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복했던 김문숙과 '위안부' 피해 여성들 상반
각성 속 펼쳐온 그들과 동행해온 삶 담은 전시
흐름 따라 역사 이해 쉽게 눈물보다 당당함 표현

창원대학교박물관은 영화 <허스토리> 모티브가 된 여성운동가 고 김문숙(1927~2021)의 삶을 통해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일본 책임을 인정한 단 한 번의 순간이었던 '관부재판' 의미를 되새겨보는 전시를 마련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발표한 일본의 책임을 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제삼자 변제' 방식에 공분이 들끓는 상황에서 이번 전시 의미는 큽니다. 지난 2월 15일 시작한 전시는 5월 19일까지 이어집니다.

전시 준비 과정과 무엇에 신경을 썼는지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실장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이글은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웹진 <결>에도 실렸습니다.

 

김문숙 이사장 딸 김주현 관장이 창원대박물관에서 열리는 '관부재판과 끝나지 않은 허스토리' 전시 관람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실장
김문숙 이사장 딸 김주현 관장이 창원대박물관에서 열리는 '관부재판과 끝나지 않은 허스토리' 전시 관람객들에게 설명하고 있다.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실장

◇40자 넘는 긴 전시 제목을 완성하다 = 먼저 전시 제목이나 주제부터 결정하기 어려웠다. 김문숙 이사장과 관부재판 관련 연구가 전혀 없었고, 후손이 살아 있는 가운데 진행하는 전시라 더욱 고민이 많았다. 수많은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한줄기 전시 방향을 찾기는 무척 어려웠고 의견이 분분했다. 다행스럽게도 김문숙 이사장의 '50년 만의 피눈물'이라는 친필원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동시대 할머니들의 아픔을 전혀 모르고 살았지만, 이를 각성하며 관부재판까지 이르게 되는 과정을 전시하기로 했다.

먼저 포스터 제작은 시모노세키 재판소에 소장을 제출하고 나오는 김문숙과 그녀들, 그리고 변호사들의 비장하고 당당한 걸음을 마치 영화 <범죄와의 전쟁> 포스터를 연상하듯 표현했다. <'종군위안부'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인정한 단 한 번의 순간, 관부재판과 끝나지 않은 Herstory>로 전시 제목을 정하고 '민족과 여성 역사관' 설립 취지에 있던 '이 역사를 지울 수 없다'를 추가해 부제를 붙였다. 그리고 명함 같다고 넣지 말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관부재판 판결문을 배경으로 넣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제목을 정하고 포스터를 완성했다.

김문숙 일대기를 15m 길이 연표로 길게 만들고 어린 시절 김문숙과 동시대에 살았던 일본군'위안부'와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의 모습을 비교하는 공간을 추가했다. 그리고 50년 만에 피눈물을 흘리며 각성해 할머니들과 함께 손잡고 관부재판으로 가는 길을 여러 섹션으로 분리해 긴 여정을 펼쳐보였다.

김문숙은 대학까지 진학하는 유복한 생활을 했지만, 동시대에 태어난 할머니들은 학교에 한 번도 가지 못하고 꽃다운 나이에 끌려가는 상반된 삶을 어떻게 표현하는 것이 좋을까? 많은 고민이 있었다. 할머니들의 직접적인 모습보다 김순덕, 김복동, 이용녀, 강덕경 등 할머니들이 그린 원색의 색감이 아주 강한 그림을 넣어, 가슴 아프지만 오히려 더욱 예쁘게 전시하고 싶었다. 김문숙과 할머니들은 노란 나비를 배경으로 50년 만에 손을 잡고 당당하게 관부재판으로 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이 공간이 가장 맘에 들었고 관람자들의 만족도도 아주 높았다.

창원대박물관이 전시하면서 재현한 김문숙 이사장 집무실에 딸 김주현 관장이 앉아서 자료를 보고 있다.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실장
창원대박물관이 전시하면서 재현한 김문숙 이사장 집무실에 딸 김주현 관장이 앉아서 자료를 보고 있다.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실장

◇김문숙이 일했던 방을 재현하다 = 엄청난 자료를 모두 전시할 수 없었기에 김문숙 그 자체를 표현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그는 광적으로 수집하고 글쓰기에 몰두한 분이었다. 언제나 가위를 들고 신문 스크랩을 했고 스크랩한 자료를 활용해 교육하고 영감을 얻어 그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아왔다. 

누군가 신문 스크랩이 주를 이루는 '민족과 여성 역사관' 자료가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에 별 의미가 없다고 혹평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기도 했지만 우리는 이 자료가 김문숙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흔적이라고 평가했다. 그래서 사진 속 김문숙 이사장의 책상과 책꽂이를 그대로 묘사해 김문숙의 방을 만들었고 그가 스크랩한 자료를 쌓았다. 전시 후 김문숙을 기억하는 분이 관람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 안도하기도 했다.

◇관부재판을 숫자로 = 관부재판 과정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전시 공간을 만들어 내야 했다. 공간 전체를 붉은색으로 당당함과 마땅함을 표현했다. 관람자들이 이해하기 쉽게 육하원칙과 숫자로 간단하게 관부재판을 정리했고 어려운 법률용어가 가득한 판결문도 5개 짧은 문장으로 요약했다. 여기에 더해 김문숙 이사장이 재판 날짜에 맞춰 준비한 여권과 비행기 표, 그리고 많은 도움을 준 일본 시민의 모습을 전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관부재판은 한마디로 서울과 도쿄가 아닌 지방에서, 정부가 아닌 한일 시민이, 중심이 아닌 주변에서 일어난 전설이었다.

◇영화 <허스토리>, 고민에 들다 = 2018년 개봉한 영화 <허스토리>를 통해 대중적으로 소개된 주제이기에 전시 관심을 높이려면 영화를 반드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전시팀원들 간 찬반이 있었다. <허스토리>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지만 상당한 극적 요소를 가미해 많은 논란이 있었기 때문이다. 명확한 사료에 기반을 둔 사실을 대중에게 설명하는 전시에 허구가 가미된 영화를 활용한다는 점에서 오히려 실화보다 영화의 허구적 내용이 부각될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최소한 활용해 팩트체크 형식으로 표현하기로 했다. 관람객들이 전시를 보고 관부재판과 김문숙을 제대로 이해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김문숙 이사장이 스크랩할 때 쓰던 가위.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실장
김문숙 이사장이 스크랩할 때 쓰던 가위.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실장

◇역사관 잘 부탁한데이 = 마지막은 바로 김문숙 이사장이 만든 '민족과 여성 역사관'을 전시한 공간이다. 처음 역사관을 방문했을 때 전시물로 가득 찬 모습과 대조적으로 아무것도 전시하지 않고 간판만 부착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중앙 작은 진열장에는 김문숙 이사장이 마지막까지 소지했던 반지와 안경, 그리고 '위안부' 피해 할머니를 조사하던 녹음기, 카메라를 전시했다. 수십억 원 자산가가 여성인권운동을 하며 마지막으로 딸에게 남긴 것은 은 쌍가락지와 "역사관 잘 부탁한데이"라는 말이었다.

◇전시 소개를 마치며 = 전시를 준비하면서 비록 사진이었지만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웃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이제까지 '위안부' 전시는 마치 이렇게 해야 한다는 공식이 있는 것처럼 눈물, 어둠, 아픔이 묻어나는 전시가 대부분이었다. 이번 전시는 김문숙과 그녀들이 일본 사법부에서 일본 정부의 잘못을 인정한 단 한 번의 순간이었던 관부재판으로 가는 당당한 여정이다. 그리고 할머니들의 아픔을 함께했던 시민운동가의 모습을 담았다. 그들을 밝고 예쁘게 표현한 전시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할머니들이 웃는 것이 어색하지 않고 당연한 그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김주용 창원대박물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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