선말에 오횡묵이란 이가 함안군수로 재직하며 남긴 업무기록 <함안총쇄록>을 보면 옛 함안읍, 지금 무진정 주변으로 관에서 세운 정자가 5리마다 하나씩 있었다. 이를 일수정, 이수정, 삼수정 식으로 불렀고, 이수정은 그 중 하나다. 다시 말해 이수정은 관에서 만든 정자를 이르니, 정확하게는 무진정이라 하는 게 맞겠다.

함안군 함안면 무진정. /이서후 기자
함안군 함안면 무진정. /이서후 기자
함안군 함안면 무진정 옆 괴항마을 공공미술 프로젝트. /이서후 기자
함안군 함안면 무진정 옆 괴항마을 공공미술 프로젝트. /이서후 기자
함안군 함안면 무진정 옆 괴항마을 공공미술 프로젝트. /이서후 기자
함안군 함안면 무진정 옆 괴항마을 공공미술 프로젝트. /이서후 기자

연못은 조삼의 후손들이 나중에 만든 것이다. 무진정 풍경의 핵심은 사실 이 연못이다. 큰 연못은 아니지만 가운데, 작은 섬이 세 개 있고 그 섬들을 돌다리가 연결하고 있다. 그중 가운데 가장 큰 섬에 영송루라는 누각이 있다. 무진정이 사람들이 찾는 명소가 된 건 최근의 일이다. 함안군이 무진정을 정비하고, 주변으로 카페가 생기면서부터다. 2020년 식목일이란 카페가 제일 먼저 생겼고, 이후 무진이란 카페가 들어섰다. 둘 다 무진정과 연못 방향으로 큰 창을 내 카페 안으로 풍경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였다. 찾는 사람들이 늘자 무진정 옆으로 식당도 몇 곳 생겼다.

무진정이 있는 괴항마을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2020년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벽화, 조형물 등 다양한 볼거리를 만들었다. 마을 안에 마을협동조합에서 운영하는 있는 살롱 드 괴항이란 공간에서 근대(개화기) 의상을 빌려 입고 시간여행을 떠나듯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는 재미도 있다.

 /이서후 기자

※참고문헌
<경남동네여행> 이서후·김민지·김해수·최석환 지음. 피플파워. 2020.
<조선시대 원님은 어떻게 다스렸을까 -함안총쇄록 답사기> 김훤주 지음. 피플파워.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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