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림·이혁·정현준·조현수·한예림 참여작가 관객 만남
기획전 '2023 N 아티스트' 연계 행사...전시 8월 27일까지

틀을 깨는 그들만의 시선은 어디서 나왔을까.
경남도립미술관 신진작가 기획전‘ 2023 N 아티스트 - 더 느리게 춤추라’에 참가한 작가와 대화 행사가 25일 미술관 지하 1층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이날 전시 주인공인 김예림·이혁·정현준·조현수·한혜림 작가 그리고 이들과 7개월 동안 소통하며 전시를 기획한 박지영 학예연구사가 2시간 동안 진행했다. 먼저 작가들이 저마다 작업 방식을 소개하고, 관람 참여 게시판을 통해 미리 받은 질문에 답변하는 방식이었다.

지난 25일 경남도립미술관이 주최한 신진작가 기획전 '더 느리게 춤추라' 참가 작가와 대화 행사가 열렸다. 왼쪽부터 박지영 학예연구사, 김예림·이혁·정현준·조현수·한혜림 작가. /박정연 기자

◇김예림, 기억하고 싶은 순간을 수집하다 = 김예림 작가 작품에는 맞잡은 손, 키스를 나누는 남녀, 신생아 등 주로 사람이 담겼다. 그림이 마냥 밝은 기운을 전하는 것은 아니다. 어딘지 모르게 외롭고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김 작가는 스마트폰으로 이미지를 수집하는 버릇이 있다. 수집한 이미지를 그대로 캔버스에 옮기기도 하지만 서로 관련 없는 이미지를 분절하고 교차시켜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감정을 말로 꺼내는 것이 익숙지 않은 편이고, 주변 사람들 관계도 말로 위안을 받는 편도 아니라 그림을 그리면서 저에게 내재한 외로움을 자연스럽게 표출합니다. 매일 일기를 쓰는데 제가 쓴 일기 내용 중에서 작품 제목으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미지를 수집하는 것 외에도 문장 수집을 습관처럼 하고 있는데 책을 읽을 때마다 인상적인 문장을 메모하는 노트가 있습니다.”

◇이혁, 부서지고 다시 세우는 나날들 = 이혁 작가는 북한에서 태어났다. 북한에 있는 예술전문학교에서 6년 동안 그림을 배우다 2006년 열아홉 살에 홀로 고향을 떠나 중국에 머물다 2009년 한국에 왔다. 한국외국어대 영어통번역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대학원에서 회화를 전공했다.

“미술을 포기하려 했던 힘든 시기도 있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을 우연히 찾아갔다가 전시 퍼포먼스를 보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림을 다시 배우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을 마치고 레지던시 문을 두드렸습니다. 경남 하동 악양창작스튜디오 레지던스에 참가하며 처음 작업을 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동 자연을 보면서 축복받은 땅이라 느껴졌습니다. 지내면서 주민들의 따뜻한 마음을 온전히 받았습니다. 무엇보다 ‘이웃으로 살기 바란다’는 말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가 전시에 내건 산수화는 하동에서 지내며 본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은 것이다. 산수화 외에도 ‘가이의 초상’는 자화상 작품들이 무언가 두려움에 떨고 있는 개가 그려져 있다. 관람객은 주로 자화상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작가는 “이질감, 정체성 혼란 등 이방인으로 느끼는 여러 고민을 담은 작품”이라고 답했다.

◇정현준, 불확실한 것을 확인하는 과정 = 정현준 작가는 평면 작업을 비롯해 영상 작업으로 배달노동자(라이더)를 담았다. 그의 작품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도시화로 ‘밀려나는 삶, 사람들’에도 주목했다.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면서 배달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플랫폼 시장은 포화 상태입니다. 라이더들이 없던 과거와는 생활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는데, 배달 노동자들에 대한 시선은 어떤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숨 걸고 타면 700만 원 번다’는 친구의 말을 곱씹으며 700만 원보다는 목숨을 걸고 탄다는 말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거나 한국을 떠나는 친구들, 신도시 개발에 밀려 삶의 근거지를 계속 옮겨온 가족사가 혼재된 그의 영상을 통해 현실과 은유를 오가며 우리 삶을 마주하게 된다.

◇조현수, 자연의 생명력 그리고 순환 가치 = 한국화를 전공한 조현수 작가는 재료를 연구하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 그러다 금속 중에서 동을 닥종이에 붙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부식된 부분이 전통 재료 닥종이와 결합할 때 형성되는 얼룩과 흔적, 빛과 시간에 따른 변화를 담았다.

“전남 담양 대나무 숲을 갔다가 비가 와서 잠시 처마 밑에서 비를 피했습니다. 그러면서 대나무 모습을 관찰하게 됐는데, 물을 머금고 있던 대나무가 햇볕을 받자 반짝이면서 싱그럽게 느껴지는 순간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의 생명력을 담고 싶다는 생각에 창원에서 주로 볼 수 있는 감나무 형상을 표현하게 됐습니다.”

그가 천장에서 아래로 설치한 닥종이를 지날 때면 종이가 움직여 바람에 흩날리는 나무같이 느껴진다. 조 작가는 “관객 반응 중에서 금속이 부식되면 가치가 떨어지는데 오히려 가치를 부여한 작가의 특별한 시선이 인상적이었다는 후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한혜림, 소중한 것을 회상하는 법 = 한혜림 작가는 사람과 관련한 대화 소리를 비롯해 신체적인 움직임에 관심이 많다. 이전 작품 ‘콩냥콩냥’처럼 주간 보호시설 노인들이 콩을 고르며 대화를 나누는 소리를 작품화하기도 하고, 재활 기구에 의지해 끊임없이 걷기 연습을 반복하는 모습을 보며 마을에서 더 안정적으로 거닐 수 있는 공간을 지도화해 작업하기도 했다.

이번 도립미술관 기획전에서는 친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소리와 움직임으로 표현했다.

“어느 날 할머니가 즐겨 부르던 가사의 노랫말을 기억하게 됐고, 노래 부르던 모습을 종종 담았던 게 떠올랐습니다. 부재한 것에 대한 기억을 주제로 작업을 하면서 할머니 목소리가 담긴 파형을 시각화해 보니 마치 할머니가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여기에 무용하는 분들과 협업을 통해 각자 희미해진 기억들에 대해 몸짓으로 표현한 영상 작품도 내놓았습니다.”

한 작가 작품을 본 관람객이라면 저마다 기억 속에 있는 소중한 사람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작가 5명이 참가한 ‘더 느리게 춤추라’ 전시는 도립미술관 3층 전시실에서 8월 27일까지 이어진다.

/박정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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