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시 마산합포구청 앞에는 마산세무서,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이 있다. 뒤편엔 창원지방검찰청 마산지청이 있다. 종이 서류를 주로 쓰던 시절에 문서 서식, 인감·일반 도장 등을 많이 소비했던 곳이다.

그래서인지 현재 마산합포구청과 마산세무서를 가르는 4차로 주변에 관련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다. 도장점, 대서방(글을 대신 써주는 곳) 등이 행정사, 법무사, 세무회계사 사무실과 혼재해 있었다.

2021년께부터 이 주변은 커피전문점 거리로 모습을 바꿔가고 있다. 가게를 운영하던 대표자들이 나이가 들면서 운영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또는 적자를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어서 자리를 내놓는 가게도 있다.

이 와중에 영화문구사는 문구류와 도장을 팔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영화문구사 상호는 최동걸(78) 씨 아내 이름에서 땄다. 영화로운 꽃, 뜻이 좋고 부르기도 좋아서 상호에 넣었다. 

◇영화문구사를 차리기까지 = 최동걸 씨와 아내는 경북 안동 출생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을 구하러 안동을 떠났다. 최 씨는 서울 영등포구에 있던 형광등 제조업체에서 2~3년가량 일하고 마산으로 이사했다. 

마산에 와 소니(SONY) 공장에 입사해 녹음기, 전축, 라디오를 생산했다.

자재는 국외에서 들여왔다. 최 씨가 그 자재들로 완제품을 만들면 미국으로 수출됐다. 최 씨가 만든 기기들은 성탄절에 미국에서 가장 잘 팔렸다고 한다. 연말에 팔 물량을 맞추려면 여름에 바쁘게 일해야 했다. 겨울이 되면 일거리가 없을 때가 잦았다.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영화문구사'를 운영하는 최동걸 씨. /주성희 기자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영화문구사'를 운영하는 최동걸 씨. /주성희 기자

그렇게 7~8년을 일하다 소니에서 나오게 됐다.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었지만 자영업에 뛰어들었다. 해고되는 삶, 남의 밑에서 일하는 삶을 버리고 싶었다. 회사 일정에 맞춰 쉬는 것도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았다. 

마산시청 옆, 지금 자리에 문구사를 차렸다. 최 씨가 서른여덟 살쯤이었다. 

40년 가까이 운영하니 예전에 문구사에서 물건을 사던 학생들을 만나기도 한다.

마산합포구청에서 무학산 방향으로 올라가면 성지여자중학교와 5개 고교가 밀집해있다. 1980년대만 해도 먼 지역에서 오는 학생들은 마산시청 앞으로 내려와 시내버스를 탔다. 자연스레 시청 옆에 있던 영화문구사에서 학용품을 사가곤 했다. 당시 학생들이 50대가 돼 나타나면 지나간 시절을 실감한다. 

◇인장업 15년째 = 최 씨가 실감하기에 문구류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최 씨가 도매상인에게 들은 문구산업 현실도 마찬가지다. 최 씨는 새로운 판로를 찾았다. 15년 전쯤 도장 깎는 기계를 들였다. 2분 만에 레이저로 활자를 깎아내는 기계다. 

기계 길이는 70㎝, 폭이 50㎝, 높이가 30㎝ 이상 돼 보였다. 전용 컴퓨터가 기계 위에 놓여있다. 손가락 세 마디 길이인 도장이 들어가는 기계치고 몸집이 크다.

구청이나 법원에 들르는 민원인 가운데 도장이 급하게 필요하면 영화문구사를 찾는다. 

빠르게 만든다고 해서 대충 만들지 않는다. 

손님은 가게 왼편에서 도장 재질을 고를 수 있다. 화려한 무늬가 새겨진 도장부터 간단한 목도장까지 다양하다. 재질을 골랐다면 자기 이름을 정확하게 써 알려준다. 최 씨는 이름을 도장 기계 컴퓨터에 입력하고 손님에게 한 번 더 확인을 받는다.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영화문구사'를 운영하는 최동걸 씨가 도장 파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성희 기자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영화문구사'를 운영하는 최동걸 씨가 도장 파는 작업을 하고 있다. /주성희 기자

도장 활자면이 보이도록 도장 몸체를 기계에 끼운다. 이 작업이 가장 어렵다. 컴퓨터가 그린 활자 도면이 도장 머리 부분에 맞도록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최 씨는 핸드폰으로 손전등을 비추고 돋보기로 도장을 확대해서 본다. 위치를 재점검한다. 영화문구사 전체가 숨죽이는 시간이다. 최 씨가 확인을 마치면 기계를 작동시킨다. 

탄내가 미세하게 퍼지면 기계 임무는 끝난다. 최 씨가 도장을 꺼내 칫솔모로 가루를 털어낸다. 다시 돋보기로 잘 새겨졌는지 확인하고 인주를 묻혀 도장을 찍는다. 이름이 잘 나왔는지, 활자를 잇는 선이 정확하게 보이는지 등을 확인하고 손님에게 내어준다. 

최 씨는 인장업에 자부심이 있지만 현실에서 그 명맥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다. 계약서, 결재 서류를 전자로 처리하거나 서명(자기 고유의 필체로 자기 이름을 쓰는 것)을 해도 무방한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최 씨는 인장업이 뒤안길로 사라지는 걸 두고 볼 수 없다. 몇 차례 국민청원을 하기도 했지만 뚜렷한 해법이 나오진 않았다.

그래도 아직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다. 인감제도가 유효하고, 법인이 설립되면 직인이 있어야 한다. 최 씨는 이 자리를 지키려고 한다. 

최근 같은 길가에서 인장업을 하던 이가 사업을 접은 영향도 있다. 도장을 원하는 이가 적더라도 자리에 있고 싶다.

일하는 게 습관이 돼 가게를 접을 생각만큼은 없다. 최 씨는 "주말 이틀만 쉬어도 몸이 아프다"며 "매일 가게 문을 여는 게 건강을 지키는 일이다"라며 웃었다.

/주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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