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결정 방법 '퍼실리테이션'
전문 교육받은 소통 조력자
질문 촉진하고 답변 구체화도

대화·토론 거쳐 해결책 도출
구성원 모두 결과 이해·공감
"숙의 민주주의 도달하는 방식"

오늘 점심 식단을 어떻게 정할까? 일부 구성원이 말한 음식에 휩쓸려 갈까? 그보다 내 의견과 상대 의견을 듣고 투표로 결정해보면 어떨까.

‘공익공감 사회적 협동조합’(이하 공익공감)은 ‘토론의 일상화’를 바란다. 공익공감은 경남에서 퍼실리테이션 육성 교육을 받고, 이를 도내에 활성화하려는 이들이 모여 2021년 설립한 사회적경제기업이다.

이빈 공익공감 이사장은 퍼실리테이션을 “숙의 민주주의로 도달하는 방식”이라고 압축해 설명했다. 그럼에도 퍼실리테이션을 하는 모습이 머릿속으로 쉽게 그려지지 않았다.

퍼실리테이션으로 내린 결정은 어떤 과정을 거칠까. 지난 16일 창원여성회관에서 열리는 현장에서 답을 찾았다.

◇퍼실리테이션과 친숙해지기 = 공익공감은 이날 창원시여성폭력방지위원회 역량강화 퍼실리테이션을 개최했다. 이날 참여자 40명은 성폭력·가정폭력 등에 노출된 이들을 상담하고 보호하는 시설·기관에 있는 종사자들이었다. 행사는 이들이 필요한 역량강화가 무엇인지 실제 종사자에게서 구체적인 답을 이끌어내고자 마련했다. 위원회 측은 종사자가 심리·신체적으로 소진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법도 함께 고민했다.

공익공감은 퍼실리테이터 1명당 참여자 8명을 한 조로 묶어 진행했다. 퍼실리테이터가 이끌 수 있는 인원은 8명이 최대다. 10명이 넘어버리면 참여자들이 자칫 지루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자의 집중력과 참여 시간은 한정돼있다. 상대 이야기를 듣고 의견을 다시 내놓는 것도 퍼실리테이션 일부다. 하지만 10분 이상 상대 이야기를 듣는 게 쉽지 않다고 한다. 따라서 효율적인 퍼실리테이션을 위해 인원을 제한한다.

퍼실리테이터는 참여자와 목적지로 차분하게 달려가는 역할을 한다. 앞장서지 않되, 참여자 뒤에서 조용히 손전등을 비춰주는 방식이다. 퍼실리테이터는 참여자의 대답을 경청한다. 또한 ‘그 단어는 어떤 의미인가요?’, ‘어떻게 그것을 구할 수 있나요? 어떤 어려움이 있고 도움이 필요한가요?’ 등을 되물어 답변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이끌어낸다. 참여자들은 퍼실리테이션 초반에 이렇게 파고드는 질문을 들으면 굉장히 낯설어한다.

따라서 공익공감은 퍼실리테이션이 낯설 참여자의 마음을 풀어주고자 전체 인원과 짧게 협동놀이를 진행했다. 조직 강화(팀 빌딩·team building)라 부르기도 한다. 이날 조직 강화 방식은 경보 계주였다. 참여자들은 조별로 등번호를 붙였다. 뛰지 않으면서 배턴을 다음 주자에게 넘겨줬다. 조원들이 서로 바라보며 웃는 것으로 퍼실리테이션 문을 열었다.
몸풀기 이후 본격적인 퍼실리테이션이 진행된다. 퍼실리테이터 5명이 각 조를 운영하고, 중심 진행자 1명이 시간을 관리·조정하고 전체 의견을 종합한다. 이날은 최정수 공익공감 사무국장이 중심 진행자를 맡았다. 최 국장은 조별 퍼실리테이션을 시작하기 전 화면에 문장 3개를 띄웠다. “오늘 우리는 즐겁게 참여한다. 모두의 의견은 동등하고 중요하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크다.” 참여자들은 소리 내 문장을 읽었다.

최 사무국장은 “이 문구는 퍼실리테이션에 참여하면서 지켜야 할 약속이자 중요한 마음가짐이다”라면서 “문구를 읽어보고 또 참여자가 잘 보이는 곳에 붙여두지만 ‘내 말만 맞다, 퍼실리테이션은 시간낭비다’라고 하는 분들이 있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문장에 담긴 의미들은 비단 퍼실리테이션에서만 필요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공익공감은 ‘토론의 일상화’, ‘퍼실리테이션의 일상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한다.

이빈 공익공감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지난 16일 '창원시여성폭력방지위원회 역량강화 퍼실리테이션'에서 퍼실리테이터로 토론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주성희 기자
이빈 공익공감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지난 16일 '창원시여성폭력방지위원회 역량강화 퍼실리테이션'에서 퍼실리테이터로 토론을 진행하고 있는 모습. /주성희 기자

◇목적지로 함께 달려가기 = 경보로 터진 웃음기로 낯선 공기를 이겨낸 후, 조별로 앉아 체크인(check-in)을 시작 한다. 각자 이름과 소속을 밝히면서 다른 구성원에게 자신을 등록하는 시간이다. 이 자기소개가 다른 점은 에너지 지수를 알린다는 점이다. 지수를 1~10 사이 숫자로 대답한다. 참여자는 이 지수를 알리며 자기 상태를 점검할 수 있다.
퍼실리테이터는 단계마다 이 과정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하는지 꼼꼼하게 설명했다. 공익공감이 이루려는 목적 때문이다.

이날 공익공감은 경험적·이성적 목표를 세워뒀다. 경험적 목표는 참여자가 조직·기관 내에서 퍼실리테이션을 활용하는 것이다. 이성적 목표는 행사가 열린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 어떤 역량강화와 소진예방 교육 등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의견과 내용을 도출하고 정리한다. 퍼실리테이터는 경험적 목표를 놓치지 않으려고 참여자들에게 퍼실리테이션 과정을 정확하고 친절하게 설명했다.

공익공감이 3시간 동안 40명과 함께 2가지 목적을 달성하려면 퍼실리테이터 7명 정도가 일주일 동안 준비해야 한다. 의사결정을 하려면 설계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행사 주제와 설계가 잘 들어맞는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진 않을지 협의한다. 또 하루에서 이틀 동안 퍼실리테이션을 가상 진행하면서 부족한 부분을 찾아낸다. 그러면서 질문과 장치 등을 만들어 둔다.

최 국장은 이런 설계를 그려나가는 과정이 즐겁다. 그는 “원래는 금방 답을 도출해내야 하는 급한 성격이 있었다”며 “퍼실리테이터로 활동하면서 개인적으로 인격이 다듬어진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날 퍼실리테이터가 준비한 질문은 3가지였다. 3가지는 △역량강화 또는 소진예방 프로그램 중 기억나는 것 △경험했던 일 중에서 공유하고 싶은 것 △1년 후 나를 위해 지금 필요한 것이다. 이 질문들은 공익공감이 행사 기획자, 주최자와 행사 목적을 공유하면서 도출해 낸 질문들이다.

1부에서 첫 번째, 두 번째 질문을 주제로 답변을 내놓는다. 어떤 해결을 원하는지, 공유하고 싶은 내용을 자유롭게 적는다. 이 과정을 ‘브레인 라이팅(brain writing)’이라 부른다. 자기가 소속된 조직뿐만 아니라 다른 조직의 문제까지도 자연스럽게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조별로 문제를 선택해 얘기하면 격려·조언·경험을 나누게 된다.
쉬는 시간 직전 다른 조에서 나눈 내용을 들여다보고 이에 조언이나 첨언을 담은 쪽지를 써서 붙여둔다. 쉬는 시간에 다른 조가 써놓은 내용을 살피며 내 것으로 만들기도 하는 과정 속 상대방과 논의하는 장이 자연스럽게 펼쳐졌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퍼실리테이터는 도움이 되는 답을 얻었는지, 어떤 면에서 도움이 됐는지 물었다.

퍼실리테이션 참여자가 적은 내용에 퍼실리테이터는 파란색으로 구체적인 답을 적어둔다. /주성희 기자
퍼실리테이션 참여자가 적은 내용에 퍼실리테이터는 파란색으로 구체적인 답을 적어둔다. /주성희 기자

퍼실리테이터는 여러 과정에서 얻어진 참여자 답변지에 구체적인 내용을 기록해둔다. 공익공감은 퍼실리테이션 현장을 이끄는 것으로 역할을 끝내지 않는다. 조별로 나온 내용을 전부 기록한다. 그리고 답변지에 쓰여있지 않은 내용도 복기해 적는다. 추후에 조별로 나온 내용을 결과보고서에 정리한다. 모든 구성원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해결책이 적혀있다. 이 가운데 현장에서 대표적인 해결책 3~4개를 조별 투표로 선정했다.

공익공감 사회적협동조합은 지난 16일 '창원시여성폭력방지위원회 역량강화 퍼실리테이션'을 진행했다. 최정수 공익공감 사무국장이 마무리 시간에 참여자들 의견을 묻고 듣는 모습. /주성희 기자
공익공감 사회적협동조합은 지난 16일 '창원시여성폭력방지위원회 역량강화 퍼실리테이션'을 진행했다. 최정수 공익공감 사무국장이 마무리 시간에 참여자들 의견을 묻고 듣는 모습. /주성희 기자

2시간 30분 정도 지나면 3가지 질문을 거친 해결책이 자연스럽게 나열된다. 나열해두는 게 끝이 아니다. 참여자 전체는 둥그렇게 모여 앉아 조마다 도출된 의견을 확인하고 투표했다. 이 과정이 끝나면 모든 구성원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방안이 13~15가지 정도로 추려진다.

토론이나 대화가 과정 없이 목적만으로 달려가면 사소하고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다. 다수 의견에 소수를 희생시키는 모양새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퍼실리테이션을 활용하면 구성원이 전부 만족하진 않더라도, 결과치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숙의 민주주의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익공감은 ‘토론의 일상화’를 놓지 못한다. 공익공감이 추구하는 가치는 더 나은 사회를 바라는 것이기에 비영리법인·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창업했다.

이빈 대표는 이날 참여자에게 퍼실리테이션을 적용해 본 소감을 물었다. 참여자들은 “나의 일상 중 잘 몰랐던 부분을 다시 생각하는 기회였다”며 “퍼실리테이션을 (기관 내) 아이들에게 활용할 방법을 알게 됐다. 같은 일을 하는 종사자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무엇을 함께 하고자 하는지 얘기해 볼 수 있었다. 업무로 기력이 빠지던 차에 채우고 간다”고 말했다.

최 국장은 이날 참여자 모두에게 하얀색 민들레를 선물했다. 그는 “봄이 됐으니 ‘출발하자’·‘서로에게 격려하자’는 의미에서 한 선물이다”고 말했다. 이어 “숙의 민주주의란 참으로 고단한 길이니 함께 나아가자”고 덧붙이며 퍼실리테이션을 마무리했다. 

/주성희 기자

 

☞ 퍼실리테이션(Facilitation)
의사결정 방법론 가운데 하나다. 참여자 전체가 의사결정 과정에 효과적으로 참여하도록 집단 의사소통 과정을 설계하고 진행하는 일이다.
퍼실리테이터는 대화·토론이 원활하게, 목적에 도달하도록 돕는 ‘조력자’다. 참여자에게 촉진하는 질문을 하고 답변을 구체화한다. 토의 과정과 결과를 기록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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