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 농사보다 감 잡을 수 없는 정치
순리·상식 어긋난 대일 굴욕외교 분노

올해 봄미나리 출하를 시작한 지 벌써 한 달이 다되어 간다. 이쯤 되면 '오! 미나리'를 외치기에는 좀 머쓱하다. 오히려 지금 한창 힘이 들므로 '아이쿠나! 미나리'라고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때 지난 지 오랜 데도 봄미나리 예찬을 하는 것은 미나리가 많이 팔려서 살림살이가 좀 나아지길 바라서이다. 그리고 나라 돌아가는 꼴이 오! 미나리라도 외치며 농사 본연에만 집중해서 살고 싶기 때문이다. 미나리 농사를 짓기 시작한 지 벌써 5년째다.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이쯤이면 반농사꾼 소리는 들어야 제격이다. 하지만 모든 농사가 그렇듯 올해 미나리 농사도 '도대체 모르겠습니다'이다. 똑같이 하는데도 이 논 저 논 미나리가 다르게 크니 도대체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지하수 온도가 같지 않고 지난겨울 날씨가 하도 뒤죽박죽이어서 그럴 수도 있다 여긴다. 그래도 그만큼이나 되어 준 것이 어딘가. 감지덕지할지언정 투정 부릴 수는 없는 것이 농부이다.

꼭 그런 농부 심정으로 나라 돌아가는 꼴을 이해한 지도 꽤 된다. 젊음의 패기가 사그라지고 환갑이 턱에 찼으니 그렇듯 이해하고 관조할 나이도 되었다고 치부한다. 윤석열 정권이 한일 관계를 정상화한다고 했을 때도 그저 그렇거니 했다. 문득 20대 청춘이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아마도 가슴 치며 절규했을 것이다. 남 앞에 나서서 외치지는 못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태에 어떤 형태로든 반대의 분노를 표출했을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서 아무리 나이 탓으로 돌리고 가만 참으려고 해도 적어도 이건 아닌 것이다.

일제 강제징용은 일제가 식민지 백성에게 한 가장 악랄한 짓 중 하나였다. 식민지 백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원하지 않은 곳에 잡혀가서 죽도록 강제 노동을 했다. 성 노예로 끌려갔던 할머니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이쯤 되면 당사자와 가족들의 원한이 하늘에 닿아야 한다. 일본 정부는 그런 적이 없다고 우기거나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겁박하길 일쑤였다. 세상은 꼭 법리를 따지지 않더라도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사실 법도 그 범주를 넘어설 수 없다고 본다. 일본 정부는 늘 1965년 한일 협정으로 일제 잔학행위는 청산되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백번 양보하여 나라 사이 일은 그렇게 매듭되었다 쳐도 개인 피해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잘못을 했으면 100번 1000번이라도 상대방이 용서를 할 때까지, 그 이후에도 계속 해야 한다. 그래야 후대에 경계가 되고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과와 반성의 문제는 그것이 본질이다. 하지만 일본은 어떤가. 전혀 반대이다. 독일의 반만 닮았어도 지금 윤석열 정권이 하는 짓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토록 후안무치하다면 관용을 내세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금 그것이 순리인지 먼저 자성하고 국민을 설득해도 해야 하는데, 그런 기미는 없다.

경제는 어렵고 무언가 돌파구는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역대 보수 정권들이 그러했듯 왜 하필 일본인가는 한번 곱씹을거리가 되고도 남는다. 그리고 행여라도 이전 정권과의 차별을 자랑하려고 했다면 그것은 천인공노할 일이다. 거대 야당도 마찬가지이다. 국민정서는 상식의 궤에서 정치를 이해한다. 그 상식이 뭔지 뻔히 알면서도 엉터리를 짓다가 나라 창피를 당하는 걸 보고 있기만 해야 하니 그 책임과 죄가 피장파장이다. 새벽, 미나리 작업에 삭신이 쑤시지만 농사꾼보다 못한 정치는 인제 그만 봤으면 좋겠다.

/이순수 작가·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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