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창원에서 열린 토론회에 취재를 갔다. 토론회 취지에 공감해 취재했지만, 과정은 답답했다. 토론자, 좌중 모두 자기 말만 맞는다며 발언해서였다.

토론자들은 "시민들이 이해할지 모르겠지만"이라든가 "시민들이 정신을 차리셔야 한다"며 좌중을 가르치려 들었다. 좌중에 있던 시민들은 공무원, 관계자들이 시민 목소리를 듣지 않는다고 했다. 토론회가 아닌 '토로회'였다.

토론회를 연 의미가 희미해졌다. 포럼 시작 후 2시간 정도 지나자 관계자들은 대관시간 때문인지 서둘러 마무리했다. 토론회는 남는 것 없이 서로 간 불만·불신만 커진 채로 막을 내렸다. 이런 상황은 최근 본 토론회에서만 있었던 일은 아니다. 다른 토론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생긴다. 토론자들은 각자 생각만 얘기한다. 해결책이 나오거나 이후 실행할 수 있을 만한 시책이 나오지 않는다. '추후에 관련 내용을 고민' 정도로 끝맺는 토론회도 심심치 않게 있다. 그러다 이빈 공익공감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을 우연히 만났다. '숙의 민주주의' 방식으로 토론과 대화를 풀어간다며 공익공감을 소개했다. 흥미가 돋아져 취재 요청을 했다. 지난 16일 공익공감이 진행하는 퍼실리테이션 현장을 취재했다. 그 토론장 내 참여자는 모두 평등했다. 가르치려 드는 사람이 없었다. 자기 의견을 개진하면서 상대 의견을 경청했다. 침착해 보이지만 치열하게 의견을 주고받으며 해결책을 찾아나섰다. 3시간 뒤 참여자 모두가 공감하는 해결책 10가지가 도출됐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뭘까. '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너는 대답만 해)'라는 신조어가 그 자리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와 상대방 의견은 존중받아야 한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는 상식을 지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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