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부 김경영 씨 생전 모습 증언
유족들 "정신적 외상에 힘들어 해"
결국 시신 인양 후 5년 뒤 세상 떠나
진화위, 진실규명 여부 조사 중

"아버지가 김주열 열사 시신을 맨손으로 인양했는데 훼손이 심했다고 합니다. 유명한 사진처럼 눈에는 대못 같은 최루탄이 박혀 있었고 몸은 밧줄로 묶여 있었지요. 아버지는 그런 모습을 직접 보고 만졌으니 얼마나 충격이 컸겠습니까. 시신 인양 후로도 그날 장면이 꿈에 나와 힘들어하셨습니다."

김주열 열사 시신을 인양한 어부 김경영 씨 막내아들 김재술(69·마산합포구) 씨가 23일 오전 창원시 마산합포구 만날재에 있는 아버지 묘소에 다녀왔다. 김경영 씨는 1960년 4월 11일 마산 앞바다 돝섬 부근에 떠 있던 김주열 열사를 처음으로 발견했다. 그는 김주열 열사 시신을 배에 싣고 부두로 돌아와 경찰에 신고했다.

김재술 씨는 "아버지는 바다 위에 떠있던 시신을 보자마자 김주열 열사라는 직감이 들었다고 했다"며 "당시 마산 시민이라면 김주열 열사가 사라졌다는 사실은 다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시신이 훼손된 것을 보고 느낌이 왔지 않았을까 싶다"고 말했다.

김경영 씨 막내아들 김재술(오른쪽) 씨와 손녀 장미나 씨가 23일 오전 김경영 씨 묘소를 찾아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주찬우 기자
김경영 씨 막내아들 김재술(오른쪽) 씨와 손녀 장미나 씨가 23일 오전 김경영 씨 묘소를 찾아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주찬우 기자

이후로는 잘 알려진 대로 김주열 열사 사망에 분노한 마산 시민들이 3월 15일에 이어 다시 한번 시위했고 4.19혁명으로까지 이어졌다. 결국 이승만 독재 정권은 무너졌다.

이날 김재술 씨와 김경영 씨 외손녀 장미나(51·마산합포구) 씨가 묘소를 찾은 이유는 진실화해위원회 조사관들에게 안내하기 위해서다. 현재 진실화해위원회는 김경영 씨에 대한 진실규명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이날 만남은 어렵사리 성사됐다. 조사에 필요한 증언을 해줄 김경영 씨 유족들과 연락이 닿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실화해위원회는 김경영 씨 둘째 딸 김금이 씨가 2003년 <경남도민일보>와 진행한 인터뷰 내용을 토대로 유족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당시 기사 끝에 등장한 김금이 씨 직장이 결정적 단서가 돼 유족들을 찾을 수 있었다.

이날 어머니 김금이(72·마산합포구) 씨 대신 김경영 씨 묘소를 안내한 장 씨는 "다들 먹고사는 게 바쁘다 보니 외할아버지가 겪은 아픔을 잊고 지냈다"며 "이제라도 진실규명이 돼서 할아버지가 겪은 고통을 인정받고 명예회복까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경영 씨 막내아들 김재술(왼쪽 첫째) 씨와 손녀 장미나(오른쪽 첫째) 씨가 김경영 씨 묘소를 찾아 절하고 있다. /박신 기자
김경영 씨 막내아들 김재술(왼쪽 첫째) 씨와 손녀 장미나(오른쪽 첫째) 씨가 23일 오전 김경영 씨 묘소를 찾아 절하고 있다. /박신 기자

김재술 씨는 아버지 김경영 씨가 1965년 김주열 열사 시신 인양지에서 쓰러져 사망하고 어머니마저 3년 뒤에 세상을 떠나며 온 가족이 힘겹게 살아야 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나는 그 당시 다니던 국민학교를 그만둬야 했고 신문팔이, 구두닦이 안 해본 일 없이 힘들게 살았다"면서 "아버지가 한국 현대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만큼 이제라도 충분히 조명됐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워했다.

진실화해위원회 김근이솜 조사관은 "김경영 씨는 김주열 열사 시신을 인양하는 일에 참여했고 김 씨가 사망한 이후로는 가족들이 힘들게 살아야 했다"며 "3.15의거와 관련성이 어느 정도 있다고 보고 조사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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