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문화예술공간 돌창고
최승용 대표 제안에 전시 참여
돌돌돌전 서 다랑논 작품 선봬

남해 문화예술 공간 ‘돌창고’에서 지역 석공이 작가로 데뷔했다. 남해 석공, 아니 이제는 작가라고 불러도 좋을 김수남(49) 가나스톤 대표다.

지난 18일 돌창고 올해 첫 기획 전시 돌돌돌전(展) 개막식이 열렸다. 남해 지역성을 상징하는 소재로서 돌에 주목한 전시다. 기획 전시는 전문적으로 미술 작업을 하는 이에게 맡기는 게 일반적이다. 이번 돌돌돌 전시에도 남해 벽련마을 암각화 무늬를 여러 가지로 표현한 김혜련 작가의 회화 작품들이 걸렸다. 그런데 전시장 한편에 또 하나 중요한 작품이 있다.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게 돌담을 쌓아 만든 ‘다랑논’이다. 이 작품은 남해에서 오랫동안 석공 일을 해온 김수남 씨가 만든 것이다.

남해 돌창고 '돌돌돌전'에 전신된 김수남 석공 작 '다랑논'. /남해돌창고
남해 돌창고 '돌돌돌전'에 전신된 김수남 석공 작 '다랑논'. /남해돌창고

“현재 시점에서 남해 돌 문화를 어떻게 보여줄까를 고민했습니다. 사실 ‘남해 돌 문화’란 실체는 없어요. 실질적으로 돌과 관련한 일을 하는 석공 기술이 현재 돌 문화 그 자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기술도 예술이 될 가능성을 모색한 거죠. 석공이 한 행위도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석공 작업으로 지역민에게 예술에 대한 열린 태도를 심어주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 실마리가 바로 내 친구나 이웃도 예술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란 생각도 같이했습니다.”

남해 돌창고 대표 최승용 대표의 말이다.

남해돌창고 최승용 대표. /이서후 기자
남해돌창고 최승용 대표. /이서후 기자

◇ 한평생 돌과 함께 살다 = 전시에 참여한 김수남 씨는 석공으로 산 지 올해 26년째다. 23살이 되던 해, 가족을 도우려 우연히 석공의 길로 발을 들인 후 평생 한 우물만 파는 일이 됐다. 처음에는 돌 조각이나 돌공예 같은 가공 기술을 배웠다. 중국에서 싼 가공 석재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요즘은 시공일을 주로 하고 있다. 돌담 쌓기, 조경용 담벼락, 묘 가꾸기 같은 것이다.

특히 남해는 오래전부터 묘를 신경 써서 조성하는 문화가 있다.

“석공들 사이에선 산 사람보다 죽은 사람이 먼저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 동시에 일이 들어와도 묘 작업을 먼저 챙깁니다. 특히, 산소를 만드는 장례 일에는 자부심이 커요. 하지만, 일이 너무 힘들 때면 석공을 그만두고 싶기도 했어요. 석공 일 은3D(Dirty, Difficlult, Dangerous) 업종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노동입니다. 젊을 때 시작해 다른 일을 경험하지 못한 터라, 이게 꼭 나의 일인가, 이 힘든 걸 평생 해야 하나 회의감이 들기도 했어요.”

가끔 예술가들의 작업도 부탁 받았다. 공모에 당선된 미술 작가의 의뢰를 받아 조형물을 만들거나 시인의 시를 돌에 새겼다. 그런 과정에서 실제 석공이 만드는 건 똑같은데, 왜 작가 이름이 들어가면 가격이 훨씬 높아지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예술가들이 작품을 의뢰하기 전까지 창작으로 몸부림쳤을 시간을 생각하면 이제는 당연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해돌창고에 다랑논 작품을 만드는 김수남 석공. /남해돌창고
남해돌창고에 다랑논 작품을 만드는 김수남 석공. /남해돌창고
남해돌창고에 다랑논 작품을 만드는 김수남 석공. /남해돌창고
남해돌창고에 다랑논 작품을 만드는 김수남 석공. /남해돌창고

◇ 석공 삶에 일어난 큰 변화 = 이번 전시 참여는 석공 김수남 씨의 삶에 일어난 큰 변화다.

“최승용 대표가 작업을 제안했을 때만 해도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몰랐어요. 그저 늘 해오던 일을 차려진 공간에 했을 뿐인데, 사람들이 저더러 작가라고 하더군요. 그럴 때마다 어안이 벙벙하고 부담스러워요. 지금까지 예술을 꿈꿔 본 적도 없을뿐더러, 그저 먹고살기 바빴거든요.”

최승용 대표는 김 씨에게 그저 다랑논을 쌓아달라고만 주문했다. 그런데 완성된 돌담은 생각보다 조형미가 뛰어났다. 김 씨는 이를 현장 감각으로 설명한다.

“차근차근 쌓다 보면 다음 돌을 어떻게 올릴지가 보여요. 이번 전시 작품 ‘다랑논’도 우선 10일 동안 차례로 돌을 올리는 걸 목표로 했습니다. 작업하다 보니 뒤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따라 방향을 잡는다거나 두 갈래로 나눠 쌓으면 되겠다는 계산이 섰죠. 높이도 이 정도에서 끊으면 되겠다 싶었어요.”

스스로가 몰랐을 뿐, 어쩌면 김수남 씨에게는 평생 돌 작업을 하며 체화된 어떤 미적 감각이 있었다.

“평상시 돌에 대한 관심이 엄청난 사람이에요. 지나가다가도 조금 이쁜 돌을 보면 항상 사진 찍고 그러더라고요. 이제 자기가 좋아하는 걸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뭐 특별한 일 같진 않고 자연스러운 결과인 것 같아요.”

아내 이영순(53세) 씨의 말이다.

작품 다랑논에 대해 설명하는 김수남 석공. /이서후 기자
김수남 석공 작품 '다랑논' 작품 설명. /이서후 기자
작품 다랑논에 대해 설명하는 김수남 석공. /이서후 기자
작품 다랑논에 대해 설명하는 김수남 석공. /이서후 기자

◇ 지역 석공 기술을 작품으로 알리고파 = 김 씨는 이번 작업을 한 후 석공 일에 대한 관점 자체가 달라졌다. 이전까지는 최대한 빨리 일을 끝내 이윤을 추구하는 게 중심이었다.

“앞으로는 돌 작업 하나를 하더라도 작품이라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겉으로 보기엔 그저 하나의 돌담이지만 알맞은 돌을 구하고 이 담을 쌓기 위해 들인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부분들까지도 같이 한번 봐주시면 좋겠어요.”

그는 작품을 통해 남해 지역에 이런 기술력을 갖춘 석공이 있다는 게 알려지길 기대했다. 충분히 지역 안에 기술을 갖춘 석공이 있는데, 서울·부산 같은 외지에 있는 큰 업체와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작품을 통해 지역 석공 능력이 알려진다면 앞으로 외지 아닌 우리 같은 지역 석공을 많이 찾지 않을까요?” 그가 다랑논 작품을 만들며 마음에 품은 생각 중 하나다.

김수남 석공. /이서후 기자
김수남 석공. /이서후 기자
김수남 석공. /이서후 기자
김수남 석공. /이서후 기자

 

/백솔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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