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 따라서 걷는 구불구불 길
여봉산 등줄기 덮은 고사리밭
공룡 발자국 화선산지·요충지
시골마을 안겨주는 정취 일품

남해는 글자 그대로 한반도 남쪽 바다를 뜻한다. 경상도와 전라도 경계, 남해안 중간쯤이 그 자리다. 동해처럼 망망대해가 펼쳐지는 곳은 아니다. 서해처럼 드넓은 갯벌을 볼 수 있는 지형은 더욱더 아니다. 섬과 바다가 어우러진 그 어중간한 모습이 남쪽 바다 특징이다. 시선을 어디에 두더라도 작은 섬 하나쯤은 눈에 걸린다. 웬만해서는 쪽빛을 잃지 않는다.

군의 북동쪽 창선면은 이런 분위기가 잘 드러난다. 사천 삼천포와 경계를 이루며 바닷물 줄기가 지역을 싸고돈다. 남해는 바다가 제일인 줄 알았는데 창선면에 와보니 진짜배기는 산과 숲이었다. 그곳에는 눈부시게 멋진 고사리밭도 있고, 이를 둘러싼 아늑한 숲길도 있었다.

지난 8일 오후 남해 고사리밭길을 방문객들. /최석환 기자

◇구불구불 창선면 도보 여행길
지도를 보면 남해군은 앞뒤로 새들이 무리 지어 하늘을 날아가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중 오른편 뒤쪽 날개 끝자락, 남해에서도 맨 윗동네에 창선면이 자리한다. 바다 앞과 그 앞으로 떨어지는 산비탈에 마을이 형성돼 있고, 좁디좁은 도로들이 마을을 촘촘히 연결하고 있다. 남해의 리아스식 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구불구불 해안도로와 어촌마을이 차례차례 가닿는다.

바닷물이 날개 사이를 휘감는 지형, 창선면행정복지센터에서 시작해 북동쪽으로 이어지는 호젓한 시골길을 따라갔다. 상죽리와 가인리를 잇는 구간이다. 올망졸망한 마을 사이로 파고들면 흥선로라 불리는 차도와 만난다. 차 바로 옆으로 걸어야 해서 안전한 구간은 아니다. 도로 폭까지 좁아 속도 내기가 쉽지 않다. 고도는 점점 높아지고 굴곡도 심하다. 차에만 편한 길이다.

이런 길목을 지나 북동쪽으로 더 올라가면 산이 하나 나온다. 여봉산이다. 산과 숲, 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이곳에 고사리밭이 있다. 바다를 끼고 도는 산줄기 틈새로 갈색빛이 빼곡하다. 흙과 능선 너머 파란 바다는 푸릇한 색을 한껏 드러내며 반짝거린다.

남해 고사리밭. /최석환 기자
남해 고사리밭. /최석환 기자

◇국내 최대 고사리 생산지
고사리밭에서는 농가 1100여 곳이 농사를 짓고 있다. 이들은 창선도 오른쪽 해안 산등성이에서 고사리를 키우고 있다. 30여 년 전 고사리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감 농사를 지었으나 태풍 피해를 입은 뒤 전향했다고 한다.

현재 창선면 고사리밭 면적은 4.3㎢ 남짓. 서울 여의도 전체 면적이 4.5㎢인 걸 고려하면 여의도만 한 고사리밭이 남해에 있는 셈이다. 연간 고사리 생산량은 150톤가량이다. 전국 고사리 생산량의 30%를 창선면이 담당한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농지는 모두 사유지다. 때문에 농작물 무단 채취를 금지한다는 내용의 안내판이 많다. 지금이야 고사리밭길이라는 이름으로 둘레길이 생길 만큼 출입이 자유로워졌지만, 한동안 외부인의 출입이 막힌 적도 있었다. 작물 훼손을 막고자 농민들이 내린 조처였다. 지금도 고사리를 채취하는 3월부터 6월 사이에는 출입이 제한된다. 관광문화재단이 지정한 인솔자와 함께 소수 인원만 고사리밭에 들어갈 수 있다.

돌 위에 찍힌 공룡 발자국. /최석환
남해 공룡발자국 화석산지. 공룡 조형물이 설치돼있다. /최석환 기자

◇남해에 새겨진 공룡 발자국들
고사리밭에서 구불구불 언덕을 넘고 또 넘으면 가인리 공룡 발자국 화석산지다. 2008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남해 관광지 중 하나다. 54㎡ 좁은 암반 위에 1억 년 전 공룡발자국 100여 개가 남아있다. 육식공룡(수각류) 발자국은 긴 보행렬(최대 52m)을 이룬다.

대형과 중형 두 가지 유형의 육식공룡 발자국이 이곳에서 확인된다. 초식공룡(용각류, 조각류) 발자국, 육식공룡 발자국도 있다. 또 사람 발자국 모양의 화석도 이곳에 찍혀있는데 이런 발자국들은 바닷가와 맞닿은 곳에 퍼져있다.

암반 위를 바닷물이 훑고 간다. 공룡발자국이 찍힌 자리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가 나가기를 반복한다. 그 앞에서는 쪽빛 바다가 넘실댄다. 일대 어느 장소, 어느 방향에서 봐도 풍광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남해 적량해비치마을. /최석환 기자

◇조선시대 군사적 요충지
화석산지에서 남동쪽으로 4㎞가량 걸어가면 적량해비치마을이 나온다. 아침이면 바다에서 붉은 해가 불끈 솟아오른다고 해서 적량이라는 이름이 붙은 동네다. 왜구를 막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그 역할을 500년 이상 이어온 역사 깊은 동네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가 보여주듯 적량해비치마을에는 조선시대 무렵 전략적 요충지였다는 걸 보여주는 흔적들이 가득하다. 진동성으로도 불리는 적량성이 마을에 있었는데 그 당시 선박을 감추어 두려는 목적으로 지어졌던 굴항은 현재 개간되어 농지로 쓰이고 있다.

남해 적량해비치마을. 성벽돌들이 주택 담장으로 쓰이고 있다. /최석환 기자
남해 적량해비치마을. 성벽돌들이 주택 외벽을 두르고 있다. /최석환 기자

이곳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성벽 돌들이다. 석축은 창원읍성처럼 민가 외벽을 두르거나, 주택 담장으로 쓰이고 있다. 논밭 경계로도 사용되는 모습도 드러난다. 이런 상황을 불편하게 여긴 민간단체 안내판도 보이는데, 마을회관 주변에 세워진 표지석에는 '후일 복원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아쉽게도 군은 복원은커녕 관리에도 관심이 없는 상황이어서, 이들의 바람이 이루어지긴 힘들어 보인다.

마을 앞은 어촌답게 파란 물결이 일렁인다. 바다 풍경이 푸릇푸릇하다. 방파제 주변을 걸으면 위치에 따라 풍광이 다르게 담긴다. 어떤 장소에서는 쪽빛 바다보다도 반짝이는 햇빛이 더 눈에 아른거린다. 조용한 시골마을이 안겨주는 정취가 유독 남다르다.

남해 적량해비치마을 앞바다. /최석환 기자

※길라잡이
남파랑길 37코스는 창선면행정복지센터부터 적량해비치마을까지 이어진다. 남해바래길 4코스 고사리밭길과 연계돼있다. 거리는 14.9km다. 다 걸으면 6시간가량 걸린다. 길목마다 이정표가 있는데 아무거나 보고 걸어도 도착지는 같다. 고사리밭으로 들어가면 종착지까지 식당과 편의점을 찾아보기 어렵다. 반드시 물을 챙겨 가야 한다.

/최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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